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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구별하숙생 Jul 09. 2023

고맙지만 거절하겠습니다.

잡 인터뷰 소감 - 거절하는 기술

지난번 3월에 형편없는 이벨류에이션과 연봉협상의 충격에서 아직도 완전히 벗어나지 못한 채 그저 그렇게 시간떼우듯이 하루하루 보내다 보니 이것도 그럭저럭 괜찮다는 생각이 드는걸 보니 내 분노도 풍화를 겪어 무뎌지고 있나보다. 그래도 그냥 넋놓고 있자니 이건 아닌것 같아 여기저기 알아보니 성격이 확연히 다른 몇 가지 옵션이 있어서 어디로 갈지 아직 정하지 못하고 허우적 대는 내 모습이 안쓰럽다. 변화를 위해 최근에 일어난 몇가지 일들을 기술한다.  


옵션1 - 대기업으로 이직

지금 근무하는 회사를 그만두고 다른 회사로 옮기는 방법인데 절실함이 부족했는지 인터뷰 일정은 곧 잘 잡히는데 최종면접까지 가지 못하고 고배를 마시고 있다. 절실함 부족의 배경은 두가지다. 한가지는 지금 다니는 회사에 그냥 붙어있으면 된다는 안일함, 둘째는 내가 개인적으로 운영하고 있는 이른바 부업의 존재다. 이 회사가 아니면 손가락을 빨게 된다는 브레드위너로써의 절실함이 상대방에게 전달되지 않으니 적극적인 모습이 아니었던게다. 최근에 독일화학회사의 미국지사 세일즈 포지션에 지원해서 인터뷰 제안을 받았고 약 30분의 전화 인터뷰가 끝나고 나니 연락을 준다고 하긴 했지만 연락이 오지 않을거라는 예감이 강하게 들었다. 인터뷰 질문중에 꽤나 날카로운 질문들도 있었지만 빈번히 물어보는 질문조차도 당황해서 매끄럽게 답변하지 못하고 버벅거리는 모습에 인터뷰가 끝났는데도 얼굴이 화끈거렸다. 미국에 처음 온 2015년 여름에 설레는 마음으로 갔던 온사이트 면접에서 질문조차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뭐라고 대답했는지조차 기억못할 정도로 허둥지둥 대다가 나왔을때의 창피함과 견줄만 했다. 또다른 이불킥거리가 하나 생긴 셈 쳐야겠다.  


옵션2 - 소기업으로 이직

내가 가끔 연락을 주고 받는 한인 사장님과 오랜만에 연락하게 되었는데 근황을 얘기하다 보니 그 분은 이미 은퇴할 나이를 훨씬 지났지만 자식들은 이미 다른 안정적인 직장에 근무하고 있어 아버지의 가업(?)에 관심이 없고 자신의 업무를 대신할 적임자를 찾고 있던 모양이었다. 직원이 4-5명 정도의 소기업이지만 인원에 비해 매출은 결코 작지 않은 좋게 말해서 '강소기업'인데 Vice President 포지션을 책임질 사람을 찾고 있었는데 내 경력이 그 회사와 유사성이 상당히 많고 그 분도 경험을 높이 평가하고 있어 인터뷰를 보게 되었다. 서로 오랜 시간 알고 있었던 사이라 호구조사 등의 일반적인 질문은 생략하고 입사 후에 계획이라던지, 신규 비즈니스에 대한 구상에 대해 주로 얘기하게 되었고 그 분도 만족하는 눈치였다. 한국인이라 한국어로 인터뷰를 진행하다보니 더할 나위없이 편안한 분위기에서 내 생각을 표현할수 있어서 역시 이런게 바로 모국어가 주는 정신적 안락함이구나 라는 생각을 다시 한번 하게 되었다. 내 영어실력이 궁금했는지 회사의 다른 직원과 영어면접도 진행하고 가장 중요한 급여조건에 대해서도 여러번 협의를 거친 끝에 어느 정도 합의점을 찾게 되어 모든게 순조로웠다. 채용의 거의 막바지쯤에 구체적으로 근무날짜에 대해 상의하던 중 1년에 공휴일 7일과 휴가 5일이 전부라는 사실을 알게 되고 큰 충격을 받았다. 참고로 일반적인 미국의 공휴일은 다음과 같고 Private Company의 경우는 반드시 준수할 의무는 없다. 


