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자유발언을 부탁드립니다

[아트인사이트] 에디터 36기 모집 (~10/22)

by 유진

마지막으로, 자유발언을 부탁드립니다.


자유롭게 써 내려갈 수 있는 문항이지만, 정작 어떤 이야기를 꺼내야 할지 오래 고민했습니다. 그래서 익숙한 방식대로, 평소 정리해두었던 에세이의 한 부분을 함께 제출합니다. 클래식을 감상하고 마음속에 남은 장면들을 언어로 옮기는 일이 제게 어떤 의미인지 담긴 글입니다. 에디터로 활동하게 된다면, 이처럼 사적인 감상에서 출발해 예술이 남긴 흔적을 나누는 글을 꾸준히 이어나가겠습니다.


그림을 그리고 연주를 한다는 행위 자체가, 사실 인간에게 당장 현실적인 결과물이나 인류에 직접적인 도움을 주는 일은 아닐지도 모르겠다. 자본을 바로 들여오는 일도 아니고, 그래서일까. 지금 내가 이런 예술을 향유하고, 감상을 나눌 수 있는 순간이라는 것만으로도 감사하게 느껴진다. 언젠가 지금만큼 어떤 것을 사랑하며 기쁜 마음을 담아내기 어려운 날이 올 수도 있지 않을까. 그래서 지금은 그저 충실히 애쓰고 있다.


어차피 인생은 생각보다 길고, 멀리 보면 짧다. 원하는 것이 있다고 해도, 곧장 닿을 수 있는 판타지는 아니라고 믿는다. 매일은 돌아가는 길목이고, 직선 주로에 있다고 해서 그 길이 무조건 더 기쁘거나 낫다고 말할 수도 없다. 생의 끝자락에서 돌이켜본다면, 오늘의 걸음이 충분히 어여쁘게 느껴지지 않겠는가.


결국 인생의 전반은 ‘기분 관리’의 연속이라고 하지 않던가. 그래서 우리는 끊임없이 취향을 찾고, 파고들고, 가까이 두려 하며 살아가는 것인지도 모른다.


좋아하는 것이 있으면, 자연스레 잊고 있던 초심도 떠오른다. 초심이라는 건 대단한 게 아니다. 그저 ‘기쁨’의 영역에 더 가까울 것이다. 순전히 기뻐할 수 있는 무언가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내 안에 여유 공간이 있다는 증거 아닐까. 그리고 어떤 것을 좋아하게 되면, 그와 관련된 선택지들이 내 마음 위로 하나둘 떠오른다.


내 굴레 속에서는 결코 나타나지 않을 문항들이 어느 날 불쑥 생겨나는 것이다. 시험을 보는 건 싫지만, 어떤 문제가 나오는지는 궁금하지 않던가. 시험지조차 응시 버튼을 눌러야 받을 수 있듯, 삶이라는 것도 결국 먼저 응답해야 다가오는 것임을 점점 배우고 있다.


그렇게 지켜지고 형성된 이름 모를 ‘원형’은 언젠가 타인에게도 긍정적인 자극이 될 수 있으리라 믿는다. 나는 한때, 인연의 끝이 보이는 관계에서는 굳이 애써서 친해지려 하지 않았다. 질문할 수도 있었고 분위기를 풀 수도 있었지만, 내 에너지를 소비하고 싶지 않다는 마음이 컸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내가 가진 원형을 계속 돌보고 비춰주다 보니, 점차 타인에 대한 궁금증이 생겨났다. 저 사람은 무엇을 좋아할까? 왜 그걸 아끼게 되었을까?


클래식을 좋아하는 나처럼, 당신도 무언가를 좋아하고 있을 텐데. 왜 굳이 시간을 들여가며 그것을 계속하는지 묻고 싶어졌다. 소리에게 끊임없이 질문하던 습관이 사람에게로 옮겨왔고, 이유를 찾아보고, 몰랐던 세계를 하나씩 들여다보는 일이 참 즐겁다는 걸 다시 깨닫게 되었다.


낯설었던 것들이 점점 선명해지고 다가오는 느낌은, 언제나 반가운 법이다. 나는 원체, 내 눈에 걸린 것은 잘 놓아주지 못하는 성격이다. 기억하고 싶은 것들, 형태로 남은 감정들은 결국 언젠가 내 글 속에서 다시 살아난다.


어쩌겠나. 누가 내 취향이래!

2025년 5월 16일의 에세이


36기 포스터.png


keyword
작가의 이전글우리는 소리로 만나 소리로 이어지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