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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명, 추억을 쟁취하라!

[공연 에세이] 2025 줄라이 페스티벌 : 프로코피예프 실내악 2

by 유진
스스로 추억을 만들어내는 재미가 있다. 굳이- 굳이 의미 부여를 하면 좋지 않은가? 어차피 내가 하는 일의 가치는 '내가 아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개별적인 타인의 인정을 기대하기 시작하면 사람이 너무 일희일비해진다. 자기 계발의 주체는 어차피 내가 아니던가? 클래식이 나를 어디까지 데려갈 수 있을지 궁금하다. 뭐가 됐든! 과거의 내가 내 편이다. 지난 날의 행보를 오늘의 내가 즐겁게 감상하기만 하면 된다.

2025년 6월 30일


1. 들어가며 - 다짐, 반드시 즐거운 하루를 보내겠다는

ⓒ 유진

"나는 오늘 반드시 좋은 하루를 보내겠다." 고, 스스로 선언하는 재미를 아시는가? 어떤 사건이 발생하던, 무슨 일을 겪던, 그날 하루만큼은 좋은 기분의 중심에 스스로를 세워놓는 것이다. 왜? 마음을 한껏 달궈야 할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뭐겠나! 공연 보는 날이다. (꺄~)


클래식에서 연주는 내 앞의 숙련가들이 행하지만 받아내는 그릇을 들고 있는 건 나다. 원래 공연이라는 게, 행하는 자만큼이나 응하는 자의 역할도 중요하지 않은가? 사람들끼리 목소리 하나 없이, 숨소리 몇 자락으로 '소리'로 공명해야 하는데, 내 사사로운 기분이 껴들면 어디 되겠는가? 왜 이렇게까지 하냐 싶겠지만, 내 기분 관리가 누군가의 손까지 영향을 미치는 게 싫다.


저 지문 아래에서 내게 어떤 새로운 '생각'을 심어줄지 모르기 때문에, 기분이 대체로 온전한- 상태로 마룻바닥 위에 서 있어야 한다. 그러려고 오전에는 전시회도 다녀오고, 지난 3일간 우르르 쾅쾅 공연 리뷰를 쏟아낸 것이었다. (절대 24일까지 미뤄져서는 안 돼)


잡념이 많으면 그 생각을 잊는데 첫 곡이나 1,2악장이 한참 소비된다. 어차피 며칠 지나면 생각도 않날 것들에 어디 오늘의 시선을 망칠쏘냐? 기분은 기분이고, 지금은 지금이다. 다만, 내 기분을 미리 높게 들어 올려 둔다면? 그건 또 다른 얘기다.


오히려 시야가 확장되고, 몰랐던 것들이 눈에 속-속- 들어온다. 가만히 멍- 때리다가 발들인 것보다, 보다 '성실'한 상태의 나로 '악기'와 '화음' 앞에 설 때 그거만큼 속 편하고 즐거운 게 없다. 이만큼 내가 진심이니, 가끔 상대편이 '진심'이 아니거나 '과업'처럼 느껴지는 모습을 보이면, 미묘하게 속상할 때도 있다.


가끔 친한 친구들끼리 대화를 나눠도, 관심 없는 주제의 이야기를 하면 미묘하게 눈빛이 성마르게 변하는 게 감지되지 않는가? 그러다 보면 말을 하다가도 전하고 싶은 마음이 서서히 디미누엔도(diminuendo, 점점 여리게) 된다.


ⓒ 유진


줄라이 페스티벌의 24번째 무대이자 프로코피예프 실내악의 두 번째 무대가 열린 24일은 이런 시답지 않은 걱정을 할 필요가 전-혀 없었다. 어떤 키워드를 나열해 볼 수 있을까.


프로코피예프, 마을 축제, 웃음, 눈 맞춤, 악보,
단란함, 텐션, 집중도, 압도감 그리고 '브라보' 정도겠다.


피아노와 바이올린 그리고 두 번의 현악 4중주를 지나오면서 생각했다. "오늘 안 온 사람들은 좀 손해 봤네." 왜 감히 그리 자신했던가?


단언하건대, 첫 곡의 프로코피예프 소나타는 피날레와 같았으며, 현악 4중주 1번은 대지이자, 2번은 하늘이었다. 그날의 분위기를 몇 가지 말로 묘사하기 어렵다. 재즈바라기엔 분위기가 산뜻하고, 마냥 분위기 좋은 카페라기엔 밀착된 텐션이었다. 연주가들끼리 나누는 시선을 보면 교향악 축제 같았고, 관객들의 집중도는 어디 심사위원단이다. 이걸 다 합쳐보면 도대체 어떤 공연인 건가?


에잇. 간편하게 하나씩 단어를 내세우면 되지 않겠는가? 녹빛의 재즈바에서 스파클링 와인 한 잔씩 들고, 노을이 지는 카페 발코니에서, 해를 등진 채 소리를 노니는 연주가들을 지켜보는 현악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24일의 무더위 속 마룻바닥 위에 머물러 있었다. 아- 진짜 좋았다.


당신에게 클래식 공연은 어떤 형태이신가? 진중한 표정으로 턱에 손가락 몇 개를 가져다 댄 채 눈을 감고, 음- 바흐. 음- 베토벤. 음- 모촤르트- 를 (속으로) 외쳐야 할 것 같으신가? 나도 그래 보고 싶은데, 깜냥도 안되고, 나한테는 너무 예쁘고 신기한 장난감들이라서 그렇게 우아하게 응시 자체가 불가능하다.