New Year’s Holiday 1월 1일(또는 1월 2일까지 휴무인 경우도 있다)

Martin Luther King Jr. Day 1월 셋째주 월요일

Presidents' Day 2월 셋째주 월요일

Good Friday 부활절 전 금요일

Memorial Day 5월 마지막주 월요일

Juneteenth Day 6월 19일

Independence Day 7월 4일

Labour Day 9월 첫째주 월요일

Columbus Day 10월 둘째주 월요일

Veteran's Day 11월 11일

Thanksgiving Holiday 11월 마지막주 목(또는 금요일까지 쉬는 회사도 있다)

Christmas 12월 25일


그냥 받아들이긴 좀 마뜩잖은 기분이 들어 미국의 상당수 회사들이 열거된 공휴일을 준수하고 있다는 점을 들어 최대한 조심스럽게 얘길 꺼냈는데 공휴일과 휴가에 대해 예상치 못한 강경한 모습을 보니 여러번 가보진 않았지만 왜 갈때마다 직원들의 얼굴이 밝지 않았는지 이해가 되었고 다른 한편으로는 그들만의 사정이 있겠지만 이런 환경속에서도 회사가 굴러가도록 역할을 해내는 직원들이 대단하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그리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출과 영업이익이 꾸준히 증가한다는 점은 미스테리 수준이었지만 나는 더이상 해외에서 달러를 벌어서 한국에 송금하는 산업역군도 아니고 거의 모든 사람들이 누리는 공휴일과 휴가를 희생하면서 까지 일하고 싶지도 않다. 생각해보고 연락달라고 했지만 이미 내 마음속에서 그 회사에서 일하는 내 모습은 없었다. 비즈니스를 개발하고 성장시키면서 커리어를 키울수 있는 좋은 기회를 주셔서 감사하긴 한데 기본권이라고 할수 있는 휴일과 휴가에 대한 견해차이가 너무 커서 더이상 얘기하면 서로 감정까지 상할것 같으니 여기서 저는 그만 하겠다고 얘기했고 그 사장님도 짧게 알겠다는 말로 통화를 마쳤다. 크고 멋진 프로젝트를 만들고 신규비즈니스를 발견하는건 좋은 일이지만 내 기본권을 내줄 정도로 야망이 원대한 건 아니다. 그리고 나는 다시 이렇게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좋은 기회를 주셔서 고맙지만 거절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My Own Business

하늘의 뜻을 알게 된다는 지천명이 얼마남지 않았지만 30대, 그리고 40대 초반까지도 50세가 넘으면 어떻게 살고 싶은지 혼자 상상해 본 적이 있다. 대충 하루 일과를 얘기해보면 아침 9시쯤 일어나서 1시간 정도 조깅을 하고 아래층 서재로 가서 랩탑을 열고 이메일 확인으로 업무를 시작한다. 10시 반 쯤 조금 늦은 아침을 먹고 12시 반까지 오전업무를 본다. 점심을 차려먹고 오후 3시까지 업무를 보고 1시간 정도 산책을 한다. 밖에 나가서 장을 봐고 저녁을 만들어 퇴근하는 아내를 맞이한다. 그리고 여유로운 저녁시간을 보내는 어쩌면 평범하지만 막상 하려고 하면 쉽게 누릴수 없는 일상이다. 


돌아올 내 50대의 목표이기도 한 이 아름다운 상상은 쉽게 실현되지도 않지만 운영하는 비즈니스가 있고 잘 굴러가서 수입에 문제가 없다는 전제조건이 있는데 이게 말처럼 쉽지 않다. 비정기적으로 거래가 발생하면 수익이 없진 않지만 안정적인 수익이 아니라는 점, 그리고 돈은 벌겠지만 예측이 어렵고 점점 더 많은 자금이 필요하게 된다는 점이 단점이 될수 있지만 시간활용성이 매우 좋고 어디서든 비즈니스가 가능해서 여행을 좋아한다면 굉장한 장점이다. 사실 5년전에 사업자 등록을 하고 간간히 거래가 발생해서 없는 것보다는 낫지만 그렇다고 큰 수익은 아닌 정도로 2-3년 지내다가 때아닌 Covid가 찾아오는 바람에 나에게도 기회가 찾아와 약간의 반사이익을 누릴수 있었고 물들어올때 노젓는 기분으로 탄력을 받아서 오르막을 올라가는 중이다. 다른 회사로 이직할 기회를 거절했으니 근 시일내에 작지만 내 비즈니스를 운영하는게 나에게 남은 마지막 선택지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본다. 2025년에 위에서 내가 했던 상상들이 실현된 순간을 만끽하는 순간을 브런치에 적을 날이 오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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