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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피유진 Apr 21. 2021

태국 야시장 생존기 - 2

현지화는 힘들어

나는 소형 포장마차라던가, 학교 앞 분식집 같은 매대를 만들고 싶었다. 어릴 적 학교가 파하면 넓은 판에 보글보글 끓고 있던 떡볶이. 그 옆에 어묵. 그것을 휘휘 젓고 있는 아줌마까지. 떡볶이는 당연히 그렇게 팔아야 되는 것 아닌가!


태국의 식문화에는 독특한 점들이 많다. 이를테면, 대부분 요리를 직접 하지 않고 길거리 상인들에게 반찬을 사서 먹는다던가, 그래서 그런지 부엌이 주로 집 밖에 위치해 있다던가 (비바람과 온갖 곤충들에 고스란히 노출된 채로!) 하는 것. 테이크아웃 문화는 한국에서도 자취생으로 혼밥에 익숙해진 나에겐 충분히 납득되는 일이었고, 집 밖 주방은 기묘했지만 더운 나라에서 집 안에서 불 피우고 있으면 얼마나 찜통 같을까 라고 생각하니 뭐 그것도 그것대로 납득이 되었다. 아무래도 내게 가장 충격이었던 점은 이곳 사람들이 식은 음식에 대한 거부감이 전혀 없다는 것이었다. 심지어 국물 음식이 식어도 보글보글 끓고 있을 때와 동일한 취급을 받았다. 상인들도 국물 음식을 식은 채로 봉지에 담아 팔고 사람들도 그걸 사다가 데우지 않고 (!) 식은 밥과 함께 (!!) 아무렇지도 않게 먹었다. 용암과 같은 국물을 쭉 들이키며 어우 시원하다를 외쳐야 하는 한국인에게는 충격적인 장면이었다. 고든 램지도 서빙 전에 음식이 식으면 출연자에게 온갖 쌍욕을 하며 가차없이 요리를 버리지 않던가!


그래서 그런지 보육원 식구들은  떡볶이도 이곳에서 끓여다가 소분해서 팔자는 의견이 많았다. 심지어는 떡만 끓여 가져가서 떡볶이 손님이 도착하면 소스에 범벅을 해 주자는 의견으로 좁혀지기까지 했다. 나는 계속 현장에서 끓여서 팔아야 맛있을 거라고 의견을 피력했지만, 현장에서 조리를 하면 너무 수고스럽다는 모두의 의견을 이길 수는 없었다. 이틀 가량 [떡 범벅]을 소분포장하여 시장으로 보내며 나는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많은 스트레스를 받았다. 평소 잘 맞춰 주고 잘 묻어 가는(?) 성격이라고 생각했는데, 떡볶이를 포장하며 계속 떡볶이는 볶기 때문에 이름이 떡볶이라는 둥, 분명히 맛이 없을 거라는 둥 계속 궁시렁대는 나를 발견했다. 


한식을 파는데 한국인인 나의 의견이 반영되지 않을 것에 대한 불만이었을까? 아니면 분명히 잘 팔릴 거라고 생각했던 떡볶이의 판매가 부진한 것에 대한 이유를 찾고 싶어서였을까? 아니면 나도 바야흐로 꼰대가 된 것이었을까? 아무튼 나는 내 스스로가 보기에도 매우 비호감이 되기를 자처하면서까지 떡볶이를 끓여 팔고 싶었나 보다. 떡볶이에 대한 나의 집착은 생각보다 심해서, 샤워하다가도 떡볶이 생각이 났고, 자기 전에도 오늘 [떡 범벅]이 6개밖에 팔리지 않은 것에 대해 화가 났다. 정석대로 끓여서 팔면 30개도 넘게 팔릴 텐데. 이래서 동업을 하지 말라고 하나보다. 왜 이 좋은 아이템이 이만큼밖에 안 팔리지? 왜 아무도 내 말을 듣지 않지? 왜? 왜? 왜? 왜? ...


떡볶이 생각에 (혹은 내 의견이 적극 반영되지 않은 것에 대한 생각에) 나흘을 밤마다 뒤척이다 퍼뜩 생각이 났다. 무작정 징징댈 것이 아니라, 역시 실제로 경험하게 해 주어야 맞을 것이다. 그리고 실제로 해 봐야, 태국인의 관점에서 두 과정에서 나온 맛이 비슷한지, 혹은 어떤 쪽이 나은지 객관적으로 평가할 수 있는 것이 아닌가. 오후 수업도 하나 째고 초벌로 끓인 떡볶이 하나, 떡만 끓이고 후에 소스를 묻힌 기존 버전 하나 이렇게 두 개를 끓였다. 큰 애들에게 먹여 보니 모두 초벌로 끓인 것이 맛있다고 했다. 스탭들도 마찬가지였다. 지성이면 감천이라고 그럼 내일부터는 끓여서 팔아 보기로 했다. 그 후에는 동업의 마법이 시작되었다. 스탭 중 한 명의 집 앞에서 뒹굴고 있던 목재 키오스크가 보육원으로 도착했고, 흰색 페인트를 칠하고 나니 심플하고 그럴싸한 매대가 되었다. 


문제는 떡볶이판이었다. 한국이었다면 쿠팡맨이 당일에 문 앞까지 보내 주었겠지만, 여기서는 구글 서치도 실패하고 현지인들에게 보여 주어도 그런 형태의 조리대는 주문제작밖에는 길이 없을 것 같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하지만 얄팍하고 넓은 냄비는 있다고 했다. 원장님과 함께 방문한 도매시장 안의 작은 철물점에서 찾은 지름 70센티의 냄비 가격은 단돈 500바트였다. (17,000원) 


아이스크림 컵 중간 정도 사이즈로 해서 30바트 (한화 천원) 로 가격을 산정했다. 주 고객으로 예상되었던 학생들의 주머니 사정을 생각하면 그 이상의 가격은 어려울 것 같았다. 그렇게 500바트를 투자해서 시작한 천원 컵떡볶이의 테스트 런은 성공적이었다. 첫날 냄비 하나 완판, 둘째날은 냄비 두 개... 일주일 정도 지나자 세 번을 끓여야 했다.

완판!

어디까지나 테스트 판매였기 때문에, 그 이후의 것들은 전혀 생각되어 있지 않았다. 며칠 지나지 않아 생각지도 못했던 곳에서 문제가 터졌다. 떡볶이떡이 떨어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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