ⓒ 유진

비전공자는 이래서 좋다. 누군가에겐 학술적으로, 진지하게 다뤄지는 악보 한 장, 순간의 터치와 해석의 영역이 내게는 그냥 마법사의 요술 지팡이다.


당신은 발레 공연을 관람해본 적 있으신가? 나는 얼마 전 백조의 호수로 처음 관극을 했다. 그 무대에서 내게 꽤 인상 깊은-무용의 측면에서- 캐릭터는 사실 주인공 남녀보다도 광대였다. 격식으로 온몸을 휘감은 백조와 왕자의 사이에서 누구보다 자유로운 동선으로 무대와 사람 사이를 뛰노는 그 '광대'가 약간 공연을 보러 가는 내 발걸음과 유사하다. (물론 실제로 그렇게 걷진 못한다)


그만큼 신이 났다는 것이다. 한-두 줄의 줄거리만 머리에 얹어둔 채 영화를 보러 가는 기분이기도 하다. 뭐가 펼쳐질지는 아-무 것도 모르지만, 일단 신난다. 가면 꼭 얻는 것이 있기 때문이다.


좋아하는 분야의 배움을 스스로 '한 문장'씩 깨우치는 재미를 아시는가? 한번에 2,3문장 말고 꼭, 한 문장이다. 이곳에 오기로 하지 않았다면 절-대 얻지 못했을 그 단어들의 조합을 불현듯 떠올리는 즐거움이 너무 크다. 이 매력 때문에 이 공간과, 이 세계에 자꾸 손을 뻗으려고 하는 것 같다.


그래서, 지난 24일에는 뭐를 얻어왔느냐고? 간단하다! "아- 나 진짜 클래식 좋아하네?" 이 한 문장이다.


2. 목요일은? '프로코피예프'의 날

ⓒ 유진

7월 한 달 동안 매일 공연이 열리는 2025 줄라이 페스티벌의 매주 목요일은 프로코피예프의 날이다. 프로코피예프는 서정적이면서도 재치 있는 음악을 많이 남겼다.


이날은 밝고 노래하듯 흐르지만, 전쟁의 쓸쓸함이 스며 있는 바이올린 소나타 2번, 차분하고 깊은 분위기의 현악 사중주 1번, 러시아 남부의 전통 음악에서 영감을 받은 생동감 넘치는 현악 사중주 2번이 연주되었다...고 하는데, 내가 예습한 건 첫 번째 곡인 바이올린 소나타 한 곡뿐이었다.


작곡가들의 레퍼토리를 이리저리 살펴보면서 느낀 건 협주곡이나 독주곡 말고도 현악 4중주나 2중주 같은 소규모 형식의 곡들이 꽤 많다는 것이다. 보통 클래식하면 대형 공연장에서 유명한 연주가들의 화려한 기교 섞인 웅장함을 느끼거나, 아주 사그라지듯 우아하게 내려앉는 발라드를 느낄 거로 생각하지만, 내 경우는 조금 다르다.


오케스트라의 교향곡이나 내한하는 외국인 연주가들의 공연도 좋지만, 당장 자신이 끌리는 음악과 선택지로 리사이틀을 이끌어나가는 국내 연주가들의 '실내악'이 더 다이나믹하고 재밌다.


실내악이 뭐길래? 에이, 뭐겠나. 작은 방에서 연주하는 음악이다. 소수 연주가들이 모여 자신의 악기로 지나온 사람들의 이야기를 구전해준다. 대규모 인원이 모인 장소에서 히트 강사의 강연을 듣는 것도 재미있지만, 작은 책방에 둘러 모여 책 한 두 권을 나눠 읽는 재미. 좋아하는 선율을 음미하는 순간의 기쁨을 알게 된다면, 실내악과 금세 친구가 될 수 있다.


내가 그 재미를 작년부터 안 것 아니겠나? 부지런히 탐구해야 한다. 체력 좋을 때 뭐든지 시도해 봐야 한다. 아마 이게 나의 2025년의 휴가나 다름없다고 보면 된다. 그래, 그렇다면 오늘의 연주가들은 어떻게 두 손안에 프로코피예프를 담아냈던가? 이제는 천천히 살펴볼 때다.




1) 바이올린 소나타 2번 D장조, Op.94 - 임동민(Violin), 김송현(Piano)

ⓒ 유진

이 곡은 6월, 줄라이 페스티벌 일정이 발표되자마자 예습을 시작한 작품이었다. 프로코피예프의 소나타는 유난히 독특하다. 알고 보니 이 곡의 원곡이 플루트를 위한 곡이었는데, 어쩐지 음원 버전으로 예습할 때 첫 음 자체가 마치 내 시선보다 훨씬 높은 오른쪽 상공에서 시작되는 것처럼 느껴졌었다.


현대 음악이나 러시아 음악을 듣다 보면, 이 시대의 작곡가들은 음표를 안정된 기반 위에 안주시키지 못한다. 어떻게든 뒤흔들고, 띄우고, 지그재그로 흐트러뜨리고, 난리가 난다. 처음엔 ‘이게 웬 시끄러움이야’ 싶다가도, 듣다 보면 이만한 색다름이 없다. 시작이 독특하니까 쉽게 질릴 일이 없는 것이다. 처음부터 너무 진득하고 부드러우면 금방 물리는 것처럼, 이 소나타에선 그런 포인트를 찾기 어렵다.


