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급실 병실]
"그... 자기. "
"응? "
"자기한테 지금 꼭 해야할 말이 있어. "
"응, 뭔데? "
"만에하나, 혹시라도 여기에서 보내는 밤이 길어지게 된다면 말야... 내가 아까 집에서 자기한테 말했던거 있잖아. 지친다느니, 기가 빨린다느니, 죄다 나로 다 떼우려고 한다느니... 컴플레인 했던거... 그 말들 전부 내가 틀렸던걸로 하는거야. "
"에이, 설마 그럴리 없을거야. "
"이렇게 얘기 안해두면 진짜 후회할거 같아서 그래. 헤헤"
"알았어. 헤헤. "
"우리 괜찮을거야. "
"맞아 그럴거야.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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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로부터 얼마나 지났을까... 의사가 병실에 들어와 소견을 전했다. 지금까지 진행했던 검사들의 결과상으로는 특별히 문제나 이상이 발견되지 않았으니 오늘은 이만 귀가하는게 좋을것 같다고 했다. 그리고 그럼에도 증상이 정히 신경 쓰인다면 CT나 정밀검사를 할 수 있도록 추후에 진료를 예약해주겠다고 말했다. 사실상 와이프의 가슴답답함이 의학적으로는 걱정해야할 증상이 아니라는 판정을 받은 셈이다. 큰 일은 아니라는데서 오는 안도감에 와이프와 나는 깊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휴~ (잭맨). "
"휴우~ (그랜트). "
[집으로 돌아오는 택시]
"걱정 많이 했는데 정말 다행이야. 자기. 큰 일은 아닌거 같아서. "
"그러게 말야. 30만원짜리 안심을 구입했네. "
"그거 참 비싼 안심이다 ㅋㅋ "
"그래도 이렇게 하니까 확실히 속은 편안해지잖아. "
"맞아. 이래도 안심 못하면 그건 진짜 답도 없는 상황이지. ㅋ"
"뼈가 있네 ㅋㅋ, 하긴 그래, 그것도 맞아. "
"자기. "
"응? "
"고마워. 어떻게 보면 괜히 응급실까지가서 요란떨은건데 그래도 책망안해줘서...사실 나오면서 걱정했거든. "
"뭔가 아쉬우면 책망해줄 수도 있지 ㅋㅋ"
"히잉;; "
"농담이야 ㅎ "
"그래도 이 말은 할 수 있겠네. "
"뭔데? "
.
.
.
사실 누가 옳았고, 누가 틀렸고가 뭐가 중요하겠나? 걱정거리가 될 만한 큰 일이 아니었다는게 중요한거지!! 집으로 가고있는 택시에서 혼자 이런저런 상상을 해봤다. 이렇게 와이프와 함께 나란히 제 발로 응급실에 찾아갈 수 있는 타이밍에 찾아갈 수 있는것 자체가 매우 감사한 일이 아닌가~하고 말이다. 만약 이 문제가 큰 문제였고, 응급실로 찾아갈 떄 스스로 이동하기 힘들정도로 와이프의 상태가 위독했다면? 그 땐 그야 119를 불렀을거고, 119 형님누님들이 어떻게든 해주셨겠지...만... 흠...흐음... 자동차... 사야되려나?
저번에 양가 상견례 자리에서 자동차 그거 싼거는 400만원 돈이면 싸게 사지 않냐~너도 빨리 연수받고 차사라고 했었던 누나&매형들의 말이 뭉게뭉게 떠오른다. 그 당시에는 갈등만들고 싶지않아서 앞에서 니예~니예~ YES맨 행세를 했었지만, 속으로는 제법 엿같아 했던걸로 기억한다. 이게... 아닌게 아니라 누나&매형들한테야 400만원 정도의 돈이 일상적이고 우스운 액수지만, 와이프랑 살림 합칠 때 전재산 올인해서 대출받고 거의 제로베이스로 신혼살림 꾸리고 있는 내 입장에서는 갑자기 잔고에서 400만원 출혈이나면 저축이나 살림살이에 미치될 악영향이 빤히 보인다는거다. 이번 응급실건으로 그 생각을 다시 해보고 있는데, 다시 생각해도 엿같다. 젠장할... 집에 돈이...별로 없는데... 그건 그렇다치고 이번에 응급실 30만원으로 끝나길 망정이지. 이게 심장외과적인 문제가 큰 문제라서 N백만원 단위 돈을 써야된다면? 아... 이 경우에도 돈이...별로 없구만... 거 참 엿같네.
[집]
"이제 안심하고 잘 자 자기. 나는 내일에서 기다릴게. "
"그래, 자기. 꼭 만나러갈게. 달려서 갈ㄱ... 드르렁~~"
"(사랑해) "
침대에서 먼저 잠에 들어 세상모르게 자고있는 와이프를 보면서 이런저런 생각이 들었다. 내 옆에 있는 이 사람이 자신의 인생의 한 때에는 스스로를 아끼지도 않고, 소중히 하지도 않았던 자기파괴적인 사람이었다는 것을 누군가에게 얘기하면 그 말을 믿을 수나 있을까? 사실을 알고 있는 나도 쉽게 믿겨지지 않는데 말이다. 와이프 말에 따르면 와이프는 나와 만나면서 여러모로 안정감도 생기고 좋은 영향들을 받았고, 나에게서 여러가지 장점들을 흡수하면서 지금의 자신이 된 것 같다고 했다. 나도 이따금씩 와이프에게 이런 표현을 쓴다. 마치 "작은 나" 같다고 말이다.
본인 건강 걱정하고, 챙기는게 때로는 다소 과한거 아닌가 싶을 때도 있지만, 나는 기본적으로 와이프가 지금처럼 자기 몸 자기가 잘 아끼고, 잘 챙기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긍정적으로 생각한다. 작은 통증이나 증상에도 이렇게 호들갑 떨을 정도로 겁이 많고, 자기 몸을 끔찍히 걱정하는 모습들... 그런 요소들의 정제된 업그레이드 버전이 지금까지 내 몸을 대하는 내 모습같기도 하고 말이다. 그러한 내 모습들속에서 긍정적으로 영향받고 자신에게 맞게 발전시켜가는 와이프에게 고맙고 감사하다. 누군가가 배워가고 싶은게 있을 만치 가치있는 사람과는 거리가 먼 것 같았던 떄도 내게 있었는데 말이다. 그래, 어쩌면 우리는 이렇게 평생 건강하고, 덜 나빠지기 위해 이러한 과정중에 있는거겠지 싶다. 그렇게 서로 나란히 조금씩 닮아가고, 조금씩 닳아가면서 앞으로 앞으로... 이 사람과 오래도록 함께 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