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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피유진 Apr 16. 2021

태국 야시장 생존기 - 1

삐약삐약 상린이

나로 말할 것 같으면, 어릴 적부터 유달리 먹성이 좋고 먹어 보지 않은 것에 대한 호기심이 강했다. 어른이 되어서도 식도락을 즐겼다. 하지만 머리털 나고 단 한 번도 내가 먹는 것을 만들어 팔게 되리라고는 생각해 본 적이 없다. 그도 그럴 것이 나는 그 흔한 C컬 드라이도 하지 못하는 "찐 똥손"이었던 것이다. 요식업은 손 빠르고, 체력이 특출하며, 어릴 적부터 남다른 손맛이 있는 사람들만 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 내가 요식업을 시작한 지 이제 두 달이 넘었다.


코로나로 락다운도 어언 일 년에 정치적인 이슈로 인해 수도인 방콕에 바람 잘 날 없으니, 꾸준히 하강곡선을 그리고 있던 보육원 후원금이 수직 낙하하기에 이르렀다. 마침 동네 유지인 후원자가 본인 소유의 주차장에 야시장을 열 생각이라고 했다. 그래서 우리도 자리를 한 칸 예약했다. 그렇게 초소자본 요식업 창업이 시작되었다.


처음 준비한 것은 보육원에 남은 긴 테이블 두 개와 테이블보였다. 테이블보는 크리스마스 행사 때에 이용했던 커튼을 잘라 만들었다. 테이블 두 개를 이어서 보육원에서 재배한 커피와 쌀, 그리고 내가 담근 김치를 판매했다. 보육원에서 주문을 받아 팔던 시기에는 띄엄띄엄 팔리던 김치였기에 아직 태국 시골에서는 마니아층만 소비하는가보다 했던 나의 예상을 보기좋게 엎고 김치가 우리 가게 매출을 견인하기 시작했다. 첫 사흘은 늘 마트에서 보아 오던 대로 800그램 정도로 포장하여 팔았는데, 셋째 날 한 손님이 김치를 사시며 우리의 향후 한 달을 송두리째 바꿀 한 마디를 남겼다. 


"이 동네에도 김치 먹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이 정도 양하고 가격이면 좀 부담스러워요."


그러고 보니 테스코나 매크로 같은 대형마트에서 100그램 단위로 포장되어 팔리는 김치를 보고 저걸 누구 코에 갖다 붙이나 생각하던 날들이 생각났다. 다시 생각해 보니, 그들이 굳이 그런 조그마한 포장을 선택한 데에는 분명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그렇게 300그램 소포장 김치를 매대에 올리자 판매량이 3배로 늘었다. 나는 얼떨결에 매일 배추를 한 망태씩 절이게 되었다. 팔다 보니 현지인들은 열에 아홉 정도 당일 담근 새 김치를 찾는 것을 알게 되었다. 새 김치가 익숙한 쏨땀과 맛이 비슷하다고 느끼기도 하고, 아직 김치로 이것저것 조리해 먹기가 버겁게 느껴지는 모양이었다. 담근 지 하루만 지나도 사겠다는 손님이 눈에 띄게 적었다. 이 말은 곧 거의 매일 새 김치를 담가야 한다는 것이었다. 한 달을 넘기니 새롭고 신기한 것에 대한 호기심으로 사는 손님이 줄고 주기적으로 김치를 사는 단골만 남았다. 김치를 담그는 입장에서는 편해졌지만 매출을 생각하면 영 좋지 않은 소식이었다. 뭔가 돌파구가 필요했다.




동네 테스코를 돌다 라면 섹션을 서성이는데 뒤에서 한 아이가 다급히 소리쳤다.


"엄마! 나 떡볶이 사줘!!"


생각해 보니 이전에도 똑같은 목소리를 들은 적이 있었다. 또박또박한 발음으로 떡볶이를 요구하는 아이의 목소리 말이다. 아이가 요구한 것은 한 번 먹는데 무려 140바트 정도 투자해야 하는 레토르트 떡볶이. 길거리에서 파는 볶음밥 한 그릇이 40바트인 것을 생각하면 무시무시한 가격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세 번이나 아이들이 떡볶이를 찾고 부모님이 마지못해 사 주는 것을 목격한 것이다.


생각해 보면 보육원 아이들도 유독 먹방 보기를 좋아했다. 간혹 휴대폰을 들고 있노라면 주위를 에워싸고  ASMR을 틀어 달라고 떼쓰곤 했는데, 아이들이 원하는 ASMR은 트리거를 유발하는 전통적인 ASMR은 아니었다. 마이크를 끼고 하는 먹방 ASMR이었다. 대부분의 먹방이 분식이나 배달음식 위주로 촬영되니, 떡볶이는 학생층에 익숙하고 한 번쯤 먹어 보고 싶은 메뉴였던 것이다.


그 길로 떡볶이 소스 개발에 들어갔다. 가정식 떡볶이를 해서 먹여 보니 밍숭맹숭하다는 의견이 대부분이었다. 조미료도 많이 넣었는데 말이다. 이들이 원하는 맛이 궁금해 현지에서 팔리고 있는 완제품 떡볶이 소스를 먹어 보니 그 맛이 흡사 양념치킨 같았다. 보통은 음식에 단맛이 나면 좋아하지 않는다는 인식이 너무 뇌리에 박혀 있었던 것이다. 알싸한 현지 고추가루를 많이 섞고 두려워하던 설탕과 물엿을 팍팍 넣으니 그제야 맛있다는 평들이 나왔다.


그렇게 새 아이템이 탄생했다. 나는 떡볶이는 무조건 팔린다는 믿음이 있었다. 이제는 예상이 적중할 지 실제로 시장에 부딫혀 보는 일만 남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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