더군다나 오늘의 듀오는 꽤 강렬한 파워를 앞세워 4악장을 이끌어갔다. 기교를 내달리는 악장은 2악장과 4악장이었는데, 두 분이 공연 전에 “오늘 관객들 기죽여보자!” 하고 도원결의라도 하고 오신 줄 알았다. 서두에 말했지만, 이 무대는 정말 마지막 피날레처럼 강렬했다.


무엇보다 이 소나타는 유독 기대를 많이 했고, 마음에 담아올 지점도 콕 집어 정해두었기 때문에 누구보다도 들뜬 마음이 마룻바닥에 자리하고 있었다. 어디, 두 사람은 어깨와 두 손 아래에서 어떤 연주를 펼쳐냈던가? 나는 무지하여서 바이올린과 피아노를 나눠서 회상해보기로 했다.


임동민 Dongmin Lim (Violin) ⓒ 유진


I. Moderato (적당한 속도)

바이올린의 첫 음을 듣자마자 확신했다. 임동민 바이올리니스트의 소리 선이 뭔가 더 짙고, 얇은 결의 개수가 길게 늘어났다. 내가 아는 이 연주가의 색은 어떠했더라? 빠른 속도감 속에서 날카롭게, 바늘을 긋듯이 소리를 내며 서서히 파동쳤다.


끝 부분은 늘 심이 뾰족했던 것 같았는데, 지난 ‘한화생명과 함께하는 11시 콘서트’ 이후로 활과 현 사이에서 낯선 표현들이 늘어났다. 완전히 새로운 소리는 아닌데, 파동치는 양방향이 더 넓어졌달까? 더 연륜 있고 능력치 좋은 스킨을 갈아 낀 느낌..?


시작은 얇은 종이 한 장 같다가, 순식간에 꽈리를 틀 듯 소리 면이 진해지는 순간이 있다. 내려올 때는 또 어떠한가? 하한선이 -20 정도였다면, 이젠 1초 만에 -45까지 짙게 내려갔다 돌아오는 느낌이다. (뭐지?) 소리가 확실히 두터워졌고, 사람들이 흔히 생각하는 그 얇고 듣기 불편한 고음 특유의 날카로움이 옅어졌다. 기본값이 두꺼운 수성펜 같은 소리인데, 거기서 샤프처럼 얇아졌다가, 매직처럼 굵어졌다가를 반복한다.


끝맺는 음에는 꼭 그림자가 달려 있다. 회색 정도의 음영이랄까. 첼로에서 들었던 낮은 음역의 질감이 스치는 듯한 순간도 있어서 신기했다. 새초롬하게 날아오를 때는 소리 면이 살짝 뒤로 넘어가 있다. 바람에 팔랑이는 종잇장이 그때마다 다른 각도로 빛을 반사하는 것처럼.


그리고 한 음을 충분히 내려놓고 다시 올릴 때, 중간의 선명도가 짙어지니 눈이 번쩍 뜨였다. 대략 4분 4초쯤, 음을 흔들며 활이 위로 올라간 다음의 표현을 들어보시라. 두세 번의 스침 후에 대각선으로 뻗어 나간다. ‘바이올린에서 이런 소리가 나?’ 싶을 정도로, 소리 선 하나에 입체감이 있다.


기존에 알던 소리가 은색의 바늘이었다면, 지금은 그 바늘이 투명도가 높아져 유리바늘이 되고, 더 크고 넓은 면적으로 담아내는 느낌이다. 뭔가 소리 자체가 성격을 가지게 된 듯했다. 약간… 심지가 샤베트 계열 쪽으로 짙어졌다고 할까? (무슨 말이냐)


1악장은 내가 알던 소리와 몰랐던 소리가 서로 인사하느라 분주했다. 소리의 흐름이 확 바이올린 위로 쨍하게 뜨기 시작하더니, 밀착력 있게 밀어붙인다. 앞서 말한 수성펜이 마룻바닥을 짱짱하게, 혹은 옅게 지직거리며 울기 시작한다.


아, 이 시원하게 내지르는 날것의 소리는 정말 직접 들어봐야 한다. 흐름은 반복되지만, 다뤄지는 재료와 표현이 워낙 개성 있고, 생동감이 넘쳐 지루할 틈이 없다. 그 와중에 서정성은 꼭 챙긴다. 한 활이 현 위를 떠나기 전, 소리의 크기 자체가 강해졌다가 옅어지더니 사라진다.


소리의 본질은 베이스처럼 느껴지는데, 그 위에 초고음을 자유자재로 쌓아올리는 악기로 변모한 기분이다. 고음에 강했던 연주가가 저음과 중음을 더 섬세하게 다듬은 느낌.


II. Scherzo: Presto (매우 빠르게)

자, 2악장은 마음에 콕 박아둔 스타카토가 잔뜩 깔린 부분이다. 신나게 질주한 다음에 갑자기 톡-톡-톡- 짚어주고 가는 구간이 너-무 재밌었다. 신이 난 발걸음도 있다. 뒤뚱거림이 아니고, 또잉-! 속도감 자체가 딱 듣기 좋다 싶은 정도로 리드미컬하게 달려나간다.


