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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피유진 Apr 30. 2021

우리 엄마는 머리에 꽃꽃았는데요

빅터 이야기

우리 원 막내인 빅터는 아직 돌도 지나지 않은 젖먹이 때에 이곳에 들어왔다. 정신이 온전치 못한 빅터 엄마는 아이와 함께 여행객이 많은 국경 주변을 어슬렁거리며 구걸을 하거나 쓰레기통을 뒤져 끼니를 해결하며 근방에서 노숙을 했다. 경찰은 그가 골치 아팠는지, 어느 날 보육원에 그를 맡기고 떠났다. 


빅터 엄마는 마치 야생마 같았다. 원에서는 여느 보육시설과 마찬가지로 모두가 정량을 한 번 배식받고, 공정성을 위해 동시에 식사를 시작하며, 배식받은 양을 먼저 먹어치운 자만이 리필을 할 수 있다. 내가 그를 처음 본 날은 저녁에 후식으로 모두 사과를 한 알씩 배식받았다. 빅터 엄마는 배식받은 밥의 양이 영 마뜩잖았던지 꿈쩍하지 않고 밥솥에 식판을 탕탕 두들기며 먹을 것을 더 요구했다. 못 이긴 배식 당번이 2인분의 양을 배식해 주자 그녀는 그제야 만족한 듯 자리로 가는 듯하다가, 돌연 뒤에 오던 아이의 사과를 낚아챘다. 아이 역시 사과를 다시 돌려받고자 실랑이가 벌어졌는데, 빅터 엄마도 좀처럼 돌려주지 않아 결국 몸싸움으로 번졌다. 결국 다른 이가 본인의 사과를 포기함으로써 사건은 일단락되었다. 


빅터가 젖을 뗀 후에는 쓰레기통을 뒤져 찾은 과자를 아직 이유식 먹을 나이의 아이에게 먹이곤 했다. 황급히 뛰어가 과자를 뺏었더니, 제 아들 먹을 것을 훔쳐간다고 생각했는지 쫓아와 내 등짝을 신나게 스매싱하기도 했다. 빅터의 옷가지는 늘 옷장이 아닌 이 나무 저 나무에 걸려 있었고, 그는 아침마다 나뭇가지에서 옷가지를 내려 탈탈 턴 뒤 아이에게 입혔다. 결국 모유수유 종료 후 아이는 분리되어 보육원의 큰누나들의 돌봄을 받게 되었다. 누나들의 돌봄 아래 빅터는 건강하게 쑥쑥 자랐다. 빅터 엄마도 아들에게 해코지를 하는 것이 아님을 깨달았는지 어느 순간부터 아이를 내놓으라며 여자 기숙사 방문을 두드리는 것을 그만두었다.


두 살 정도가 된 후 빅터는 엄마를 피하기 시작했다. 아들이 예뻐 엄마가 안아 들면 자지러지게 울며 엄마 품을 벗어나려 했다. 형 누나들이 엄마에게 그러지 말라고 하면 들리지 않는다는 듯 입을 꾹 닫고 땅만 노려보았다. 어리지만 자기 엄마가 온전치 못한 것을 아이도 알았던 것 같다. 또래 녀석들은 싸우다가 토라지면 서로 "멍 아줌마 (빅터 엄마) 같은 녀석", "멍 아줌마 남자 친구" 같은 말로 욕을 대신하기 시작했다. 빅터를 돌보는 여자아이들 중 한 명이 어두운 표정으로 다가와 말했다. 

"언니, 빅터가 소변을 컵에 담아서 엄마에게 먹였어요. 엄마가 먹는 모습을 보면서 막 웃었어요."


다행히 세 살 정도가 되자 빅터는 친구들이 있는 곳에서는 함께 엄마를 놀리고 무시하다가 친구들이 사라지면 몰래 과자 같은 것을 엄마에게 가져다주곤 했다. 엄마에게 치대며 안기거나 하지는 않았지만 더 어릴 때와 달리 애정을 표현하기 시작한 것이다. 물론 주변에 아무도 없을 때 한정이었지만.


