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침 출근 VS 밤샘, 둘 중 나은 것은? -
가끔 아침 일곱 시까지 작업을 하고 있노라면, 자취방의 얇은 벽 너머로 소리가 들린다. 끊임없이 울리는 알람 소리, 양치질 하고 세수하는 소리, 문을 열고 나가는 소리까지. 그 무렵 나는 꾸역꾸역 구성안을 완성하고서 오전 열한 시 즈음으로 알람을 맞추고 잠에 든다.
또 저녁 여섯 시 즈음에 칼퇴한다고 좋아라하는 친구들의 단톡방을 보고 있을 때, 자연스레 우리 팀은 저녁 메뉴를 고민한다. 나와 당신은 조금 다른 삶을 살고 있다.
사실 나 또한 막내작가 시절까지는 새벽 여섯 시부터 하루를 시작하곤 했다. 고등학생 때는 아침 여덟 시까지 등교했고, 대학생 때는 학교가 너무 멀어서였으며, 막내작가 시절 또한 회사가 지나치게 멀었던 탓이었다.
나는 나이를 스물 살 가까이 먹을 때까지도 독립을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장거리 이동과 과도한 업무 때문에 몸이 고되다 보니 어쩌다 집밖으로 떠밀려 나오게 됐다. 본가의 방보다도 더 작은 2~3평에 불과한 면적으로 말이다. 입봉 전, 나는 총 세 개의 프로그램을 돌아다녔는데 제작사 위치가 들쭉날쭉했다. 그래서 그나마 짱구를 굴려 치안이나 소음을 포기하고, 어느 위치의 제작사던 갈 수 있는 곳에서 대충 살았다. 덕분에 새벽 여섯 시에 비몽사몽 일어나야 할걸 아침 아홉 시 반까지는 잘 수 있었다. 또 밤 열두 시나 새벽 한 시에 끝나는 일이 잦았는데, 그럴 땐 택시 타고 십 분이면 내 몸 누일 공간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그때부터 자연스럽게 수면 패턴도 바뀌기 시작했다.
고시텔에서 1년 여간 지낼 즈음, 나는 옆방에서 지냈던 방송계 친구와 매일 다음 날을 고민했다.
“지금이라도 방송 일 말고 다른 일에 도전해 봐야 하는 거 아닐까?”
입봉은 언제 할지 모르겠고, 입봉한 서브작가 언니들도 힘들어보이는데 이 인생이 맞나? 라고 몇 번이고 되물었다. 드라마나 영화 보면 직장인들은 입사 하면 계약서를 쓰고 휴가나 연차, 반차를 쓰던데, 생각해보니 나는 그런 건 없었다(내가 방송작가로서 제대로 된 계약서를 쓴 것은 그로부터 7년 뒤의 일이다).
하지만 사람은 무섭도록 빠르게 적응하는 법이었다. 약 1년간 아침 아홉 시 반에 깨고, 늦은 밤에 퇴근하고, 또 아침에 방송이 끝난 날은 죽은 듯이 잤으니까. 이 패턴이 견고하게 쌓이자, 도저히 다른 패턴엔 도전해볼 엄두가 안 났다. 당시의 나를 쪼개고 쪼개어 보면 지금까지 쌓아온 경력과 시간이 아깝다는 점, 새로운 곳에 가서 적응하기 어려울 것 같다는 점(새 프로그램은 넙죽넙죽 잘만 갔으면서) 등등 사소한 변명거리들이 있었지만, 가장 큰 이유는 내가 9to6에 적응할 수 있느냐였다.
하릴없이 미래를 고민하던 옆방 친구는 지금 안해보면 후회할 것 같다면서 일반 회사로 넘어갔다. 나는 고민 끝에 배워온 건 죽어도 못 버리겠어서 아침 뉴스 프로그램엘 갔다. 오전 여덟 시에 출근해 생방을 진행하고, 오후 네 시에 퇴근하는 일정이었다. 그 시점에 선택의 폭이 많지 않던 나에겐 이것이 그나마 최선이었다. 그렇게 아침형 인간으로서의 삶이 시작됐다.