활을 쫙- 내려트리고 현이 촥- 안쪽으로 짚어지는 구간이 있는데, 그 치솟아 오름이 너무 개운하다. 약간 광고에서 스프라이트 구호를 외칠 때 정도의 느낌…?


또 피아노와 바이올린이 얼마나 저돌적으로 달려가는지, 막 관객을 압박하면서 쿵쿵 다가오는 건 아닌데, 호다닥- 흐름을 이끄니까 멍-하니 쳐다볼 수밖에 없다. 피아노가 높은음을 팍팍- 두드려낼 때, 바이올린은 사정없이 지직이고, 높게 현을 짓이긴다. 그러다 순식간에 구름 쪽으로 몸을 기대버린다. 이런 부분에서 이 악기들의 매력이 확실히 돋아난다.


11분 50초를 살펴보시라. 방금까지는 질주였는데, 지금은 관망의 순간이 따로 없다. 아주 짧은 평화도 잠시, 안주할 틈 따위 없음을 경고한다. 임동민 바이올리니스트가 소리를 휙! 높게 내던졌다가, 두세 번의 두드림 후 다시 활을 내려 잡아 안쪽으로 들이밀며 무지개를 그린다. 그게 막 화사한 소리라는 게 아니라, 그 일순간 빛이 유리에 반사되어 생기는 찰나의 일곱 가지 색이 스쳐 간다.


진짜 특이한 작곡가다. 다시 돌아온 평화의 곡조에서 팔에서 거의 힘을 빼낸 채 유리 위를 활로 가볍게 그어낸다. 얇고 대충 7겹은 되는 선인데, 그어지는 것마다 표현이 다르니 신기했다. 그러다가 다시 삐걱거리는 진성으로 돌아온다. 활이 거의 가로로 놓일 때는 짙은 고동색이 들리는구나.


가만보면 이 연주가에게도 은근히 ‘쪼’가 있다. 규율적인 것보다는, 늘이고 퍼트리며, 소리를 잡아채는 데 능하고, 재밌게 그어내는 게 보였다. 그냥 록커다. 여기가 내 록 페스티벌이다.


ⓒ 유진

III. Andante (느리게)

신이 제대로 났는데, 바로 안단테 안으로 들어오려니 여간 쉽지 않았다. 방금 록 페스티벌에서 하이라이트를 보고 왔는데, 곧장 감성 발라드를 그리는 것 아니겠는가. 쉽지 않았어도, 연주가는 곧장 흐름을 중간 지대로 충실히 내려놓았다.


원래 알던 것과 닮은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그런데 정말, 잔향이 평소보다 0.3초 정도는 길어진 느낌이다. 바이올린이 아주 잠시 멈춰 있다가, 얇은 고무줄을 잡고 놓아주지 않는 시점이 있다. 16분 22초부터겠다. 마냥 바람에 긴 선이 나부끼도록 내버려두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나아갈 방향 자체를 제시해주며 더욱 강하게 쥐어 잡는다. 가만 보니 당겨오는 것 같기도 하다.


마냥 흐느낄 시간을 주지 않고, 충분히 내 안에 머물다 사라질 수 있도록 시간적 여분을 내어주는 것이다. 파동이 치는 순간이다. 어디서 어디까지 향해야 하는가는 아무도 정해주지 않았지만, 이미 알고 있는 이처럼 그냥 둘러앉아 있다가— 깊고, 깊게 눈을 깜빡이다 보면— 얇게 손안에 왈츠를 그리다가, 어느 순간 그 아래 면을 응시하고 있게 된다.


이만큼 다채로우니 지루할 틈이 어디 있겠는가? 거기다 생각지도 못한 광경까지 목격했다. 임동민 바이올리니스트의 바이올린 f홀 안의 내부가 조명 아래에 놓이며, 그 안쪽 공간이 눈에 담겼다. 저 안에서 이 모든 소리가 울리고 있겠구나.


IV. Allegro con brio (활기차게)

악보가 사그락거리며 넘어가고, 이제 다시 Allegro con brio다. 활기차고 열정의 품 안에서 질주할 때다. 여기에 몇 개 더 추가하고 싶다. 활기차고 열정적으로, 압도시킨다! 뛰어도 다니고, 공중에서 탭댄스도 춘다. 지체한다는 흐름 자체가 없다.


확- 갔다가 다시 제자리에서 춤을 세 번 정도 추는데, 나아갈수록 밀착감이 거세진다. 거칠고 지직거림이 압축적으로 짙어진다. 활 끝 부분에서 소리가 다뤄지면 이런 소리가 나는 건가. 진짜 저번부터 느꼈지만, 이건 브레이크 댄스다… 정제된 난리법석이다.


잠시 피아노에게 흐름을 맡긴 다음, 미끄럼틀의 시간이다. 아니, 시소? 아니? 그네인가? 분명 오르고 내렸는데, 갑자기 이쪽에서 저쪽으로 갔다가— 지금은 손안에 실을 들어내 그 소리를 둥둥- 굴려낸다. 정신 못 차리는 틈에 이 모든 서사를 정리시킨다. 불편한 듯, 상큼한 듯, 듣기 좋은 것들이 막 길게 트릴하고, 춤을 추고, 그어지고, 아- 난리 났다!


