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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지영 Nov 16. 2019

 나만의, 까미노

intro

박사과정을 거치는 동안, 이론 전공의 대학원생 치고는  열심히 걷고 뛰었다. 두 다리를 움직이는 느낌이 좋아서, 심장이 좀 더 강하게 뛰는 느낌이 좋아서, 숨이 벅찬 느낌이 좋아서, 땀이 식으면서 답답한 마음도 같이 증발하는 느낌이 좋아서.


대학생이던때, "산티아고길에서 나를 만나다"라는 책의 제목에 홀려, 한정판 산티아고 엽서세트를 준다는 홍보에 홀려 샀던 그 책은 산티아고 길에 대한 환상을 나에게 심어주기에 충분했다. 엽서로도 만들만큼의 아름다운 풍경. 그리고 그 가운데서 돌아보는 나의 삶이라니!  


그 길이 얼마나 먼 거리인지 숫자는 전혀 와닿지 않았기에 (순례길을 걸은 첫 날이 되서야 800km의 엄청남을 깨닳았다.) 앞서 두 가지의 이유로 산티아고 순례길 걷기는 내 버킷리스트가 되어있었다.



그렇지만 산티아고 순례길에 오르는 것은 대학을 졸업하고, 대학원을 졸업하고, 포닥까지 한 번 거친, 2018년이 되어서였다. 대부분의 저자들이  한달간의 여정을 소개하다보니 산티아고 순례길은 한 달 이상의 시간이 확보되지 않으면 갈 수 없는 곳이라는 이미지가 강하게 박혀있었다. 어린때는 방학이라는 시간이 있었지만, 오래 외국에서 혼자걷는다는게 겁이 났고 예산에 대한 감이 없는것을 커버할 만큼 자금력이 충분치도 않았다. 대학원생이 되고나서는 한달간 여행을 가기에는 도무지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아서 선뜻 꿈꿀 수 없었다. 포닥을 마치고 회사 입사 날짜를 받은 뒤, 6개월 정도의 여유시간을 가지게 되었고 지금이 바로 기회인가! 하면서 10월 산티아고 여행, 11월 중순 남미 여행을 계획하기 시작했다. 그러던 8월 말의 어느 날, '이제 등산화를 구입해 미리 발에 길들여놔야지'라며 죽전 아울렛으로 가고 있던 중 걸려온 031로 시작하는 한 통의 전화로 내 여행 계획은 완전 백지에서 시작하게 되었다!


"OOO씨 맞으시죠? XXXX인데요, 혹시 입사일을 좀 앞당기셔도 괜찮을까요?"

"언제로요?"

"9월 1일이요."

"그건 좀 곤란하겠는데요."

"그럼 10월 1일은요?"


여기서 나는 듣는 사람 모두가 내 대신 애통해 한 슬픈 대답을 하고 만다.


"그럴게요."


계산해보니 10월 1일까지는 40일 정도 남은 상황. 걸음이 빠른 편이라고 자부했던 나는 '보통 천천히 걸어서 40일 걸린다니까 좀 서두르면 30일이면 걷겠지, 그럼 열흘이나 남네(?)'라는 건방진 생각에 더해 너무나 무더웠던 2018년 7,8월, 집에서 핸드폰 거치대와 선풍기만 친구삼아 드러누워 Vikings와 Braeking Bad만 주구장창 보던 생활을 하다가 드디어 노는 것도 지쳤으니 일이나 하자라고 '잘못된' 판단을 해버린 것이다. 

 

우선 급한대로 비행기부터 끊고, 결국 아울렛에서 구경 좀 하고 인터넷으로 사려던 등산화는 그럴 시간이 없어서 그냥 죽전아울렛에서, 배낭은 집에 돌아오는 길에 백화점에서 노스페이스 시즌 세일을 하면서 딱 내가 원하던 36L짜리 엄청나게 가벼운 배낭을 5만원에 팔길래 바로 겟! 등산모자도 마침 세일하는거 있다고 해서 겟! 고어텍스 자켓은 여름에 고어텍스 자켓을 구하려니 맘에 드는건 남자사이즈로만 있고 여성용은 주문을 해야한다고 해서 그냥 남성용으로 겟....등산 스틱과 침낭과 우비는 어쩔도리 없이 택배로 주문했는데, 우리나라 택배 배송 속도 만세 ㅠ_ㅠ....짐을 줄이는 것도 연습이라는데, 그런 연습할 시간도 없었다. 아 뭐 어떻게든 되겠지. 



그렇게  8월 25일 프랑스 in/9월 27일 바르셀로나 out 일정으로 여행이 시작되었다. 

(참고로 비행기 예약을 한 날짜는 8월 22일이었다.....)




*생장피드포르(2018/8/27)~산티아고데콤포스텔라(2018/9/21)까지 26일에 걸친 도보 순례길 여행기 입니다. 걷는 속도는 개인차가 있음을 유의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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