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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축복 좀요

(9) 실재와 별개의 환상

by Zwischenzeit




사실 이엑스러브 속 독립된 공간은 만들어져 있었다. 대표적으로 동아리방이 그 예라 할 수 있다. 동아리 기술을 배워 동아리를 개설하면 큐브처럼 무한한 방 속 나만의 독립된 공간이 생긴다.


그러나 독립된 공간은 되레 쓰이지 않는다. 게임 속 목적이자 핵심인 만남을 위한 ‘미팅’ 기능에도 사람들은 시큰둥하다. 유저들은 광장에 나가 군중 속에 서 있고 싶어 하며 활동을 한 결과물로 존재감을 얻고자 했다. 인위적인 매칭의 장보다 자연스러운 만남으로 관계를 돈독하게 만들고자 했다. 이와 같은 현상은 지속해서 소속감과 소소한 성취감을 부여하며 중독 없이 게임에 머물 수 있게 해주었다.


공간의 정체성은 사람들이 공간을 어떻게 체험하고 인지하느냐에 따라 조건 지어지는 것이다...[중략] 즉, 공간에 대한 인간의 잠재의식을 고스란히 담지하고 있다는 점에서 “현실을 이해하는 열쇠” (투안Tuan, 1995:169)로 이해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 경험은 현실을 이해하려거나 회피하려고 빠져들 도구로 쓰인 것이 아니며 오히려 나도 알지 못하는 사이에 그것 그대로의 세계란 존재하는지도, 그것이 실현되는지도 모른 채 유영하고 플레이 ‘하는 것’이었다. 폭력 없는 방식과 부활, 응원과 축복이 충만한 세상, 옷 갈아입고 폐타이어와 미역과 장미를 줍는 게 전부인 단순한 일상이 해방감을 주며 아이러니하게도 현실에선 불가능한 일이었다는 것. 부족한 부분을 해소하고 채우는 것을 넘어 대체할 수 있는-우리 모두 대체가 가능하다 생각지 않으면서. 매일 자신의 의지로 로그아웃 하므로- 세상을 꾸리고 있었다. 현실과 연관 짓고 연결해서 생각하는, 현실을 배제하지 않는 환상의 세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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