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시 당신도 봄 타시나요?
천문학적으로는 일 년 중 낮과 밤의 길이가 같아지는 춘분부터 낮의 길이가 가장 긴 하지까지를 '봄'이라고 본다.
어둠보다 빛의 시간이 더 긴 이 시기를 좋은 날에 빗대어 '봄날이 왔다'라고 표현하기도 하는데 아이러니하게도 봄이 다가오면 자살률이 높아진다고 한다. 급격히 높아지는 일조량과 무언가를 시작해야 할 것만 같은 분위기 속에서 감정 기복이 심해져 극단적인 선택을 하게 되는 것이다.
얼마 전 친구 S와 자살에 대해 이야기를 했다.
"언니 나는 요즘 왜 살아야 하는지 모르겠어."로 운을 뗀 그에게 나는 섣불리 뉴스에서 들은 바를 말해주려고 했다. 봄은 우울감이 있는 사람에게 부담스러울 수 있는 계절이라고. 가볍게 답을 하려던 찰나 S의 다음 말에 말문이 턱 하고 막혔다.
"봄이 왔는데도 희망적이지 않아. 이것만 버티면, 이 시기만 견디면 좋아질 거야 하고 견뎌냈는데 절망밖에 없어. 사는 게 고통이야."
평소 S에게 우울감이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막상 이렇게 구체적으로 S의 고통을 들으니 무어라 말을 해야 할지 막막했다.
봄, 생각해보니 봄은 내게도 조금 부담스러운 계절이었다. 나무가 다시 새싹을 돋우듯 나도 내 삶에서 뭔가를 이뤄내야 할 것 같은 부담을 주었다. 평생을 더 많이 성취하기 위해 남들보다 더 빠르게 달려온 S도 어쩌면 이런 부담이 있는 것은 아닐까 조심스레 추측해보았다.
버지니아 울프의 말에 따르면, "'시간'은 동물과 식물이 정확한 때에 맞춰 꽃처럼 피고 지게 한다. 그러나 인간의 마음에는 똑같은 효과를 미치지 못한다. 인간의 마음은 시간에 따라 기이하게 작동한다."라고 한다.
시간이 제아무리 봄이라는 계절을 데려온다고 할지라도 내 마음까지 봄으로 물들일 수는 없는 것이다.
왜 살아야 하는지 모르겠다는 S에게 그럼에도 살아야 하는 이유를 서툴게나마 얘기했지만, 그것조차 내 기준일 뿐 그의 고통을 책임져줄 수 있는 건 아니었다. 들어줘서 고맙다며 웃는 S에게 "말해줘서 고마워. 힘들 때 언제든 연락해."하고 답했지만 나는 안다. S는 전화하지 않을 것이다. 혼자 끙끙 대다가, 도무지 견딜 수 없을 때 마침 내가 말을 건다면 그제야 간신히 털어놓겠지.
그런 그에게 약속 하나 했다. 조금 더 살아보고 싶지만 두려울 때, 지구 반대편까지라도 기꺼이 달려가겠다는 것.
내 욕심이지만 그가 한 번 즈음 뒤돌아 봐주면 좋겠다. 힘들 때 혼자 울지 말고 손 잡아달라고 연락해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