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현주 May 07. 2021

퇴사'준비'생의 일기

개구리도 옴쳐야 뛴다

옛말에 '개구리도 옴쳐야 뛴다'는 말이 있다. 아무리 급한 일이라도 준비할 틈이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더 멀리 뛰고자 한다면 개구리는 몸을 더 움츠려야 할 것이다.


2020년 10월, 코로나 시국에서 들려온 나의 취업 소식 덕에 한동안 우리 집안은 잔치 분위기였다. 추석날 가족들끼리 모여 한껏 들뜬 분위기 속에 내 이야기가 오갔다고 전해 들었다. 그동안 반신반의하며 나를 걱정스러운 시선으로 바라봤던 가족들의 오랜 염원(?)이 드디어 이루어진 것이다.


한동안은 나도 함께 들떠 있었다. 기세가 등등했고,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내가 원했던 직무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시국이 시국인 만큼 취업한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았다


게다가 내가 얻은 오피스텔 집은 친구들 사이에서 '뷰 맛집'이라고 불릴 정도로 멋진 도시 뷰를 자랑했다. 인스타그램에 우리 집을 한 번씩 올릴 때마다 여러 친구에게서 부러움 섞인 디엠이 오곤 했다. ' 좋은데 들어가더니 좋은 곳에서 사는구나!'부터 '나는 요즘 네가 제일 부러워'까지 부러움의 표현은 다양했고, 그럴 때마다 우쭐해지는 기분은 마약과도 같았다


신입 3개월 차로 넘어가는 여느 주말 오후, 햇살이 쏟아지는 창밖을 바라보며 점심을 먹다가 문득 '그동안 내가 바라 왔던 것들이 이루어졌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도 행복하지 않았다. 사실 괴로웠다.


입사한 회사에서 내가 맡은 직무는 예상보다 훨씬 더 나와 안 맞았다. 높은 업무 강도뿐만 아니라, 0.001의 오차도 용납하지 않는 직군에서 일하는 건, 틀리면 틀린 대로 사는 자유로운 영혼인 내게 고문과도 같았다.

하루는 일하는 도중, 호흡이 가빠져 회사 밖으로 뛰쳐나갔다. 실수하면 안 된다는 압박감 때문에 숨을 쉴 수가 없었다. 내일이 오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밤이 많아졌다.

그런데도 나는 쉽사리 퇴사할 수 없었다. 한 번 마음먹으면 불같이 밀고 나가는 불도저 같은 성격의 내가, 이번에는 왜 이리도 주춤주춤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아니 사실은 알고 있었다. 사람들의 시선 때문이다. 내가 회사를 관둘 수 없는 것은.

주변 사람들의 일회용 플라스틱 같은 부러움이 대체 뭐라고 몸과 정신이 망가지는 것을 아는데도 쉽사리 포기가 안 됐다. 다시 시골 본가로 돌아가 공부와 자기소개서로 점철된 하루하루를 보내는 것이 두려웠다. 그 생활이 두려워서가 아니라, 더 이상 주변 사람들의 부러움과 찬사를 받을 수 없다는 것이 두려웠다.

그러니까 한마디로 나는 몸을 잔뜩 움츠리는 '준비' 상태로 돌아가는 것이 두려웠다.


그러던 어느 날, 퇴근 후 마주한 오랫동안 꼭꼭 닫혀 있는 우리 집 커튼 하나가 내 마음을 바꿔놓았다. 화려한 도시의 별들이 쏟아지는 멋진 전망도 이제는 꼴 보기 싫을 정도로 내 마음이 닫힌 것이다. '그래, 본인이 고통스러운데 이 남들의 시선이 대체 무슨 소용일까?'


그 날로 나는 퇴사를 위한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그렇다  이 글은 다음날 사직서를 냈다!처럼 사이다 같은 결말은... 안타깝지만 없다). 내가 좋아하는 것을 찾아보기 시작했고, 연봉, 회사 이름보다 내가 잘할 수 있는 것, 재능을 발휘할 수 있는 것을 찾기 시작했다. 선택지에서 '남들이 보기에' 멋져 보이는 것을 지우니 생각보다 선택지가 많아졌다. 초라해도 내가 자신 있는 것을 하며 사는 삶이 훨씬 의미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개구리는 뛰기 전, 몸을 한껏 움츠린다. 그렇다고 움츠린 자신의 모습을 부끄러워하는 개구리는 없을 것이다. 이내 저 멀리 점프할 자신을 알기 때문에.

나도 몸을 한껏 옴치기 시작했다. 이제는 두렵지 않다.


작가의 이전글 봄과 우울의 상관관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