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오후에 애인과 함께 참여했던 독서모임에서 다른 참가자분들 한명이 가져온 책중에 참으로 오랜만에 마주하게 된 도서가 있었다. "꽃들에게 희망을" 이라는 제목의 그림동화 같은 책이다. 나는 이 책을 내가 정신과 병동에 처음 입원했을 때. 그 병동안에 있는 서재에서 접했다.
이 책에 대해서는 말못할 웃픈추억이 있는데,비율로 따지자면 3:7정도로 웃음보다 슬픔의 감정이 더 큰 느낌의 추억이다. 당시 난생 처음 정신과에 입원을 하게된 경위에 대해 회상해 보자면 고질적인 외로움과 내 미래에 대한 우울감, 무력감 등등 갖가지 스트레스 요소가 오랜시간 과부하가 올 정도로 내면에서 누적되고 있었던 차에 마지막 화룡점정으로 제대로 망한 짝사랑을 추가하게 되면서 마침내 정신의 기폭버튼이 눌린것 같다.
때는 십여년 전, 대학졸업을 앞둔 시점에서 전공과 관련된 직업학원에서 2개월 남짓 알게 된 누군가에게 나 혼자서 불같은 짝사랑의 감정을 품게 되어서 학원 수료이후 그 사람과의 접점이 없어지자 출사표를 던져놓은 심정으로 모종의 결심을 하고 필사의 구직을 하다가 (왜~인지는 모르겠으나 당시 나는 내 취업의 성공이 그 사람에게 다가갈 수 있는 최소한의 자격이자, 이 관계의 성공가능성에 필수불가결한 요소? 라는 단단히 잘못된 인식을 갖고 구직에 임하고 있었다. ) 그것이 이래저래 대차게 망해버려서 (말로 다하기 뭣같은 구직과정이었지만 굳이 이 부분을 무슨 신파영화 찍듯이 애써 길게 서술하고 싶지 않다. ) 끝내 자폭같은 고백공격을 하게 되었고, 당연하다면 당연하게 실패의 고통속에서 정신 못차리고 지내다가 결국 가족들의 권유로 입원을 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그 입원생활을 시작한 시점에 이 책이 등장한다. "꽃들에게 희망을"
정확히는 일부분의 페이지가 찢어져있는 상태의 불완전한 책이었다. 어느 부분이 찢어져있었는지는 후에 서술할 예정. 일단, 책의 줄거리로 시작을 해보자면 이 책은 현대 사회에 대한 메타포가 가득한 특징이 있는 책으로, 애벌레들이 주인공이자, 그리고 이 세계관을 구성하는 인간군상들로 나오는데, 이 세계관에서는 "무언가 대단한 것"을 위해서 수많은 애벌래들이 자신들의 몸으로 거대한 탑을 만들며 그안에서 오로지 서로를 짓밟으면서 올라가야 무엇인지 모를 대단한 것에 닿을 수 있다고 믿으며 거대한 경쟁속에 살고 있었다. 이 이야기의 주인공인 호랑줄무늬 애벌레 또한 그 거대한 대열에서 부대끼다가 노랑애벌레를 처음 만나게 되고 사랑에 빠져 경쟁의 탑에서 잠시 내려오지만, 어느 시점에선가 "무언가 대단한 것"을 다시 손에 넣으려 노랑애벌레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탑을 다시 오르게 되는데... 줄무늬 애벌레가 다시 고통속에서 탑을 지지고볶고 오르는 동안 혼자 바닥에 남겨진 우리의 히로인 노랑애벌레는 나비가 되려는 준비를 하는 어떤 노인 애벌레를 만나게 되는데....
오늘에서야 알게 되었지만 바로 여기서 그 노인 애벌레가 노랑애벌레에게 본인이 나비가 되는 장면을 시연하는 부분이 "찢--!!!! " 하고 찢어져있던 것이었다. ㅋㅋㅋ 안그래도 당시의 난 취준하면서 온갖 망상을 하며 말도 안되는 피해의식에 절어있던 사람이었는데, 그 많은 페이지중에 하필이면 이 부분이 찢어져있네? 나는 그 자리에서 책을 덮어버리고 거기서 또 멘탈이 와르르... 하게 된거다. (지금 생각해보면 설사 이 책의 내용이 본격 NTR 장르물이었다고 치더라도, 그게 진짜 현실에서 일방적인 짝사랑에 실패한 나와는 어떠한 연관도 없을 것인데, 대체 뭔생각으로 그런 연상을 한것일까 싶다만..ㅋ ) 아무튼 그... 뭐 눈엔 뭐만 보인다고... 여기서 나는 소위 "NTR" 이라는 사랑하는 사람을 다른 누군가에게 빼앗기는 마이너 장르물을 떠올리면서 병동안에서 책을 붙들고 "으아아아아!!! 노인애벌레 이 개자식 그러지마!! 으아아아!!!!" 라고 속으로 되뇌이며 미친놈처럼 오열을 해버렸고, 영문도 모르는 직원들과 다른 사람들이 괜찮냐면서 내게 다가와 걱정해주고, 위로를 해주는 모먼트를 겪게 되었다. 이정도면 웃프다는 말이 어울릴지, 슬프다는 말이 어울릴지 모르겠지만... 이제와서 잘 지내고 있는 내가 그 때의 나에 대해 자기연민을 해봤자 아무래도 무의미하고 소용없는 일 아니겠나~싶다. ㅋㅋㅋㅋ
웃픈 추억 이야기는 여기서 끝.