연주가도 신이 났다. (분명해) 쉴 틈 없이 밀어붙이다가, 피아노의 오른손이 정제되어 두드려지는 순간이 있다. 엷고 얇게, 얇은 파동이 아래에 머물 때, 바이올린이 다시 이전의 가벼움을 논하지만, 가지고 노는 건 여전하다. 중간마다 아래로 파동치며 저음을 끼워 넣는 재미도 놓치지 않는다.


분명히 악보에는 단순히 까만색의 음표들일 텐데, 어쩌면 이렇게 간격마다 다르게 노래하려고 하시는가? 이 연주가도 디테일에 욕심이 많으신 게 분명하다. 그런데 사실, 계산된 흐름처럼 보이진 않는다. 그냥 그때마다 그어지고, 그어내고 싶은 게 매 순간 달라질 뿐인 것 같다.


사전에 계획한다고 나올 소리가 아니다. 이걸 다 외우고, 그때마다 실시간으로 행하는 거면… 멘사 가셔야 한다. 이건 ‘활기’와 ‘열정’이 아니라, ‘본능’과 ‘압도감’이겠다.


24분 32초, 보다 간격이 좁아지고, 더 내려왔다가, 가버리다… 긁는다. (뭔데?) 이쯤 되면 클래식을 보러 온 게 아니라, 바이올린이 어디까지 나노 단위로 춤을 출 수 있는지 보러 온 기분이다.


25분 00초, 이 악장의 거의 백미 수준. 소리가 흐느끼다 점차 상승선으로 이어지고, 다시 어둑한 서정성 아래에 자리한다. 이제 곧 결말로 치닫는지, 닿지 못한 저 아주 깊은 밑바닥까지 죽— 내려앉았다가, 날카롭고 불편하게 올라온다.


잊지 말자. 이 곡은 현대 음악이다! 알다가도 모르겠고, 지긋지긋하게 치닫고, 사람을 정신없게 만든다. 피아노와 이쯤 되면 거의 관객을 잡아먹으려 든다. (으악!) 살려줘를 슬슬 외치고 싶을 때쯤, 미소와 함께 활이 들어 올려진다. (끼약!)


김송현 Song Hyeon Kim (Piano) ⓒ 유진


바이올린에 잡아먹히는 바람에 피아노를 잊었다고 생각하신다면 큰 오산이다. 이중주에서 피아노만큼 중요한 존재가 또 있을까? 거대한 선이 크게 드리워져 있을 뿐, 관객의 자리를 조금 남겨두고 화음 전체를 둘러싸고 있는 것이 바로 이 악기다.


I. Moderato (적당한 속도)

피아니스트에 대해 잘 모르지만, 상체 움직임을 보면 연주가마다 서로 다른 특징이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건반 앞으로 숙이는 동작도 누구는 깊숙이 파고들지만, 김송현 피아니스트는 막 스며들어 간다기보다는 피아노를 존중하는 선 안에서 예의 있게 다가서는 느낌이 들었다.

건반에 손바닥이 닿는 순간마저도 꾹꾹 누른다는 느낌보다는, 톡톡—딱 필요한 만큼만 두드림과 여백 사이에 놓인 긴 선과 호흡을 맞춘다.


손이 꽤 크신 것 같은데도 본연의 파워를 절제하여, 오히려 적절히 띄워낸다. 발걸음-발걸음을 두드려내듯 연주한다. 이중주이기 때문에 막 기세를 드러내기보다는 살짝 톤 다운된 색 안에서 충분히 개별 건반을 위치시킨다. 딕션이 상당히 좋은 부드러운 발라드를 듣는다면 이런 느낌이겠다.


II. Scherzo: Presto (매우 빠르게)

바이올린이 날카롭게 치솟을 때, 브레이크와 조화 역할을 해줄 둥근 구슬을 어찌나 곱게 드러내시는지. 재촉하는 기색도 없고, 필요한 순간에 넓게 흐름을 한순간씩 차지할 뿐이다. 이 분은 어떤 물방울일까? 라흐마니노프의 경종은 아닌 것 같고, 그렇다고 막 생기 있게 튀어 오르는 소리 구슬도 아니다.


굳이 그 둘레를 묘사해야 한다면 다정한 타입이겠다. 그냥, 막 쓰다듬는 것과 부드럽게 손을 내려놓는 건 다르지 않은가? 그가 빚어내는 건 대부분 그 안에 놓여 있다. 날아다니기보다는 정중하게 에스코트하는 길이겠다.


그렇게 생각하면 두 분의 결이 꽤 다른 편 아닌가 싶은데, 합은 또 딱딱 맞아서 신기하다. 애초의 결이 완전히 다르진 않겠지. 다만 뻗어 나가는 방향성이나 색감, 성향이 달라서 오히려 재미있다. 프로코피예프의 노래 자체가 워낙 삐걱거리고 순간마다 재미를 추구하지 않던가?


임동민 바이올리니스트가 그 특유의 리듬감과 현대음악적인 바이브를 더하면, 김송현 피아니스트는 기반을 다지고, 관객이 길을 잃지 않도록 어깨 위 현의 소리와 직접 맞대응해준다. 중심축과 사방으로 흩뿌렸다가 회수되는 고무줄이 거세게 앞으로 진출하니, 어찌 휩쓸리지 않을 수 있을까.


III. Andante (느리게)

그렇다면 안단테에서는 어땠던가? 굳이 바라보지 않아도, 건반 위에 손가락이 어떤 양상으로 눌리고 있는지 상상이 된다. 꾹꾹 깊이 누르지 않더라도 드러날 마음은 다 드러난다. 피아노도 결국, 내려놓았을 때 소리 방울이 공중에 뜰 수 있는 걸까?