빅터 엄마는 아침식사를 마치고 나면 밖으로 마실을 나갔다 저녁이 으슥해지면 돌아오는 것이 일상이었다. 나가는 시간은 그때마다 달랐지만 저녁식사를 할 때가 되면 반드시 돌아왔고, 외박을 하는 것은 드물었다. 한 번은 너무 멀리 걸어가 길을 잃었는지 사흘간 돌아오지 않은 적이 있었는데, 경찰이 집이 어디냐고 묻자 보육원 이름을 대고 돌아온 적이 있었다. 그날도 빅터 엄마는 여느 날처럼 밖으로 놀러 나갔다. 저녁에 돌아오지 않아 우리는 너무 멀리 갔거니 생각했다. 예상외로 그는 사흘이 지나도, 일주일이 지나도 돌아오지 않았다. 2주쯤 지났을 때, 누군가가 읍내의 야시장에서 그가 돌아다니는 것을 보았다는 소식을 들었다. 한 달쯤 지나자 차로 한 시간 거리에 있는 매짠에서 보았다는 이가 있었고, 두 달 후에는 치앙라이 야시장에서 보았다는 이가 있었다. 본래 길거리 생활을 오래 했으니 익숙해서일까, 그는 이번에는 반년이 지나도록 돌아오지 않았다.


처음엔 평소와 다를 바 없이 생활하던 빅터도 한 달이 지나가자 우울해하는 기색이 비쳤다. 엄마 이야기는 하지 않았지만 부쩍 힘이 없어졌다. 형 누나들의 그러게 엄마가 계실 때 잘해 주지 그랬냐는 핀잔도 한몫했을 것이다. 그래도 아이인 만큼 서너 달을 넘기자 그럭저럭 엄마가 없는 생활에 익숙해진 것 같았다. 애초에 하루에 엄마와 지내는 시간이 10분을 넘기지 않는 것이 보통이었으니 나 역시 아이가 잊고 생활하려니 했다. 


연말을 맞아 맘씨 좋은 후원인의 도움으로 아이들이 동네 테스코로 연례 개인 쇼핑 겸 외식을 가던 날, 간만의 나들이를 맞아 쫙 빼입은 막둥이들 옆에 앉아 가게 되었다. 한창 들뜬 녀석들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 오늘 많이 먹고 얼른 자라서 속 썩이지 말라며 놀리듯 이야기하자 빅터가 웃으며 혼잣말인 듯 아닌 듯한 어조로 대답했다.


"응. 얼른 자라서 엄마 찾으러 가야지."

"빅터, 크면 엄마 찾으러 갈 거야?"

"응. 돈 벌어서 오토바이 사면 엄마 찾으러 갈 거야."


순간 왼쪽 가슴이 저릿했다. 빅터가 오토바이를 뽑을 수 있는 나이가 될 때까지 빅터 엄마가 건강히 지내고 있을까? 무국적자인 빅터가 갈 수 있는 영역 밖으로 걸어 나가진 않을까? 빅터가 돌을 던지고 괴롭혀도 오도카니 서 있던 그의 모습과, 발가락이 곪아 치료를 받던 빅터의 무릎에 휴지통에서 들고 온 것 같은 꼬질꼬질한 봉제인형을 놓고 문 밖에서 기다리던 그의 모습이 스쳐갔다. 모두 손가락질하고 왜 저런 사람이 아이를 낳았을까 생각했지만, 쓰레기를 먹일 때도 나뭇가지에 옷을 걸어 놓을 때도 분명 그는 그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아이를 사랑했다. 그리고 그런 그가 부끄럽고 싫으면서도, 어미이기에 아이도 아이 나름대로 진심으로 그를 사랑했다. 이곳에서 지낼수록 느끼는 것이지만, 혈육과 가정에 대한 갈망은 모든 논리를 초월한다. 버려지고 학대받는 상황에서도 아이와 부모 사이에는 강렬한 유대감이 존재한다. 그렇기에 아무것도 해 주지 않은 부모를 찾아 떠나고, 자기에게 주어진 기회를 포기하면서까지 가족과 함께하려 하는 아이들의 행렬은 매해 끊이지 않는다. 아마 빅터도 자라면 정말 엄마를 찾으러 나설 것이다. 뿌리 없이 자라 왔던 수많은 아이들이 그랬듯, 어디서 찾아야 할지 실마리조차 보이지 않아도 말이다. 그리고 그 와중에 굳이 겪지 않아도 될 고충도 겪게 될 테지.


바라건대, 내일 아침에 빅터 엄마가 다시 요란한 천을 온몸에 두르고 머리엔 꽃을 꽃은 채 아무렇지 않게 돌아와 주었으면 좋겠다. 사과는 얼마든지 양보해 줄 테니. 아마 빅터가 먼저 양보해 줄 테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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