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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피유진 Jan 11. 2020

평범한 사람도 기부를 할 수 있나요? (1)

지극히 평범한 사람들이 전기도 깔고 스쿨버스도 산 이야기

처음 반나나 보육원에 발을 디디었을 때, 나는 24살의 사회 초년생이었다. 

당시 보육원에는 수도도, 전기도 없는 상태였다. 휘발유를 넣고 성인 남성이 물리적인 힘으로 발전기 핸들을 돌리면 털털털털 하는 소리와 함께 자가 발전기가 돌아갔고, 발전기가 돌아가는 시간 (하루에 약 2시간) 동안은 그 힘으로 끌어온 지하수가 나왔다.

"물 틉니다!" 

라는 소리가 들리면 다들 일사불란하게 양동이들을 가져다가 물을 받아 놓았다. 받아 놓은 물이 없으면 씻는 것은 물론, 설거지를 하는 것도, 볼일을 본 뒤 물을 내리는 것도 불가했다. 


보육원에는 아이들을 통학시키는 트럭이 하나 있었는데, 1톤 용달 트럭 위에 쇠로 만든 보호장치를 얹은 것이었다. 연식이 30년 정도 되어 보험사에서 받아 주지를 않았다. 당시 원생이 100명 정도였는데, 9호선을 연상케 하는 밀도에, 큰 아이들은 쇠창살에 매달려서 매일 묘기를 부리듯 등교하곤 했다.

과장을 좀 보태어, 이런 느낌.

당시 이런 상황이 너무나 안타까워, 매일 기도를 했다. 나는 어렸고, 로드맵을 잘 짜는 성정도 아니었다. 다만 꼭 전기를 깔고, 저 지긋지긋한 고물덩이(?)를 갈아치우겠다는 생각을 마음 한 켠에 계속 간직했다.


그러던 어느 날, 회사에서 친하게 지내던 언니가 친구 중 최근 새벽기도를 나가기로 결심한 친구가 있는데, 본인은 집이 너무 머니, 같은 동네에 사는 네가 좀 함께 가 달라고 부탁을 했다. 일면식도 없는 사람과 같이 새벽기도를 나가 달라는 부탁에 당황스러웠지만, 집에 와서 곰곰히 생각해 보니 거절할 이유가 귀찮음 하나 뿐이라, 핑계가 변변치 않아 그렇게 하기로 했다.


새벽기도에서 처음 만난 그녀는 아이들을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내가 보육원 이야기를 하자 갑자기 눈물을 흘리더니, 기회가 된다면 꼭 한 번 같이 가 보고 싶다고 했다. 나도 뭔가에 홀렸었는지 (지금 생각하면 필연이었던 것 같다) 그러시다면 같이 가자고 했다. 우리의 만남을 주선한 언니에게 일이 이렇게 된 것에 대해 책임지는 차원에서 같이 오라고 했고, 그렇게 세 여자의 여행이 시작되었다. 


우리는 6개월이 채 안 되는 기간에 보육원에 두 번 다녀오며 소소한 봉사활동을 했다. 아침에 일어나서 아이들에게 계란후라이와 스팸을 구워 주고, 저녁에 놀이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두 번을 다녀오고 난 후, 언니들은 [판을 키우자]고 했다.


"평소에 해 보고 싶었던 것 있어?"

왜 그런 대답을 했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과도하게 솔직한 대답을 했다.


전기를 깔고 싶어요.


제발 물이 24시간 나왔으면 좋겠다.


언니들은 생각보다 담담했다. 한 언니가, 같이 봉사활동을 많이 다닌 동생 중 굵은 소금만 먹으며 땡볕에서 보수 작업을 많이 하는 친구가 있다고 했다. 다만 사업체를 운영하고 있어, 시간이 될 지 의문이었다. 


"일단 물어봐 주세요." 


다음 번에 우리가 만났을 때, 언니는 아이들의 사정을 이야기 해 주었더니 그가 흔쾌히 함께하겠다고 대답했다는 놀라운 소식을 전해 주었다. 언니들이 그가 와 주는 대신 항공권을 선물하기로 했다. 우리는 몇 번 식사를 같이 하며 최소한의 친목을 다진 상태로 함께 떠났다. 과연 이렇게 번갯불에 콩 볶아먹듯 해도 되는 걸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보육원에 도착한 후 나는 부푼 마음으로 우리의 프로에게 어떤 것 같으냐고 물어보았다. 나의 우려가 현실이 되는 순간이었다. 그는 곤란한 표정을 짓더니 생각보다 부지가 너무 넓어서 혼자 작업하기는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했다. 우리는 이번에 확실히 답사를 하고 더 많은 사람들을 모아 돌아오기로 했다. 역시 인생에 쉽게 되는 건 없구나. 나의 실망과는 무관하게 우리는 아이들과 함께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돌아왔다.


다시 일상으로 돌아와 친구와 돈까스를 먹던 어느 날, 마지막으로 합류한 그분에게 연락이 왔다. 그는 소정의 금액을 기부하겠으니, 본인의 설계서를 가지고 현지에서 인부를 구해 달라고 했다.

"제가 전기를 깔러 갔는데... 책임지고 깔아야 할 것 같아서요."