아까 임동민 연주가의 현의 소리가 기존 기색보다 짙고 다채로워졌다고 했다. 뒤로 물러가기보단 앞으로 여백을 빽빽 채워나가는데, 피아노는 그 정도를 제대로 맞춰주면서도 살그머니 안개가 되어 물러났다가 정지한다. 앞선 자와 근방에 있는 자가 사선에서 서로 발을 맞추니 자연히 시선이 가는 것이다.


ⓒ 유진

IV. Allegro con brio (활기차게)

피아노는 어떻게 활기를 보여줄 것인가? 갑자기 생각난 장면이 하나 있다. 하우스 콘서트를 직접 방문해 앞열에 앉으면 연주가의 뒤편 녹색 벽면에서 또 다른 주인공을 만날 수 있다. 바로 연주가들의 그림자다. 보통 짙은 회색과 옅은 회색으로 두 겹의 인물 음영이 그려진다. 4악장에서 거의 같은 박자 활을 긋고, 어깨를 들썩이던 모습이 생각난다. 이쯤 되면 그날의 주인공은 네 명이다.


느슨해졌던 흐름은 한순간에 날아가고, 바이올린이 힘껏 소리를 띄워내니 피아노도 그 옆에 딱 붙어 강하게 내려놓는다. 영상을 보면 그다지 힘을 많이 주는 것 같지 않은데, 왜 음량이 달라졌는지 신기했다. 바이올린이 신나게 지그재그-지그재그를 그을 때, 피아노는 마음껏 제 것을 하나씩 하향시킨다. (아, 특이하다.)


그렇다면 바이올린이 시소를 탈 때는 어떤가? 넘어지지 않도록 풀숲을 조성해주는 피아노겠다. 막 우기거나 들이민 적은 한 번도 없다. 꼭 곁에서만 맴돈다. 이 정도를 조절하는 게 분명 어려울 것 같은데, 너무 자연스럽게 해버리니까 쉬워 보인다.


일전에 최형록 피아니스트는 생기 있는 순수하고 청량한 녹빛이었는데, 김송현 피아니스트는 그것보다는 라벤더 빛이다. 다만 밀키하진 않고, 은은한 디퓨저 같다. 특히 잠시 바이올린이 사그라지고, 건반과 공기가 고요히 공명하는 순간에서 그 우아함이 두드러진다. 잔향이 길고 여운 있게 머무른다. 그러면서 순간마다의 노란빛을 짙은 남보라 기운을 띤 은빛 속에 심어 놓는다.


합은 또 얼마나 딱딱 맞아떨어지는지. 프로들한테는 당연한 일이겠지만, 나 같은 관중의 시선에서는 그마저도 신기하다. 많은 말과 약속을 하지 않아도, 시선을 여러 번 나누지 않아도, 이어갈 흐름을 이미 충분히 이해하고 있음이 시야에 담긴다. 분명 소리는 난리가 났는데, 각자의 악기에 몰입한 상태라는 게, 참— 신기했다.

2) 현악 사중주 1번 B단조, Op.50 - 김유경, 안세훈(Violin), 강윤지(Viola), 김호정(Cello)

ⓒ 유진

I. Allegro (빠르게)

도입부부터 ‘꺅’ 소리가 절로 나올 정도로 시선이 단번에 빨려 들어간다. 누가 먼저 끌어당기지 않아도 자연스레 당겨지는 흐름이 좋다. 야금야금, 능숙하게 전진하면서도 각기 다른 네 주인공의 개성이 화음 안에서 드러난다. 이날은 특히 비올라의 소리가 유독 가까이 들렸다.


무엇보다 네 연주가가 이 순간을 온전히 음미하며 연주하고 있다는 것이 확연히 전해져 좋았다. 웃어줘도 좋고, 악보에 몰입한 채 집중하는 표정도 좋다. 무엇이든 작곡가 앞에서 진심이면 충분하지 않겠는가?


제1바이올린의 목청은 어찌나 단단한지. 나머지 현악이 텐션 있는 밑선을 자잘하게 깔다가도, 어느 순간 미묘하고도 아름답게 하나가 된다. 듣기만 해도 마음이 훅- 끌려들어 가는 순간, 다홍빛의 감각과 함께 살짝 올라간 입꼬리다. 각자의 자리에서 서로 다른 파동을 그려내는 이 악장을 놓치면, 사중주의 매력을 절반은 지나쳐버리는 일이겠다.


II. Andante molto (매우 느리게)

어느새 한밤중으로 툭, 떨어진다. 눈앞이 새카매졌을 때, 발밑에 조용히 떠오른 네 갈래의 이정표가 바로 이 소리다. 곧 활기를 되찾은 듯, 흐름은 뒤뚱거리고, 제각기 삐걱거리기 시작한다. 역시 현대 음악이다. 악장 하나가 일정한 톤으로 흘러갈 것이라는 착각은 접어야 한다.


순식간에 뒤집히고, 갑작스럽게 춤추듯 흘러가는 것이 이 세계의 매력이다. 여기서도 활은 바쁘게 춤을 추고, 소리는 튕겨지고, 합은 짙어지다가 한 몸처럼 맞아떨어진다. 어찌나 새초롬하고도 정제되었는지. 프로코피예프 머릿속이 어땠는지는 모르지만, 이렇게 다양한 장난감들이 나열되어 있다면 그냥 구경이나 실컷 하련다.

