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배우 김재철
나는, 영화 <바람>으로 그 시대 청춘들의 이야기를 진솔하게 담아내며 호평을 받았던 이성한 감독님의 8년 만의 신작 <어제 일은 모두 괜찮아>에서 여러 차례 오디션 끝에 민재 선생님이라는 역할에 최종 캐스팅되었다.
<어제 일은 모두 괜찮아> 민재 선생님 역을 맡게 된 것은 나에게 큰 공부이자 도전이었다. [얘들아 너희가 나쁜 게 아니야]라는 책으로 일본에선 이른바 ‘밤의 선생’으로 불리는 현존하는 소설 속 주인공 같은 인물인 ‘미즈타니 오사무’ 선생님을 연기하는 것만으로 부담감과 책임감이 막중했기 때문이다.
어떻게 지났는지 모를 2018년 이른 겨울 촬영을 마치고, 우리 영화는 2019년 제20회 전주 국제영화제에 코리아 시네마 스케이프 부문으로 공식 초청되는 기쁜 소식을 듣게 되었다. 그러나 기분 좋은 설렘도 잠시 미즈타니 선생님이 영화를 보시기 위해 일본에서 전주로 오신다는 소식을 듣고, 떨림과 걱정이 가득했다. 부디 영화를 보시고 마음에 드셔야 할 텐데. 나도 완성된 영화를 보지 못한 터라, 걱정과 설렘을 동시에 안고 전주로 향했다.
첫 상영이 있던 날, 첫 GV가 있었다. 전주에 날씨는 더할 나위 없이 좋았고, 첫 상영회에 전석이 매진되었다는 기쁜 소식을 듣고 극장으로 향했다.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를 상영이 끝나고, GV를 하기 위해 대기하는 공간에서 처음 선생님을 만났다. 아직도 처음 악수를 하던 그 순간 따뜻하고 깊게 내 손을 잡아주며 미소 지어 주시던 그 모습이 선명하다. 본인을 연기해줘서 고맙다고. 우리 영화는 신인배우들이 전부이고, GV도 다들 어색한데, 미즈타니 선생님이 함께 계셔서 너무 든든하고 좋았다. 달변가답게 정말 말씀을 잘하셨다.
영화를 어떻게 봐주셨을까 걱정하고 있던 찰나 첫 질문자이자 대학생 같았던 남성 관객이 조심스레 손을 들었다. 이 영화를 만들어줘서 고맙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어린 시절의 아픔이 있는 친구 같았는데, 감독님과 내가 되려 감동을 받아 눈물을 참느라 혼났다. 그렇게 훈훈한 첫 GV를 마치고 우리는 다 함께 맛있는 저녁식사를 하기 위해 전주의 밤거리로 나섰다.
영화제 열기 때문인지 전주의 밤거리는 젊은이들로 후끈했다. 미즈타니 선생님은 ‘밤의 선생’ 답게 젊은이들로 가득한 밤거리를 꽤나 즐기시는 모습이었다. 하나하나 눈에 담으시고, 물으시고, 그 모습이 왠지 책 속에서 잠시 나오신 모습 같아 신기했다. 1차로 간 술집에서 선생님은 바로 맥주를 주문하셨다. 본인은 맥주를 너무 좋아한다고, 아니 사랑한다고 하셨다. 영화로 맺어진 사람들과 맛있는 음식, 시원한 맥주, 오고 가는 영화 이야기. 너무나도 따듯하고 행복한 시간이었다.
선생님은 무엇보다 아이들을 온전히 나쁜 아이들로 담지 말아 달라고 제작 전부터 부탁을 하셨다고 한다. 그리고 오늘 본 영화에서 각 캐릭터마다 가지고 있는 성정들이, 조금은 따뜻하게 담겨 있는 것 같아 너무 좋았고, 감동적이었다고 우리에게 몇 번이고 고맙다는 인사를 하셨다. 이때부터 아마 나는 미즈타니 선생님께서 그래도 실망하진 않으셨구나 안도의 마음이 들어 마음 편히 음식을 즐길 수 있었다.
1차가 화기애애하게 마무리될 무렵 미즈타니 선생님을 위해 사전에 준비한 꽃 케이크 전달식이 있었다. 센스쟁이 피디님. 뭘 이런 걸 다 준비했냐며, 손사래 치시는 선생님 모습에서 아이처럼 천진난만 좋아하시던 표정이 지금도 생생하다.
