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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구별하숙생 Sep 01. 2022

공원예찬-쉼

런던여행

모름지기 여름엔 바닷가에서 뜨거운 햇살아래 태워야 맛이지. 크게 부정하진 않지만 꼭 들어맞는 명제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휴가때 계곡을 가든 바다를 가든 누가 전봇대로 이빨을 쑤시든 재미있게 휴가를 보내면 됐지 장소가 무슨 상관인가. 개인적으로 햇볕에 노출되면 태닝이 되지 않고 빨갛게 익어 쉽게 화상을 입는 피부타입이라 그런지, 어릴때부터 바닷가에 살아와서 그런지 바다에 대한 큰 동경은 없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지칠대로 지친 몸을 눕힐 곳은 찾아야겠고 비교적 최근에 하와이를 다녀왔고 지난 달에 뉴포트 바닷가에서 바닷바람을 좀 쐬고와서 그런지 그다지 당기는 휴가지가 없어서 어딜 갈까 고민하다가 세계지도에서 눈감고 찍은 곳이 잉글랜드, 영국이다. 유럽엔 몇번 가보긴 했지만 여행으로도 갔고 출장으로도 갔던터라 조각조각의 경험들 뿐인데 이 참에 영국 런던으로 떠나봤다. 


관광지에서 찍은 사진과 인증샷은 차고 넘칠 정도로 많으니 여행책자 귀퉁이에나 있을법한 굳이 시간이 여유로울때 할 수 있는 것들과 여행하면서 느낀 여행소감을 몇자 적어본다. 온전히 돈을 쓰고 소비하러 간 여행자의 입장이라 적잖이 포장이 되어 있겠지만 여행을 하면서 영국은 신사의 나라, 어마어마한 식민지로 인해 해가지지 않는 나라라는 생각들은 가급적 밀어두고 여행을 했는데 영국은 생각보다 천천히 바람쐬면서 돌아다니기 괜찮은 곳이었다. 같은 선상에서 비교되는 대도시들이지만 뉴욕이 좀 시끄럽고 호들갑스러운 도시라면 런던은 규모가 작고 차분한 분위기의 도시랄까. 나는 지금 뉴욕에 살고 있지만 20여년을 서울에도 살아보고 도쿄에도 출장이나 여행을 적잖이 다녔봤지만 런던은 다른 대도시만큼 조급하다는 느낌은 없었다. 


많은 장소들을 다니고 여러 곳에서 식사를 했지만 런던에서 가장 좋았던건 웨스트민스터사원도 런던아이도, 타워브릿지도 아닌, 아이러니하게도 이른 아침의 공원산책이었다. 뉴욕에 돌아오기 편리하도록 패딩턴역 근처로 호텔을 옮겼는데 욕실이 생각보다 좋아서 반신욕을 하다가 살짝 허리를 삐끗했는데 척추건강에는 걷는것만 한게 없다고 해서 자의반 타의반 하이드파크로 아침산책을 나갔는데 허리도 좋아졌고 덕분에 그동안 뒤도 안돌아보고 정신없이 여행했던 피로감도 어느 정도 해소된것 같다. 사실 내 입장에선 뉴욕의 센트럴파크도 자주 가보고 서울의 올림픽공원도 가까이 거주한 덕분에 운동삼아 여러번 가봤지만 누군가 공원이 다 공원이지 뭐 그리 특별하겠냐고 한다면 굳이 핏대를 높여가며 반론하진 않겠지만 공원은 그 목적이 있고 공원방문자들에 의해 공원만의 분위기가 만들어진다. 그날은 꽤나 더운 8월초의 아침이라 그런지 사람들이 많지 않았고 그래서 그런지 매우 고즈넉한 분위기에다 큰 길 쪽의 반대편 공원 끝쪽에 있는 켄싱턴가든과 윌리엄왕자가 산다는 켄싱턴저택이 잘 어우러져 그만의 고풍스런 분위기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허리통증이 있어서 빨리 걷지 못한게 오히려 천천히 주위를 살펴볼수 있었던 좋은 시간이었다. 사실 미국 동부에 살고 있어서 다시 가려면 어렵지 않게 갈수 있는데도 여행만 가면 종종걸음으로 스탬프 찍듯이 여행지를 둘러보면 한국식 여행법이 몸에 배기도 했고 시차로 인해 여행내내 좀 피곤한 채로 지냈는데 여행막바지에 비로소 공원을 둘러보니 내가 이럴려고 여행을 왔는데 지금껏 뭐했나 싶은 생각도 잠깐 했다. 

하이드파크 입구. 꽤 한산하다.
가뭄때문에 그런가 한여름인데 하늘, 땅 모두 가을같다.
얘들도 쉬는 중인듯. 둘이 입을 모아 하트를 만드려는 참이다. 

사실 돌이켜 생각해보니 나는 가는 곳마다 또는 여행하는 곳마다 공원에 들르곤 했다. 서울에 살 때는 보라매공원, 결혼 후엔 올림픽공원에 운동하러 자주 가곤 했고 오래전이지만 일본에 출장갔을때는 굳이 시간을 내어 중앙공원과 우에노공원 등을 걸었고 뉴욕에선 센트럴파크, 유니언파크, 워싱턴스퀘이파크, 배터리파크 등 공원이 보이는 족족 걷곤 했다. 아마 한참 거리를 걷다보니 공원을 핑계로 아픈 다리를 좀 쉬게 하려는 의도가 더 컸는지도 모르지만 공원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각자 다른 이유로 운동하고, 앉아서 쉬고, 햇볕을 만끽하는데 내가 공원을 좋아하는것도 지극히 평범한 사람의 평범한 일상 중 하나인 그것, 쉼이다. 공원은 사람에게 공간의 쉼을 제공한다는 측면에서 시간적 개념의 쉼을 주는 여행과 맥을 같이 한다. 즉, 사람들은 여행이라는 시간을 통해서 쉼을 얻지만 일상에서는 공원을 방문해서 공간에서의 쉼을 얻는다. 세계 각지에 철근, 시멘트, 유리 등으로 점철된 많은 빌딩과 건축물들이 있지만 인간의 가장 위대한 건축물은 잔디와 나무, 최소한의 인공구조물이 가미된 공원이 아닌가 싶다. 이번 주말에는 오랫동안 먼지쌓인 내 작은 자전거를 타고 우리 동네 작은 공원에 가야겠다. 

족히 10년, 아니 그보다 더 오래된 어느 여름 유니언스퀘어. 한적하기 그지없다.
오랜만에 바람쐬는 자전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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