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생 시절 그림일기장을 20년이 지나고 꺼내보았다
추억하고 싶은 일이 생기면 그림일기장을 꺼내봅니다.
지금으로부터 20년 전, 6월 초여름에 시작된 2002 월드컵은 아직도 제 생에 가장 붉고 강렬했던 순간으로 남아있습니다. 그리고 지금 2022년 카타르 월드컵. 우리의 태극전사를 위해, 그리고 그 시절을 함께 살아온 여러분과 추억하기 위해 때 묻은 그림일기장을 이곳에 펼쳐봅니다.
이제 막 초등학교에 입학했던 나는 TV를 보고 난생처음 월드컵이란 것을 알았다.
2002년 6월 4일 월드컵 첫 경기가 있던 날, 상대는 폴란드. 전반 황선홍 선수의 거침없는 왼발슛, 후반 유상철 선수의 강력한 장거리 슈팅으로 값진 첫 승리를 얻었다.
아직까지 이어져오고 있는, 언제 들어도 정겨운 대한민국 축구팀 응원법. 목소리와 박수소리가 화면을 뚫고 나갈 기세로 TV 앞에 모여 열심히 응원했던 기억이 난다.
2차전에서는 미국과 경기를 치렀는데 기회가 여럿 왔음에도 골은 좀처럼 터지질 않았다. 전반 30분도 채 되지 않아 미국이 선제골을 넣으며 주춤했으나, 후반전에서 이을용 선수가 페널티 기회를 만든다. 이어 이을용 선수가 찍어 올린 공이 안정환 선수의 멋진 헤딩으로 이어지면서 동점골.
같은 해 동계올림픽에서 안톤 오노의 할리우드 액션으로 김동성 선수가 금메달을 뺏기는 사건이 있었는데, 이때 안정환 선수가 쇼트트랙을 타는 듯한 세리머니를 취하며 통쾌하게 복수에 성공했다!
공교롭게도 20년 전 월드컵에서도 태극전사는 포르투갈과 싸우고 있었다. (지금 대한민국의 축구 국가대표팀을 맡고 있는 파울루 벤투 감독도 바로 이 날, 경기장에서 선수들과 함께 뛰고 있었다!)
후반전에서 위험한 태클과 옐로카드 누적으로 포르투갈 선수가 연달아 퇴장하면서 기세는 완전히 대한민국 쪽으로 기울었다. 결국 이영표 선수가 코너킥에서 쏘아 올린 공을 박지성 선수가 가슴으로 한번, 발끝으로 한번 받더니 그대로 골대로 밀어 넣으며 득점.
우리나라 축구 역사상 최초로 16강 진출한 날이자, 한국 축구계에 박지성이라는 새로운 별이 탄생한 명경기다. 단 11%의 확률로 16강에 진출한 이번 카타르 월드컵처럼, 20년 전 그날도 그야말로 '기적'이었다.
2002년 국가대표 축구팀을 응원하기 위해 처음 등장했던 1세대(?) 붉은색 티셔츠. 대한민국 축구팀의 12번째 선수는 붉은악마라고 했던가. 역동적인 글씨체의 'Be The Reds'문구는 우리 모두 붉은악마가 되어 함께 뛰자는 의미를 담고 있다.
당시 축구경기장과 거리에는 이 붉은색 티셔츠를 입은 사람이 가득했는데, 그들이 한데 모여 있으면 마치 붉은 파도가 일렁이는 듯한 장관을 이뤄내기도 했다. 이제는 작고 허름해진 붉은 티셔츠는 집 옷장 가장 깊숙한 곳에 고이 간직하고 있다. 그때의 추억이 묻어있기에.
그리고 오는 2022년 12월 6일 새벽 4시, 우리는 브라질과의 16강전을 앞두고 있다.
<2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