그렇게 1차가 훈훈하게 마무리되어갈 무렵, 미즈타니 선생님께서 급 2차를 제안하셨다. 근처에 정말 좋은 맥주집이 있다며, 어제도 가셨다고. 2차에 도착했을 때 직접 테이블을 붙여주시며 자리를 만들어 주시는 사장님의 반가움에서, 어제저녁 나눴을 선생님의 사람 좋은 인정이 느껴졌다. 그렇게 운치 있는 야외 테라스에서 우리의 이야기는 더욱이 무르익어갔다.
# “몸과 마음이 두려움에 떨지 않았다면 거짓말이죠. 그러나 꼭 구해내야만 하는 아이들을 생각하면 내 눈만큼은 두렵지 않습니다.
[얘들아 너희가 나쁜 게 아니야]를 보면 알 수 있겠지만, 선생님은 그 수많은 학생들을 어둠에서 구해내기 위해 야쿠자에게 손가락도 내어주시고, 흉기에도 찔리는 등. 정말 영화 속에서나 있을법한 일들을 직접 겪어 내셨다. 그 쉽지 않은 많은 일들을 한 인간으로서 견뎌내기에 공포심이나, 두려움이 없었는지 묻는 질문에 선생님께서는 말씀하셨다.
“몸과 마음이 두려움에 떨지 않았다면 거짓말이죠. 그러나 꼭 구해내야만 하는 아이들을 생각하면 내 눈만큼은 두렵지 않습니다. 그래서 나는 어떤 야쿠자 조폭을 만나더라도 절대 눈을 피하지 않습니다. 내가 한 번이라도 눈을 피했다면 아마 이렇게 무사하지 않았을 수도 있습니다.” 선생님께서 이야기하시는 그 눈빛에서 안경을 뚫고 나올 것 같은 깊고 강한 에너지가 느껴졌다. 지금도 선생님의 그 눈빛을 잊을 수가 없다.
# “나를 연기해 줘서 고맙네! 같은 인물을 연기했으니 기념으로 함께 걸어두고 한 번씩 지금 이 마음을 기억해 주시게..!”
2차가 마무리되어 갈 때쯤 선생님께서 본인의 전주영화제 ID명찰을 내게 건네며 말씀하셨다. “나를 연기해줘서 너무 고마웠네, 같은 인물을 연기했으니 기념으로 함께 걸어두고 한 번씩 지금 이 마음을 기억해 주었으면 좋겠네. 참 머지않아 자네 아버님 감자탕집은 꼭 가서 먹어보겠네” 나의 아버님은 서울 풍납동에서 25년간 조그맣게 감자탕집을 운영 중 이시다. 선생님은 감자탕을 너무 좋아하신다고 했다. 선생님의 명찰을 받는데, 선생님의 지금 모습을 선물로 주시는 것 같아 감사했다.
그렇게 전주에서 아름다운 첫날밤을 보내고, 선생님께서는 일정상, 다음날 아침 일본으로 출국하기 위해 인천으로 떠났다. 떠나시기 전 마지막 배웅을 하던 우리에게 하나하나 안아주시던 선생님의 그 넓은 마음과 냄새가 아직도 그립다.
나는 그날 일정이 없어, 영화제에 출품된 다른 영화들을 관람하며 전주 영화제를 열심히 눈에 담고 즐겼다. 오후에 영화 한 편을 보고 나오는데, 사진과 함께 문자메시지가 도착했다.
선생님께서 피디님께 부탁해 공항 가시는 길에 우리 아버지 감자탕집을 꼭 들리고 싶다고, 그래서 식사도 하시고, 본인을 연기해준 아드님께 고맙다고 인사도 나누시고, 포스터 옆에서 사진도 찍고 가셨다고 한다. 이 글을 쓰는 순간에도 그때를 생각하니 문득 가슴이 뜨거워 짐을 느낀다. 아마도 짧은 만남에도, 대하는 상대에게 온전한 마음을 다 쏟아주시던 선생님에 뜨거운 마음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선생님께서 함께하고, 함께였던, 그 밤거리의 아이들과, 지금은 선생님보다 훌쩍 큰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을… 철없던 아이였던 어른들. 지금은 어디서 어떤 모습으로 잘 살아가고 있을까? 지금의 나보다 그들은 얼마나 더 큰 마음으로 그를 기억하고 있을까?
그런 어른이, 그런 선생님이 아직도 우리 곁에 남아있다는 것. 또 어딘가에서 우뚝 서서 지켜봐 주실 많은 선생님들과 어른들을 생각하게 되는 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