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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inguxxi Mar 03. 2024

'원래'는 없어

나의 자부심

'원래'라는 명사를 좋아하지 않는다. 


그 두 글자는 하려던 말을, 행하려던 시도를 멈추게 한다. 생각과 대화의 물꼬를 사전에 차단하며, 기존의 관념을 그저 그대로 따르라고 한다. 무얼 그렇게 촉각을 곤두세우며 예민하게 받아들이냐는 그들의 문장 앞에 '원래'라는 글자가 덧붙여질 나는 속수무책 주저앉고 만다. 


사회생활을 시작하면서부터 '원래'라는 단어를 예민하게 받아들이기 시작했던 것 같은데 아마 그때부터 그 두 글자를 너무 많이 들어서 일 것이다. 무엇인가 옳지 않은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생각에 의문을 제기하면 '원래 사회생활이 그런 것'이라는 똑같은 대답에 화가 났다. 당장 눈에 보이는 모두의 평화와 안녕을 위해서는 의문을 덜 제기하고, 의견을 덜 피력해야 함을 눈치껏 배웠다. 남들이 다 그렇게 하니까, '원래' 그런 거라는 거, 나는 너무 별로다. '원래' 그런 게 대체 어디 있으며, 그것도 '원래' 그러지 않았을텐데. 두 글자 뒤에 숨어 회피하려는 마음도 종종 읽힌다. 


그 두 글자에 예민한 나는 정말이지 '원래' 그런 삶을 살기 싫어서 다양한 삽질(?)을 하며 길을 많이 샜다. 아무 생각 없이 회사만을 다니거나, 실실 웃으며 구색 맞춤용 예쁜 말만 골라 하기에는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인 나는 내가 진짜 좋아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탐색하며 부지런히 달렸다. 이왕이면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면서 세상을 경험하고 싶었기 때문에 내가 가지고 있는 역량을 기반으로 다양한 일에 도전했고, 시도했던 만큼 거절을 당했고, 그 이상으로 좌절했다. 그럴 때마다 누구도 시키지 않은 가해자 역할을 자처하며 유별난 나 자신을 신랄하게 비판했고 미워했다. 오랜 시간이 지나 거절과 도전을 덜 두려워하는 나의 모습을 마주하고서는 나를 이해하지 못한다고 생각했던 세상과 나를 둘러싼 환경이 사실은 나를 무럭무럭 키워 냈음을 깨달았다. 그때의 삽질 중 몇 가지는 지금까지도 나를 배부르게 해 주고, 그 이상으로 나를 성장시킨다. 부업으로 시작했던 이링 현재의 본업이 되어 대표로 일을 할 수 있게 된 것도 삽질 덕분이며, 작은 회사, 큰 회사를 모두 경험하고 다양한 분야에서 나의 사람들을 만날 수 있던 것도 삽질 덕분이다. 무엇보다 삽질을 통해 나는 일을 사랑하는 사람이고, 주체적으로 일을 해야 하는 사람이라는 것도 깨달았으니 정말 감사할 일이다.


잦은 이직에 대한 우려, 약한 집중력과 같은 비난과 선을 넘는 조언에 많이 외로웠고, 더 많이 흔들렸지만, 모든 과정이 지금의 내겐 자랑거리가 되었다. 나의 자부심이 된 수많은 이력서와 그 누구보다 복잡한 건강보험 자격 득실 확인서는 외부의 소리보다 내면의 소리에 집중한 결과 내가 한 선택들로 내 인생이 채워지고 있다는 증거이다.


나는 나만의 이야기를 만들며 오늘도 성장하고 있다. 앞으로도 없는 길을 헤쳐 나가며 많은 어려움을 만나고 또 넘어지겠지만, 계속 내가 만드는 선택으로 꽉꽉 채워지는 나의 삶, 나 다운 삶, 후회 없는 삶을 살겠다고 생각하면 또 설레어 두근두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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