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광복절 휴일 저녁 9시쯤이었다. 작은 방에서 게임을 하고 있었는데, 와이프가 해야할 얘기가 있다며 불렀다. 거실로 나와서 이야기를 들어보니 와이프가 오늘 내내 잔잔하게 겪었던 가슴의 눌림 및 답답함이 신경쓰인다며 오늘 밤에라도 응급실에 가봐야할지 어쩔지 고민중이라고 했다.
나는 이 말을 듣고 처음에는 적잖이 당황스러웠다. 지금 되돌아보면 그랬던거 같다. 걱정스러운 감정보다 당황스러운 감정이 먼저들었다. 뭐랄까.. 지쳐있었나보다. 안그래도 그 주 초반에 와이프에게 갑작스런 허리디스크 관련 이슈가 생겨서 외과계적 병치례를 하고 있는 와이프를 지난 한 주간 이래저래 케어해오느라 내 얕은 인내심에 한계가 왔던 터였다, 그 날 저녁 함께 시내를 땀흘리며 돌아다녀 찾은 약국에서 먹어도 별 차도가 없는 약을 사고, 카페에서 건강악화에 대한 우울한 이야기들을 주고받다가 해질녂즈음 집으로 돌아와 같이 에어컨을 쐬며 와이프에게 이렇게 말했다. 사람 마음에는 여러 모양의 니즈(NEEDS)가 있고, 그 니즈들에는 저마다의 형태와 모양이 있는데.. 자기는 그걸 고려하지 않고 그냥 그것들을 전부 "나"라는 존재로만 메꿔내려고 하고 있는것 같다고, 그게 어느정도 이상으로 지속되니까 기가 빨린다고.... 그렇게 와이프에게 조심스레 컴플레인을 걸어놓고 거실을나와 작은 방으로 들어와서 게임을 하며 개인시간을 보내고 있었더랬다. 그런데 그로부터 1-2시간채 안되는 사이에 와이프가 방문을 열고 나를 거실로 부르더니 가슴의 눌리는 듯한 답답함으로 인해 지금 가까운 병원 응급실에 가봐야겠다는 이야기를 꺼낸 것이다.
나도 알고있다. 지금 이 가정, 이 집에서 이 순간에 이 사람을 케어할 수 있는 유일하며, 최선의 사람은 바로 나라는걸. 그렇기 때문에 아무리 미심쩍어도 건강이상을 겪고있는 와이프 본인이 응급실에 가야겠다는 말을 했으면, 뒤도 생각 안하고 일단 바로 옷갈아입고 같이 가는게 옳은 행동이라는걸. 그걸 아는데... 그 생각을 행동으로 바로 옮기는 것이 뭔~가 쉽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와중에 내 속에서 옹졸한 마음들로 저글링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 와이프가 겪고있는 이 증상이 당장 응급실이 필요할 정도로 심각한 사안은 아닐거 같다는 의심, 그 다음날 나는 일찍 출근도 해야되고, 와이프도 허리 MRI검사 판독받으러 오전일찍 병원예약이 있는데 그 일정들을 어그러뜨릴 수 있는 변수가 생기는게 싫다는 마음. 그리고 그 당시의 말초적인 피로함과 귀찮음 등등... 각종 번뇌들이 내면에 제법 상존해 있는 상태라서 단 둘이 있는 집에서 두 사람이 있고, 의견은 반반인데, 나 혼자서 확신을 갖고 호응을 하기가 어려웠다는 것이다.
그자리에서 최상책은 아니었지만, 나는 일단 와이프에게 친정 어머님께 전화해보는 것을 권했다. 아마도 나는 내가 취해야할 행동에 대해서 확신을 더해줄 수 있는 무언가가 필요했던 모양이다. 한 밤중에 갑작스레 걱정시켜드려 미안한 일이지만, 나는 어머님의 말씀. 그러니까 제 3자의 말을 통해서라도 응급실에 가보라는 말을 들어야지 내가 움직일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던거 같다. 내 말을 듣고 와이프가 어머님께 전화를 했고, 스피커폰을 통해서 2~3분 정도 대화를 나누다가 어머님께서 정히 걱정된다면 응급실에 가보라는 말씀을 하시고나서 나도 그에 호응해 와이프와 함께 택시를 잡고 가까운 병원의 응급실로 이동을 했다. 광복절 밤의 응급실은 걱정과는 달리 한산했다. 특별한 대기시간도 없이 바로 접수가 완료되고, 진료가 시작되었고, 와이프의 가슴답답함 증상을 분석하는데 필요한 다양한 검사절차들이 진행되었다. 와이프는 환자복을 갈아입고, 침대에 누웠다. 팔에는 링거주사를 꼽았다. 그 뒤에 심박수 측정, 심전도 검사 등등 이런저런 검사들이 진행되는동안 나는 침대 옆 보호자석에 자리를 잡고 앉았고, 와이프와 나는 이런저런 스몰토크들을 나누면서 병상에서의 시간들을 보냈다. "여긴 환자 침대옆에 직사각형의 저렴하고 불만족스런 질감의 보호자 침대는 왜 없는거냐고 막상 없으니 아쉽다고. ", "병원환자복만 입으면 방금전까지 팔팔했던 사람도 병약해보인다고, 환자복 특유의 디버프가 있는 모양이라고. ". "여기서 무사히 살아서 나가면 가장 먼저 무얼하고 싶냐고. ", "이번주는 참 다이나믹해가지고 온라인 글쓰기 모임에 쓸거리가 풍년이라고. ", "지금 겪고있는 이 모먼트가 내일 망할 회사에 돌발 연차내기 정말 좋은 규격의 구실아니냐고. " 등등... 우리는 별 쓰잘떼기 없는 말들과 농담들을 서로 주고 받으며 병상에서 웃고, 떠들고, 걱정하고, 졸기도 하면서... 그렇게 2시간 정도를 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