III. Andante (느리게)

아— 이제는 삐걱대며 운다. 울음이 끅끅, 멈추지 않는다. 순간의 감정에 잠식되어, 고단함 속에서 몸부림치는 한 사람의 서사가 흘끗 보인다. 어째서 이토록 드라마를 그려낼 수 있는가? (알다가도 모를 작곡가) 슬픔을 이토록 사색적으로 달래주는 곡이 또 있을까.


하지만 곧 깨닫게 된다. 이 곡은 마냥 어화둥둥 하게 위로하지 않는다. 회색 자갈빛 위에서 슬픔은 슬픔보다 더한 감정으로 덮여야 함을 고한다. 신경질, 고단함, 처연함, 애절함이 연달아 앞에 드리워지고 고조된다.


클래식을 듣는 이유가 바로 이런 순간에 있겠다. 아무 생각 없이 네 현의 품 안에서 ‘지금’을 잊고, ‘당장’을 흐느낄 자유를 얻는다. 1, 2악장의 바쁜 텐션은 잠시 접어두고, 충분히 품어낼 시간이다. 그런 와중에 네 개의 악기가 동시에 흐느껴주기 시작한다. 파동이 파도가 되는 순간이다.


흐름은 곧 길이 되고, 진동은 깊이를 얻는다. 어디에서 사람이 이토록 자유롭게 울부짖을 수 있겠는가. 제 목소리를 직접 드러내는 대신, 활 하나와 현 몇 줄에 마음을 덧대어보는 것. 그리고 그 상태로, 고요히 모래알이 되어 가라앉는 것이다. 그렇게, 그들은 다시 활을 들고 떠나갔다.



3) 현악 사중주 2번 F장조, Op.92 <카바르디니안> - 김재원, 이우일(Violin), 이수민(Viola), 최경은(Cello)

ⓒ 유진


I. Allegro sostenuto (빠르고 지속적으로)

이 곡의 배경을 검색해보았을 때 '낯설고 신기한 소리', '흥겨움과 슬픔의 교차' 라는 설명이 있었다. 실제로 시작부터 그 분위기가 선명하게 느껴진다. 프로코피예프는 첫 숟가락을 특이하게 잘 뜬다. 매 순간이 정착하지 못한 상태의 아이러니인데도 그 안은 기묘하게 아름답다.


제1바이올린과 제2바이올린이 함께 텐션을 맞춰가는 순간들이 특히 기억에 남는다. 앞서 들었던 1번 사중주보다 더 ‘딱’ 맞아야 하는 순간이 많고, 짙고 고동색의 소리선이 반복적으로 등장한다. 마치 병사들이 “헛-둘-헛-둘” 걸어가는 듯한 박자감으로, 한 걸음만 내딛어도 시선이 자연스레 끌린다.


각 악기는 미묘하게 다른 표현으로, 같은 길을 걷는다. 이 알다가도 모를 매력이 프로코피예프 안에 가득하다. 평화로워지는가 싶다가도, 익숙한 흐름을 철저히 거부한다. 생전 처음 겪는 맥락의 사랑과 안정감이다. 앞서 소나타에서는 바이올린이 솔로로 날아올랐다면, 여기서는 네 현악기가 서로 다른 위치에서, 다른 방식으로 하늘로 둥-둥- 뛰어오른다. 어떤 이는 쭉- 그어내고, 어떤 이는 짧은 선을 그리고, 또 어떤 이는 손가락을 두드린다.


왜 듣기 좋을까? 안정감 있는 톤은 아닌데, 고개가 그쪽으로 저절로 향한다. 분명히 불편하라고 그려낸 구성 같은데... 아닌가? 생각이 길어질 즈음, 기가 막힌 훅(hook)같은 멜로디가 되돌아온다. 참, 난감할 정도로 묘하다.


II. Adagio (느리게)

첼로가 먼저 울기 시작하면, 나머지 현악기들은 그 위에서 지켜본다. 상공 아래를 유영하는 네 가지 음색. 대지의 심부를 건드릴 수 있는 악기가 있다면, 그것은 제일 큰 형태의 나무 악기일 것이다. 내 앞에 있던 첼로의 f홀을 멍하니 바라봤던 기억이 떠오른다. 분명 쉬니트케 공연 때는 그 알파벳이 무서웠는데, 이제는 그냥 멍-, 모르겠다. 무섭다기보단, “넌 어쩌면 그런 소리를 그렇게 쉽게 내뱉니?” 묻게 된다.


짧고 간결한 파동일 때도 있고, 길고 여운 깊게 흐를 때도 있다. 그때마다 작곡가 특유의 높은 아리아 선율이 계속된다. 그러다가 둥-둥-, 분위기가 가볍게 바뀌는데, 소리가 예뻐진다. 정말, “프로코피예프 왜 저래?” 소리가 절로 튀어나온다.


제2바이올린과 비올라는 손가락으로 동-동- 현을 두드리고, 제1바이올린은 그 앞에서 두터운 선을 긋는다. 이쯤 되면, 프로코피예프는 자기가 듣고 싶은 소리를 전부 이 안에 넣어둔 것 같다. 연주가들은 무슨 생각으로 이 악장을 연주하는지 궁금해진다.