막 동이 틀 무렵이면 수많은 직장인들이 출근길로 몰려나왔다. 사람들 틈에 껴서 한강다리를 건널 때, 지하철 계단이 아닌 에스컬레이터를 일부러 선택할 때, 방송국에 도착해서 ID 카드를 찍을 때 원래라면 꿀잠자고 있을 시간임이 떠오르곤 했다. 그렇게 나는 수많은 아침형 직장인들과 함께 실려서 도심으로 나아갔다.
그 당시 내 방송생활 루틴은 이랬다. 방송국에 도착하고 나면 생방 준비를 했고, 생방은 어느 샌가 게눈 감추듯 끝나 있었다. 팀원들과 느지막하게 점심을 먹고, 회의를 하고, 다음 날 뉴스를 준비하고, 오후 네 시에 퇴근했다.
아침 일찍 출근하고, 일찍 퇴근하는 삶이라니! 처음에는 퇴근 후 뭘 할까 심도있게 고민했다. 그간 막내 생활에 지쳐 못 썼던 글을 쓸지, 아니면 퇴근 후 카페 알바를 해도 괜찮겠다 싶어서 구인구직 사이트를 알아보기도 했다.
하지만 그 마음은 일주일을 못 갔다. 오후 네 시에 퇴근하고 돌아와서 무얼 했느냐. 나는 잠을 잤다. 이상하게도 퇴근하고 돌아오면 뭘 한 것도 아니고 딱히 피곤하진 않은데 한 두 시간이라도 눈을 붙이고 싶었다. 안 자려고 근처 카페에 가거나, 쇼핑을 가보기도 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깨어보면 저녁 여덟 시 즈음이라서 하루가 훌쩍 가 있었다. 뭘 하고 싶어도 애매모호한 시간이라서 밥을 먹고 TV를 보며 얼레벌레 시간을 떠나보냈다.
설상가상으로 출근 2주일 즈음 되었을 땐 자꾸 늦잠을 잤다. 매일 생방으로 진행되던 스케줄이라서 절대 늦을 순 없었다. 그래서 나는 가뜩이나 없는 살림에 택시를 타고 다니기도 했다. 아침부터 우당탕탕 출근을 하고 나면 그날은 더 고단하고 졸렸다. 다들 어떻게 매일 아침 아홉 시까지 출근하고 지낼 수 있는 걸까. 나는 어째서 오전 열 시 출근 ~ 새벽 퇴근하는 삶보다 그때가 더 힘들었을까.
내 신체는 어쩌다 독립을 하면서 맞이했던 루틴마저도 감사하다고 받아들인 것 아닐까. 새벽 여섯 시에 일어나 출근하고, 새벽에 퇴근하는 막내작가 시절의 삶은 나도, 내 몸도 너무도 고되고 힘들었다. 하지만 서울로 거처를 옮기면서 아침에 조금이라도 더 재워주고 나니, 그 패턴이라도 감사하다며 몸이 익숙해져 버린 것 같았다고 결론을 내렸다.
과정이야 어쨌든
굳이 내 몸이 받아들이지 못 하는데, 남들과 똑같은 패턴에 맞춰 살 필요가 있을까?
그래서 나는 8개월 간 어렵게 다니던 생방송 뉴스 프로그램에서, 오전 11시 출근 ~ 자주 밤 늦게 퇴근하는 프로그램으로 옮겼다. 그제서야 내 삶은 다시 자연스럽게 굴러가기 시작했다.
아직도 나는 아침 출근과 밤샘 중 무얼 할래? 라고 물으면, 밤샘을 선택한다. 조금 더 잠을 자고나서 정신을 차린 후, 맘 편하게 일을 처리하는 것. 나는 어둑어둑해져 가는 밤 속에 같이 물들어가고, 익숙해져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