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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성한 Nov 06. 2019

<바람> 이성한 감독의 두 번째 성장통

5천 명의 아이들을 구한 '밤의 선생'을 만나다!

나의, 네 번째 영화 <어제 일은 모두 괜찮아>가 어렵고 어렵게 개봉을 앞두고 있다. 영화 <히트> 이후 만 8 년 만에 선보이는 작품이다. <히트>는 나에겐 아픈 손가락이다. <히트>의 실패는 나에게 많은 상처를 남겼고, 이 상처를 추스르는 과정에서 미즈타니 선생님의 책 [얘들아 너희가 나쁜 게 아니야]를 만나게 되었다. 


매일매일 자책과 자괴감으로 불면의 밤을 보내며 괴로워하던 나에겐, 누군가 “괜찮아”라고 이야기하는 것만 같았다. 책에서, 선생님이 아이들을 만나면서 자신의 상처도 치유된다고 말하는 것처럼, 나도 치유받고 있었던 것 같다. 그래서였는지 6년이라는 시간을 견디고 견뎌 영화를 찍어내고, 드디어 7년 만에 개봉을 앞두고 있다. 

'미즈타니' 선생님 역을 맡은 배우 '김재철'
'미즈타니 오사무' 선생님

#. 미즈타니 선생님과의 만남, 그리고...


2012년 10월 경 김경수 PD가 나에게 [얘들아 너희가 나쁜 게 아니야]를 추천해주었던 그때는 실패의 상처에서 벗어나려고 몸부림치던 시기다. 새로운 영화를 만들기 위해 많은 사람을 만났다. 만나는 사람마다 친절하게 거절하지만, 거절당하는 나로서는 “꼴좋다. 영화 만드는 게 쉬운 줄 알았어?”라고 말하며 고소해하고 무시하는 것처럼 들렸다. 아니, 그렇게 밖에 볼 수 없었다. 그때 내 마음과 내 정신의 상태가 그랬었다. 스스로를 갉아먹고 있었다. 


그리고 [얘들아 너희가 나쁜 게 아니야]를 읽었다. “이런 선생님이 정말 있다고? 만나야겠다.”생각했다. 미즈타니 선생님께 연락을 드렸다. 답장이 왔다. 흔쾌히 만나주시겠다는 연락이었다. 11월 선생님을 만나기 위해 일본으로 갔다. 선생님의 집에서, 처음 선생님의 얼굴을 마주 했을 때 그 눈빛은 앞으로도 잊히지 않을 것 같다. 나는 준비해 간 편지를 드렸다. 이전에도 몇 차례 우리나라 분들이 영화 제작 문의를 해왔으나, 진행되는 과정에서 진정성이 보이지 않아 거절하신 일이 있다고 들은 터라 나름의 진심을 보여드리고 싶었다. 편지를 받아 펴보시는 선생님의 얼굴을, 나는 마른침을 넘기며 쳐다보고 있었던 것 같다. 다 읽으시곤 나를 쳐다보며 환하게 웃으셨고, 동행했던 김경수 PD를 포함한 우리도 환하게 웃었다. 통역을 통한 대화였지만 우리는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이야기꽃을 피웠다. 바바리코트를 입으시는 이유가 코트의 원단이 튼튼해서, 깃을 세우면 목을 공격하려는 야쿠자의 칼을 견뎌내는데 용이하다.”라는, 우리 영화 준영이에 해당하는 마사후미의 이야기를 하시면서 눈물을 글썽이시는 모습도 볼 수 있었다. 열정적으로 이야기하시는 선생님을 보면서 생각했다. “이런 선생님이 정말 있다니...” 


해가 질 무렵이었던 것 같다. 선생님이 영화화를 허락하셨다. 그리곤 저녁식사를 제안하셨다. 집 근처의 단골 식당에서 회를 대접받았고 맥주를 좋아하시는 선생님은 기분 좋게 취하셨다. 문득 궁금했다. 왜, 나에게 흔쾌히 허락하시는지 선생님께 물었다. 내가 가장 잘하는 일이 믿어주는 것, 그뿐이다.” 선생님의 대답이었다. 다음 날 계약서를 쓰기로 하고 자리를 파할 때쯤, 선생님이 나에게 당신의 영화 <바람>을 봤다. 자막이 없어 다 알아들을 순 없었지만, 좋은 영화였다. 당신은 잘 만들 수 있을 것이다.”라고 이야기를 해주셨다. 나의 상처는 조금씩 치유되고 있었다. 


다음 날 우리는 다시 선생님의 집에 모였다. 나는 눈을 비볐다. 선생님이 팔에 깁스를 하고 계셨다. 어제 집에 들어가시다 계단에서 넘어지셨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선생님의 지인이자, 지금은 선생님의 매니지먼트를 해주고 계신 나토리 사장이 계약 문제를 도와주셨다. 2부의 계약서에 간인과 직인을 찍고 한부씩을 나눠 가졌다. 이제 선생님과 사모님, 나토리 사장과 인사를 나누고 헤어져야 할 시간이 왔다. 우리를 반갑게 맞아주셨던 사모님, 이틀간 준비해주신 다과는 두고두고 생각 날 것이다. 택시를 불러주셨다. 택시가 도착하고 선생님과 우리 일행은 아쉬운 작별의 인사를 나눴다. 차에 올라타고 택시가 출발했다. 나는 뒤로 돌아, 창밖의 선생님을 보았다 다시 한번 눈인사를 나눴다. 선생님은 손을 흔들기 시작하셨다. 나도 손을 흔들었다. 서로의 모습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우리 영화의 시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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