열등감을 느끼면 컴퓨터 앞에 앉아 이력서를 쓴다. 타인으로부터 완성된 이력서 한 장에는 삶이 압축되고 누군가는 그렇게 압축된 삶을 평가한다. 부족함을 애써 감추려 꽤나 번듯한 말들로 뒤덮인, 나의 열등감 이력서에 대하여.
'다음 주 월요일부터 출근 가능하세요?'
작년 여름쯤의 일이다. 한 스타트업 회사에서 면접을 본지 몇 시간 지나지 않아 곧바로 연락이 왔다. 근데 내 마음이 썩 그렇게 기쁘지 않다. 사실 면접을 보고 연락이 오기까지 3시간 정도를 카페에 앉아 고민했다. 이게 맞는 걸까 싶어서. 쓰고 그리는 작가가 되고 싶단 마음 하나로 몇 개월을 버텨온 내가 갑자기 이력서를 내게 된 데엔 나름의 이유가 있다. 그 이유는 어쩌면 조금 유치할지도 모르겠다.
연애를 할 때 상대적으로 시간이 많은 쪽이 더 많이 기다린다고 하던가. 당시 만나던 남자친구가 여러 해 준비 끝에 공무원 시험에 합격했고 그해 여름에 임용되어 일을 다니기 시작했다. 그 후 소위 말하는 '헬 부서'에 들어가게 되면서 자연스레 연락의 부재가 생겼다.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상대에 비해 나는 남아도는 게 시간이었다. 하루 종일 그의 연락을 기다리는 내가, 상황을 이해하는 척하는 내가, 다들 열심히 일하고 있을 때 방구석에 누워있는 내가 아주 보잘것없게 느껴졌다. 그래서 구인구직 사이트를 열심히 찾아보며 2년 남짓 안 되는 경력으로 꾸역꾸역 포트폴리오를 만들고 이력서를 넣게 된 것이다. 그런데 이 상황, 마치 데자뷰처럼 그때와 참 비슷하다.
그래, 그때도 그랬지.
대학생 때 자석처럼 붙어 다니던 단짝 친구가 먼저 취업했다는 소식을 전해왔을 때, 나는 진심으로 축하해줄 수 없었고 그런 나 자신이 미웠다. 분명 좋은 소식인데도 내가 앉아있던 자리에서 순식간에 수십만 개의 가시가 돋아나는 기분. 그 가시는 안일한 내 상태에 대한 자각이자 상대방을 향한 열등감이었다. 소식을 듣고선 다짜고짜 컴퓨터 앞에 앉아 내 능력으로 들어갈 수 있는 모든 곳을 찾았고 곧장 이력서를 쓰고, 면접을 보고, 최종 합격을 했다. 몇 달이 주어져도 행하지 않았던 그 모든 일을 단 일주일 만에 이뤘다.
열등감 [inferiority felling, 劣等感]: 다른 사람에 비하여 자기는 뒤떨어졌다거나 자기에게는 능력이 없다고 생각하는 만성적인 감정 또는 의식.
열등감의 사전적 정의에서 말하는 '다른 사람'은 나와 가까운 관계일수록 영향력이 커진다. '내 주변에선 이렇게 열심히 사는데 그들과 동떨어지지 않기 위해서 뭐라도 하자'라는 생각이 들면서 자연스레 상대방과 나의 처지를 비교하게 된다.
그런 열등감을 나는 원동력으로 삼아왔다. 아니, 어찌 보면 그냥 자존감이 낮은 상태일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하나 깨달은 게 있다면 마음이 급하면 엉뚱한 곳으로 흘러가게 되어있다는 것. 내가 진정 원해서 찾아가는 것이 아닌 등 떠밀리듯이 살아버리면 언젠가 반드시 왔던 길을 의심하고 되돌아보게 되어있다. 결국 지난여름 스타트업 입사는 하지 않았지만, 또다시 내 삶이 진부하고 뻔한 이야기로 흘러가는 것을 막은 옳은 선택이었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