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삶의 나침반처럼 여기게 되는 책이 있다.
소설 "위저드베이커리" 는 구병모 작가가 쓴 청소년문학부분 수상작의 성장소설로 개인적으로 내 인생도서로 꼽는 몇 번이나 읽은 책이며, 집에 몇 권이나 있는 책이다.
이 소설을 20대 초반무렵에 처음 접하고 읽었다. 위저드 베이커리 이야기를 할 때마다 이 책을 처음 손에 붙잡고 몇날 몇일 읽었던 20대에 내 모습이 떠오른다. 앞으로 스스로에게 주어질 무한한 가능성이 되려 무한한 불안이되는... 그런 나날들을 반복했던 나는 성인의 나이로 살아가고 있는 청소년이었다.
책 이야기를 하기에 앞서 옆 길로 새는것 같지만 20대의 내가 어땟는가에 대해 대표적으로 예시를 하나 들자면 이런 에피소드가 있다. 그 당시 지금의 내 나이와 비슷했으며 한창 왕성한 사회생활을 하고 있던 큰 매형과 둘이서 인생을 살아가는데 있어 "나"라는 사람이 소유하고있는 강점, 어드밴티지에 대한 이야기를 잠깐 했었을 때가 있었는데.... 그 떄 큰 매형은 자신의 미래에 대해 늘 불안해하고 위축되어 있는 나에게도 강점이 있다는 말을 하면서 아직 20대 초반인 내 나이가 젊기에 시간과 기회가 많고, 그것이 나의 장점이자, 강점이라는 멘트를 해주었다. 이게 뭐... 매형 입장에서는 "아직 너는 젊으니까 벌써부터 세상 다 끝난 표정으로 지내지말고 힘내라" 정도의 악의없는 의도로 내뱉은 가벼운 응원이었을텐데, 그 때 난 그에 대해 곱씹으며 "아니, 뭐라고? 젠장 내가 능동적으로 성취한 업적도 아니고, 나에게서만 빛나는 고유한 강점도 아닌 누구나 태어나서 먹고 숨만쉬어도 채워지는 나이 따위를 나의 장점이랍시고 말하면 결국 나는 특별한게 아무것도 없는 인간인거냐? 지금 나를 멕이는건가? " 라는 생각을 하며 혼자 속으로 빈정상하고 시무룩해졌던 것이 기억난다.
자신의 상태에 대해 짜증을 갖고 있고, 무언가 변화, 혁신을 주어서 스스로에게 당당해지고 싶으면서도 가능성이 존재하는 상태를 유지한 채로 무언가를 선택하기를 무한히 미루며 무한히 책임을 피하고 싶어했다. 잘못된 선택을 할까봐, 아무것도 없는 상태가 지속될까 걱정했다. 어떤 길로 가야할지, 그리고 그것을 어떻게 준비해야할 지도 몰랐던 과거였다. 그런 혼돈의 시기에 어떤 기대도 없이 이 책을 선택했다. 경제서적도, 자기계발서도, 수험서도 아니고 그저 시간을 재미있게 보내기 위한 소설을 말이다. 그리고 내 기대에 부응하듯이 이 소설은 꽤나 만족스런 재미를 선사했다.
지극히 개인적인 의견으로 나는 이 작품이 현재 베스트셀러 픽션, 소설 장르에서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고, 유행되고 있는 불편한 편의점, 달러구트 꿈백화점, 휴남동 서점 등의 특정 장소와 그 장소를 찾는 사람들의 따듯하고 힐링적인 에피소드를 조명하는 스토리 포맷의 다소 다크하고 시크한 버전의 효시격 되는 기념비적인 작품일 수도 있겠다고 생각한다.
이 소설의 줄거리를 대충 소개하자면... 까칠하고 시니컬하지만 속은 따듯한 마법사 점장과, 밤이되면 파랑새로 변하는 귀여운 점원이 있는 동네 어딘가의 작은 베이커리 가게있는데. 그곳에서 그들은 신비한 마법이 깃들어있는 매우 유혹적이고 매력적이며, 어떤 의미에서는 치명적인 리스크를 불러올 수 있는 빵들을 상품으로 사람들에게 거래하며 천연덕스럽게 운영을 하고 있다. 그러한 공간에 하드보일드한 가정사를 갖고있는 어느 소년(주인공) 이 집안에서 모종의 누명을 쓰고 위협에 처하자, 급한 마음에 무작정 그 마법사 점장이 운영하는 베이커리로 도망을 쳐와 잠시 숨겨달라고 도움을 청했고, 점장은 소년의 부탁을 들어준다. 그렇게 소년은 그곳에서 일정기간 외부로부터 보호받고, 아르바이트로서 그곳의 일을 도우며 시간을 보내게 된다는게 이 소설의 큰 얼개이다. 주인공은 점차 이야기가 진행됨에 따라 선택과 책임에 대한 각오와 대가가 따르는 마법의 빵에 관련해 컴플레인을 하러 오는 고객들과 그들에게 자신이 선택한 일이니 받아들이라고 일침하는 점장의 모습을 보며 여러 옴니버스 스타일의 에피소드를 겪게되고, 어찌저찌 그 안에서 내적인 성장을 거듭한 끝에 자신이 처해있는, 그리고 앞으로의 삶에서도 얼마든지 겪게될 위기와 풍파에 스스로 맞서는 자세를 갖게 된다는... 어찌보면 왕도적인 이야기다.
그리고 그런 왕도적인 재미를 바탕에 두고서, 이 소설만이 갖고있는 특별한점 하나 이야기 하자면, 결말의 구성에서 2가지의 결말이 준비되어있고, 독자가 선택해서 읽을 수 있는 구성을 취하고 있다는 점이다. 작가가 준비한 2가지의 결말중에 확실하게 내 마음에 드는 하나가 있었다.
시간을 돌리지 않게 되는 선택. 그리고 그 선택에 대한 여파를 겪고서도 살아가려는 주인공의 잔잔한 변화를 보여준다. 비록 눈에 띌만치 혁신적이진 못해도, 오랜시간에 걸쳐 전보다는 분명 전진한 모습이었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면서 어쩌면 인생에서 좋은 선택, 옳은 선택을 하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무슨 선택이 되었든간에 자신의 선택으로부터 등돌리지 않고 나아가려는 태도라는 관점을 갖게되었다.
어떤 작품이나 창작물들은 시기와 상황, 내 상태에 따라 생각과 감상을 달리하게 되는 부분들이 있지만 적어도 위저드베이커리라는 소설에서 내가 좋아하는 결말이자 내가 선택한 결말에 대한 감상 만큼은 이 책을 처음 읽었던 20대에도, 30대 중반을 지나고 있는 지금에도, 결코 취향이나 기호에 따라 달라지지 않았다는걸 새삼스레 느낀다. 그래서 내가 이 책을 좋아하고 인생도서라고 여기나보다. 내가 진정 무엇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옳다고 생각하는지, 내가 어떤 태도로 살아가고 싶은지를 상기하게 해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