아무튼, 그래서 그 때의 그 일부분이 찢어진 책이 아니라, 멀짱하게 온전한 컨디션의 책을 들고 모임에 와준... 이제 모든 것을 제대로 설명해줄 참가자분이 함께했던 어제의 독서모임 이야기로 넘어오자면, 이 "꽃들에게 희망을" 이란 책은 조금 더 거시적인 방향성을 가진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책인것 같았다. 우리가 현재 처해있는 과도한 경쟁구조에 대해서 회의적인 의문을 제기하며, 그에 대한 대안으로 탑에서 이탈해 스스로 하늘 저 높이 날아다닐 수 있는 나비가 되는 노랑애벌래를 조명하며 우리 사회에서 조금 더 평화적이고, 발전적으로 각자 이루고자 하는 행복을 추구할 수 있는 대안적인 무언가는 없을까? 라는 의미있는 고민과 인사이트를 우화적인 이야기를 통해서 보다 자연스럽고 쉽게 독자에게 건내주는 좋은 책. 그것이 내가 수 년간 동화를 가장한 NTR물로 오해를 했던 기억이 있는 이 책의 참된 전말이었다.
그렇게 "아! 전체를 보면 그런 이야기였구나~" 하면서 오늘 날의 내 안에서 이 책과 이 책을 처음 접했던 당시의 미숙했던 스스로에 대해 나름의 정리를 깔끔하게 끝내려고 할 그 무렵!!
이게 뭔일이람...
뜬금없이 이 독서모임에서 이례적으로 이 책의 내용을 중심에 두고 다른 참여자들끼리 새로운 싸움의 불씨가 피어올라 거대한 각축전이 벌어지게 되었는데, 이 책의 내용에서 등장하는애벌레들이 쌓아올리고 있는 거대한 "탑"의 존재에 대해 그것의 허망함과 필요성에 대해서, 그리고 "나비"가 된다는 것의 현실적 가능성에 대해서 많은 이견들이 대립되는걸 볼 수 있었다.
홍코너. 어린 시절 사업을 하고 싶어했던 꿈과 야망이 많은 자신감넘치는, 부모의 반대만 아니었으면 진작에 사업왕이 될 수 있었던... 그러나 어쩐지 자신의 현재에 변명이 참 많은 한 참가자분과 그와 대적하는 청코너. 마치 자신이 기성세대의 대표로 나왔다는 사명감을 갖고서 가소롭다는 듯한 악의를 갖고 사업 쉬운게 아니라며 그의 꿈과 가능성을 조소하는 어딘지 임팩트있는 이명을 앞에 내세우며, 아이러니하게도 자신을 이미 나비가 되었다고 확신하는 또 다른 참가자분, 그리고 또 다른 제3의 세력으로 홍코너와 청코너에게 번갈아 자극적인 질문을 하며 그들의 싸움을 부추기고 거대한 혼돈을 만들어놓고 주체할 수 없다는듯한 미소를 띄며 상황을 즐기고 있는.... 흡사 다크나이트의 조커와 같은 느낌으로 사태를 악화시키며 관망하는 외계에서 온 인류학자 같은 느낌의 참여자까지... 대환장의 콤비네이션으로 원래 동글동글하고 부드러운 화법으로 진행되어왔던 평화로운 모임이 미궁속으로 빠져들고 있을 때. 그것을 필사적으로 애먹으며 수습하려고 하는 리더님과, 싸움의 중심이 되고 있는 이 책을 오늘 그저 즐거운 모임을 위해서 가져왔을 뿐인 차분하고 안정적인 느낌을 주는 참가자분을 번갈아 지켜보며 애인과 함께 조용히 이런 생각을 했던거 같다.
음... 오늘 저녁엔 뭐먹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