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염없이 조각나는 밤이 있다. 파편에서 갈라져 나온 가루처럼 작아지는 그런 날에는 현자(賢者)의 조언이 되려 불편하고, 못난 일, 잘못한 일, 부족한 일과 같은 온갖 부정적인 것들이 떠다니며 마음껏 유영한다. 발이 닿지 않는 어린 나는 여느 때처럼 울다가 지쳐 겨우 잠에 들지만, 다시 그것들이 활보하는 망망대해(茫茫大海)를 마주하고는 발버둥 치기를 반복한다.
그렇게 무섭고 두려운 꿈은 피하려고 하면 할수록 나를 강하게 끌어당긴다. 화해를 하거나, 싸워서 이기거나 둘 중 하나인데 어린 나는 먼저 손을 내밀 용기도, 그렇다고 강하게 몰아붙일 용기도 없으니 안에서 곪아 이상(異常)이 생긴다.
어렸을 때 나는, 관계는 나를 숨기거나 버림으로써 유지되는 것이라 생각했다. 엄마를 기분 좋게 하려면 엄마 말을 잘 들어야 하고, 선생님한테 칭찬받으려면 왜요,라고 되묻지 않아야 한다. 그냥 시키는 대로, 말만 잘 들으면 모두가 편했으니까. 엄친딸이 되고, 모범생이 되면 모든 일이 다 해결될 줄 알았는데 내가 그 대가로 얻은 건 손바닥 위의 흥건한 땀이었다. 항상 나를 숨기고, 자주 나를 버리는 불공평한 관계를 유지해오면서 내가 누군지 잊어갔고, 주변 사람들은 그런 나를 좋아했다. 실망을 주지 않기 위해 그들에게 부지런히 맞춰 나가면서 나는 날로 작아졌고, 손의 땀은 날로 증가했다. 혹여나 깊은 대화 틈에 천사의 침묵이 등장할 때면, 그 어색함에 불편한 자극을 받아 광대를 자처하며 그 분위기도 해결하려 들었다. 그 광대는 내가 없는 나를 반복적으로 연기하다가 결국 쓰러졌다. 나는 상자 안에 갇혀 청각과 시각이 점점 흐려지는 그 끔찍함을 경험하고 처음으로 시간들 사이에도 무소속의 시간이 있다는 생각을 했다. 어제와 내일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오직 자체만을 위해서 남겨진 공백의 시간. 그 끔찍한 찰나의 몇 초 동안 나는 세상 그 어딘가에도 머무르지 못했다. 그 후에도 어린아이는 늘 그래왔듯이 여전히 스스로를 버림으로써 몇 차례 더 주저앉았고, 계속 무시당한 채 방치되었다. 감정을 돌보지 못한 어린아이는 몸집만 그렇게 어른으로 컸다.
머리가 어지럽기 시작하면, 갑자기 높은 곳에 올라간 것처럼 귀가 멍해진다. 마지막으로 그 기운은 두 눈으로 전달된다. 나의 의식은 눈을 감지 않으려고 부단히 애를 쓰지만 공황을 이기지 못하고 결국 사라진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지하철 밖이다. 등 뒤의 식은땀이 만들어 낸 오한을 이겨내려고 고군분투하는 와중에, 같이 집으로 향하던 친한 직장 동료가 주변 사람들에게 감사하다는 말을 쉴 새 없이 전하는 모습을 보고 미안한 마음에 그녀의 손을 꼭 잡는다. 그 후에도 몇 차례 겪었던 무소속의 몇 초는 비록 단 몇 초이지만 다시는 경험하고 싶지 않은 무서운 공포를 내게 가득 밀어냈다. 더 이상 당하고만 있을 수는 없었기에 해결할 수 있는 다양한 방법을 찾기 시작했고 마침내, 나는 나의 어려움을 고백하기로 결심한다. 말을 하다가 자주 울컥하는 나는 말 대신 글을, 입 대신 손을 사용해서 조금씩 나의 이야기를 펼쳐 놓기 시작했다.
글을 적어 내려가며 나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나를 숨기거나 버리지 않아도 ‘우리’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키보드 위의 흥건했던 땀들은 내가 글을 쓰는 만큼 그 자취를 감췄다.
여전히 반복되는 두려운 꿈이지만 이제는 마주할 때마다 새롭다. 망망대해의 그것들은 여전히 나를 가라앉게 하지만, 펼쳐지는 장면마다 수온, 바다와 하늘의 색, 날씨는 제각각이다.
아직은 두근거리지만, 이제 수영을 해볼 수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