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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성한 Nov 20. 2019

언젠가 죽을 건데 꼭 오늘 일 필요는 없잖아!

나를 믿어주는 사람이 어디엔가 있다는 것.. 작은 바람을 담아


선생님을 만나고 와서 마음이 홀가분했다. 

그것도 잠시 고민이 깊었다. 원작에서 보여주는 미즈타니 선생님의 삶은 올 곧이 상처 입은 아이들과 문제아로 낙인찍힌 아이들을 돕기 위한 것이었다. 긴 시간 동안 무한한 열정을 쏟아내는 삶이었다. 나의 삶은 그렇지 못했기 때문에 선생님의 삶을 이해하고 그대로 그려내는 것이 매우 어려웠다. 수 차례의 시나리오 수정을 거듭하고 계속되는 캐스팅과 투자 제안에 대해 거절을 받을 때마다 내가 이 이야기를 하는 것이 맞는 것인지에 대한 고민도 깊었다. 지인의 조언이 도움이 되었다.  “이런 삶을 알리는 것도 감독의 일이다” 다시 힘을 냈다. 초심으로 돌아가자. 내가 잘할 수 있는 것 오디션을 보기로 했다.  카메라를 들고 밖으로 나서기 시작했다. 양상호 음악감독과 같이 생각나는 멜로디를 악보에 옮기기 시작했다. 그리고 시나리오 마지막 수정을 시작했다.


미즈타니 선생님은 본인의 역할이 영웅으로 그려지지 않게 해달라고 부탁하셨다. 아이들이 주인공인 영화를 만들어 달라고, 나도 동의했다. 그리고 나 자신에게도 영화의 재미를 위해 선생님 역할인 민재(극 중 캐릭터 이름)를 영웅으로 만들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선생님의 책에서 앞부분에 준영이에 해당하는 마사후미의 에피소드가 나온다. 이것은 선생님에게는 실수이며 실패다. 스스로 아이를 죽였다고 생각할 정도로 자신의 실패를, 실수를, 숨기지 않고 이야기하는 어른, 그리고 인정하는 어른 그 이야기를 중심에 뒀다. 그리고 나머지 부분을 구성하기 시작했다. 초반 몇 차례 수정본 시나리오는 책 속의 이야기로 해결하려 했기 때문에 제약이 많이 있었고, 시나리오를 접하는 사람마다 의견이 일치하지 않았다. 이를 테면 우리의 현실에 맞지 않다 또는 에피소드를 나열하는 것 같다는 식의. 고민하던 시기에 전정 작가님을 만났다. 교사로 현직에 몸 담고 있는 작가님의 글은 도움이 컸다. 풀리지 않던 매듭을 풀어가기 시작했다. 지근과 용주, 수연과 현정의 캐릭터가 자리를 잡기 시작했다. 성태의 등장은 동전의 양면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캐릭터로 갈등 구조의 정점이었다. 

각색의 방향은 명확했다. 일어날 수밖에 없는 일들은 자연스럽게 놔두고, 일어나지 않았으면 하는 일들은 일어나지 않게 하는 것. 나는 이 부분을 우리 영화의 판타지라고 이야기한다. 


진심을 담고자 하는 이 영화의 완성을 위해 우연인지 필연인지 각 캐릭터에 적절한 배우들을 만나게 되었다. 김재철 배우, 윤찬영 배우, 손상연 배우, 김진영 배우, 김민주 배우 외에도 이름을 열거하지 못한 배우들과 한 겨울의 매서운 추위와 싸우며 함께 해준 스텝들을 통해 완성이 되었고, 모두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그리고 영상과 내레이션의 분위기를 살려줄 음악 작업의 시작은 2017년 6월부터였다. 양상호 음악감독과 함께 악기를 정하는 데 있어 둘 다 단순한 듯한 순수하고 꾸밈없는 감성을 전달하기에 피아노 소리만 한 것이 없다고 생각했다. 음악 또한 단순한 화성과 멜로디로 미니멀한 스타일로 가는 것으로 정했다. 그리곤 촬영이 들어가기 전까지 9개월 정도를 소품처럼 짧은 곡들을 만들어 쌓아 두기 시작했다. 최종 작업 단계에서 지금의 곡들이 정리되어 완성되었다. 이 과정에 양상호 음악감독과 김선하 씨와 장진영 씨 모두 고맙다고 전하고 싶다. 


내레이션 장면에 풍경이 많이 나온다. 그 이유는 가까이 있지만 잊고 지내는 풍경들을 담고 싶었다. 가끔 하늘을 보며 스스로의 감정을 위로하던 기억은 누구나 있을 것이다. 잊고 지내지만 그것이 얼마나 마음을 토닥여주는지, 사소하다고 느낄 수 있는 일상들이 하늘과 산, 나무, 잎, 노을, 구름, 신호등을 건너는 사람들의 모습까지. 조금의 여유를 가지고 보려고만 한다면 얼마든지 우리 곁에서 기다려주고 있다고. 그리고 그 풍경들을 보기 위해 멈춰서는 그 순간이 작은 위로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미즈타니 선생님은 스스로 어린 시절의 고독으로부터 달아나려 하고 있다고 말한다. 그래서 같은 외로움과 고독을 견뎌야 하는 아이들을 더 만나고 싶다고… 나는 이 이야기가 이렇게 들립니다. 나는 어른이라는 이름으로 살아가고 있지만, 단 한 번도 어른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어른스럽게 또는 지혜로울 것 같은 어른으로 살지 못했다고 나는 그저 나이 많은 아이라고…

이 영화는 아이들을 위한 영화이기도 하고 어른이들을 위한 영화이기도 하다. 나는 이렇게 모두에게 말하고 있다. “당신이 힘들 때 이 지구 어딘가에 선 누군가 당신을 돕기 위해 움직이고 있을 겁니다. 그 사람을 만날 때까지는 그냥 가는 겁니다.  포기하지 마시길.


우연한 기회에 읽은 책 한 권이 지금에 이르게 했다. 이 영화는 그저 한 시기를 지나며 성장하는 학생들을 보여주는 영화는 아닌 것 같다. 아이들이 우리의 희망이라는 말은 언제나 동의한다. 어른들이 당장 가까운 미래라는 것도 생각한다. 그래서 어른들이 우리의 희망이라는 것도. 이 영화가 아이들을 위한 영화일지 모른다. 혹은 아이였던 어른들을 위한 영화 또는 어른이 되어야만 하는 아이들을 위한 영화? 그 어디쯤 나도 있다. 


관계에서 어려움을 갖고 있는 분들이 보시면 좋겠다고 생각했고, 그분들이 재미가 아니라 힐링을 받길 원했다. 직업이 무엇이어도 상관없다. 나이의 적고 많음도 상관없다. 그저 지금의 관계가 상황이 너무 힘들고 누군가 괜찮다고 말해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또는 죽고 싶다는 마음의 소리가 목구멍 어딘가에서 맴돌고 있는 분들이라면 이 영화를 보고 한번 더 생각했으면 한다. “그래 나도 나를 믿어주는 사람을 만날 수 있을 거야. 언젠가 죽을 건데 꼭 오늘 일 필요는 없잖아!”라고 그냥 그것이 나의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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