어떤 체계가 명확히 느껴지는 것도 아니라서 의문이 더 커진다. 다만, 하고 싶은 걸 다 해줘서 좋기도 하다. 마침 나도 고음의 포물선이 높게 떠오르는 선율을 좋아하지 않던가. 내 취향이 듬뿍 담겼는데도 표현이 색다르고 변화가 많아 낯설게 느껴질 뿐이다.



III. Allegro (빠르게)

왜 또 두드리고, 요상해지고, 긋고, 갑자기 합을 맞춰가는가. 흐름을 주도하다가도… 또! 또! 듣기 좋은 화음을 쨍- 하고 들려준다. 이 매력, 어쩌란 말인가? 갑자기 질주하는 비올라와 첼로. 그 사이에서 제1바이올린은 왜 그렇게 가녀려지는가? 제2바이올린은 또 왜 지직거리는가? 기묘한 걸음걸이로 질주하는데, 어떤 결말로 끝날지 전혀 예상되지 않는다.


그러다 또 갑자기 가라앉는다. 현대 음악 작곡가들은 대체로 예고라는 걸 모른다. 그냥 가는 거다. 설명은 사치고, 그 순간마다 퍼지는 음의 모양새를 있는 그대로 즐기라는 것일까? 추측조차 쉽지 않다. 하지만 그게 목적이라면, 이건 명곡이다.


단락 단위로 나눠봐도, 표현이 지루하거나 평이한 부분이 한 군데도 없다. 연주가들의 표정에 때때로 스치는 미소를 보면서 생각했다. 얼마나 흥미로울까? 이 특이하고, 듣기 좋으며, 끊임없이 텐션을 요구하는 작품을 연주한다는 것은.


마지막엔 소나기가 내리고, 폭우도 쏟아진다. 진흙탕이 드러나고, 실선처럼 빛이 드리운다. 속도감은 점차 급박해지지만, 두드리는 것을 잊지 않는다. 디테일이 정말 미쳤다. 설명하기조차 벅차다. 이 말을 내려놓자마자 소리는 가벼워진다. 진짜… 난리다, 난리.


누가 클래식이 지루하다고 했던가? 소리선 하나만 제대로 잡아채도, 당신이 상상한 그 이상의 것을 마주할 수 있다. 이젠 그냥 두 손 다 들었다. 연주가들도 완전히 몰입해 즐기고 있다는 게 한눈에 보인다. 어디서 이런 탈춤을 추겠는가? 안 온 사람만 아쉬운 거다.



4. 끝내며 — '상당한' 목요일

ⓒ 유진

뭐, 길게 설명할 필요도 없다. 아마 이 날의 프로코피예프의 소나타와 현악 사중주는 한마디로 브라보였다. 클래식 공연장을 꽤 여러 번 다녔지만, 내 입 밖으로 ‘브라보’를 외쳐본 적이 없다.

노래 부르는 걸 좋아하지 않아 노래방도 안 가는데, 그 한 단어를 어떻게 또 성량 좋게 외치겠는가? 그런데 바이올린 소나타에선 4악장, 현악 사중주 1번에선 1악장, 그리고 2번에선 3악장이 끝난 순간마다, ‘브라보’가 목 끝까지 차올랐다.


너—무 잘했다.

금호아트홀에만 아름다운 목요일이 있는 줄 알았는데, 하콘에서도 상당한 목요일을 만나버렸다. 프로코피예프를 이 요일에 배정한 건 정말 신의 한 수다. 사람이 신이 나면 어떻게 되나? 평소 안 하던 짓을 하기 마련이다.


그날은 늘 도망가던 와인 파티에도 남아 홍냥냥 얘기도 하고, 눈이 마주친 연주가에게 너무 잘 들었다고 말도 전했다. 이상하게 혼자 키보드 앞에 있을 땐 구체적으로 어떻게 좋았는지 구구절절 논할 수 있는데, 막상 구어로 말하려 할 땐 한계가 있다. 그냥 냅다 “좋았어요!” 외쳐버리기!


그 아쉬움 때문에 글이 길어지는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기회가 있어서 임동민 바이올리니스트께 느꼈던 소리 변화에 대해 질문을 드릴 수 있었는데—정말 ‘현’을 바꾸신 게 맞았다! 이걸 눈치채다니 (꺄) 너무 행복했다.


스스로 공중에서 잡아챈 그 한 문장이 실제였다는 것이 얼마나 기쁜 일인지 아시는가? 기쁘다! 행복하다! 즐겁다! 괜히, 내가 옳은 방향으로 이 곁을 잘 맴돌고 있는 것 같아서 마음이 동동- 뛴다. 원래 바보들은 사소한 것에 행복해하기 마련이다.


공연을 볼 때 아무 생각 없이 멍하니 있는 것도 좋지만, 나는 좀 다르다. 생각을 안 하면 졸음이 오고, 잡아채지 않으면 남는 게 없다. 물에 빠졌을 때 허우적대는 사람을 먼저 구해준다고 하지 않던가? 즐거운 방향대로 마구 손을 내밀고, 손뼉을 짝짝 치다 보면, 이렇게 행복해진다.


이봐, 회상하는 지금도 이만큼 신이 나지 않았는가. 이래서 기다리면 안 된다. 공연 5분 전에는, 단단히 일러줘야 한다. 무엇을 말인가? 간단하다. 특명, 추억을 쟁취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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