그렇다. 우리는 모두 전기를 깔러 갔으니, 그 소망에 대한 책임이 있었다. 달을 넘기지 않고 다시 보육원으로 향했다. 놀랍게도 현지 인부들은 딱 기부금 만큼의 가격을 불렀다.


그렇게 전기가 깔렸다. 전기가 깔린 후로는 물이 계속 나왔고, 아이들은 더 이상 용돈으로 손전등을 사지 않았다. 저녁 9시 이후 숙제를 할 때도, 그냥 형광등을 틀고 할 수 있는 놀라운 시대가 보육원에 도래한 것이다. 다만 우리가 전기를 설치했을 때 중앙 퓨즈까지는 설치하지 못했던 것이 마음에 걸렸었는데, 지성이면 감천이라고 전기가 깔린 바로 다음달에 현지의 유명한 호텔에서 사회공헌 프로젝트로 멋진 중앙 컨트롤 시스템을 기증해 주었다. 


전기가 실제로 깔리는 것을 본 우리는 다들 붕 뜬 기분이었다. [다음엔 어떤 일을 해 볼까?] 라는 생각뿐이었다. 이제는 월례 행사가 된 우리의 다음 번 모임에서 나는 다음 프로젝트를 선언했다.


직업교육을 하고 싶어요.


어떤 아이들은 이미 꽤 자란 상태에서 보육원에 들어오는데, 그 전에 전혀 정규교육을 받지 못한 경우가 꽤 있다. 이런 친구들의 경우 본래 학업에 재능이 있는 게 아니라면 다른 친구들을 따라가기가 현실적으로 매우 어렵다. 이런 경우 기술을 배우면 학교를 다니는 것보다 훨씬 도움이 된다.


각자 휴대폰을 들고 연락처를 훑기 시작했다. 아는 이들 중 미용사가 한 명 나왔고, 또 용접공이 한 명 있었다. 결론은 전과 같았다.


"일단 물어봐 주세요."


그리고 두 번째 기적이 일어났다. 두 분 다 좋은 일이니 함께하고 싶다고 한 것이다. 항공권은 초대를 한 이들이선물하기로 했고, 미용하시는 분은 가위 세트를, 용접하시는 분은 용접장비를 들고 오셨다. 평소 보육원 봉사에 관심이 있던 친구 두 명도 합류했다. 우리는 저가 항공을 타고 갈 예정이었기 때문에 수화물이 최대 15kg까지밖에 허용되지 않았다. 용접장비는 말 그대로 쇳덩어리였기 때문에 두 명의 수화물은 온전히 장비 하나씩으로 꽉 찼다. 거기에 아이들에게 줄 스팸과 김, 각종 놀이를 위한 준비물들도 만만치 않았다. 출국 전날 우리는 가져갈 차를 세워 놓고 지하주차장에서 장장 두 시간을 씨름했다. 이렇게 넣어 보고, 저렇게 넣어 보고. 결국 생각보다 많은 짐을 핸드캐리 해야 했고, 우리는 각자 마음 속에서 들고 가려 했던 개인적인 짐들의 상당수를 떠나보냈다.


결국 공항에서 용접장비가 폭탄이 아닌가 하는 의심을 받고 뒷방(?)으로 불려들려가는 해프닝이 있긴 했지만 우리는 안전하게 보육원에 도착했다. 미용을 배우고 싶어하는 아이들도, 용접을 하고 싶어하는 아이들도 많았고, 선생님들도 열정적으로 수업하셨고, 나 역시 최선을 다해서 통역했다. 나는 미용과 용접에 완전히 문외한이었기 때문에 함께 수업을 듣는 느낌으로 재미있게 일할 수 있었다.


(좌) 중앙에 있는 테이블이 선생님과 용접한 것 (우) 아이들이 응용하여 만든 의자들


이곳에 함께 온 모든 이들이 그러했듯, 두 선생님도 매우 기뻐하셨다. 내게 있는 것으로 다른 이를 도울 수 있다는 것은 행복한 일이니까. 우리는 그렇게, 혼자에서 북적북적한 팀이 되었다.


이 팀은 두 번 직업교육을 하러 떠났다. 두 번을 교육하고 나니 아이들도 꽤 잘하게 되어 제법 이것저것 할 수 있는 수준이 되었다. 교육이 이제는 새로운 프로젝트가 아니라 매번 하는 루틴이 되다 보니, 우리는 다시 딴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이번엔 어떤 일을 해 볼까?

나는 스쿨버스를 바꾸고 싶었지만, 대부분의 "제3세계" 국가가 그렇듯이 태국 역시 자동차가 매우 비쌌다. 같은 차종이면 한국보다 1.5배 정도 비싸고, 벤츠 같은 차량의 경우 유럽에서 사는 것보다 세 배 가량 비싸다. 여간한 세단 한 대가 서민들이 사는 집 한 채와 가격이 맞먹는 수준이다. 다들 으쌰으쌰하는 분위기라 예전처럼 에라 모르겠다라는 마음으로 이야기 하기가 어려웠다. 


잘 모르겠어요.


팀원들은 그러면 보육원에 필요를 물어보자고 했다. 원장님께 메세지를 보내자 예상치 못한 대답이 돌아왔다.


스쿨버스를 바꾸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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