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없는 아이들
"아이들을 치앙라이에 있는 공원에 데려가면 어떨까요?"
아이들에게 무엇이 하고 싶으냐고 물었더니, 아무래도 좋으니 밖으로 나갔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리고 되도록 멀리 나갔으면 좋다고 했다. 24살의 나는 밀레니얼 세대 특유의 구글링 스킬을 발휘하여 치앙라이 시 인근의 [싱하 파크]를 찾아내곤 뿌듯해했다. [싱하 맥주]로 유명한 태국 굴지의 싱하 그룹에서 운영하는 공원으로 입장료가 무료이고, 그리 부담되지 않는 비용으로 자전거를 대여하여 공원 한 바퀴를 돌며 차밭과 작은 동물원을 구경하고, 돈을 더 내면 지프라인도 탈 수 있었다.
"거기는 데려갈 수가 없어요. 너무 멀어요."
"우리 차가 너무 작아서 위험해서 그런가요? 밴을 추가로 대절하면요?"
원장님은 곤란한 표정을 지으셨다.
"거기는 체크포인트 너머라서, 밧 후아쑨이 아직 없는 아이들은 갈 수가 없어요."
체크포인트는 사실 국가의 입장에서 꼭 필요하고, 일반적인 국민의 입장에서는 고마운 존재다. 대부분의 사람이 반겨하지 않는 불법 이민자를 걸러내고, 마약사범 등의 각종 범죄자도 색출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서류 없이 태국에서 살고 있는 우리 아이들 역시, 걸러내 져야 할 불법 이민자의 범주에 해당된다.
체크포인트 안쪽에 있는 이들에게는 보호의 상징인 곳이
체크포인트 밖에 있는 이들에게는 기약 없는 단절을 상징한다.
우리의 싱하파크 견학은 그렇게 빠르게 무산되었다. 불법을 저지르면서까지 수학여행을 갈 수는 없으니까. 결국 좀 생뚱맞지만 체크포인트를 건너기 전에 있는 아편 박물관을 방문했다. 주제가 유치원생부터 가는 수학여행 치고는 무거웠지만, 걱정과는 달리 아이들은 지나가면 불이 켜지는 전시물들을 신기해했고, 박물관 밖에 있는 언덕에서 구르며 신나는 한 때를 보냈다.
우리 보육원에는 아서(가명)라는 고등학생 남자아이가 있었는데, 녀석은 정말 생김새가 한국 사람 같았다. 많은 소수민족 사람들이 눈이 우리네처럼 가늘고 길고 광대뼈가 나와 있지만, 아서는 특히 그랬다. 보육원을 방문하는 모든 한국인 봉사자가 똑같은 얘기를 할 정도였으니까.
"아서, 넌 정말 한국 사람같이 생긴 것 같아."
내 말을 들은 아서는 푸하하 웃었다. 나는 왜 웃느냐고 물었다.
"누나, 누나는 내가 한국사람같이 생겼다고 하잖아요. 근데 경찰관들은 다 내가 약쟁이처럼 생겼다고 해요."
"뭐? 그게 무슨 말이야?"
"난 체크포인트 지나갈 때마다 소변검사를 해요. 딱 약쟁이처럼 생겼다는 거지."
주변 남자애들 사이에서 키득키득하는 웃음과 함께 여기저기서 나도, 나도, 라는 소리가 터져 나왔다. 나는 소변검사가 뭔지 이해가 잘 되지 않았다. 내가 밴을 타고 보육원에서 공항을 왔다 갔다 할 때에는 체크포인트를 매번 그냥 통과했기 때문이었다. 경찰관들은 단 한 번도 우리 밴을 세우지 않았다.
그로부터 약 2년 후, 고등학생 아이들과 함께 치앙라이에 놀러 갈 일이 생겼다. 나는 면허가 없는 뚜벅이였고 보육원에는 스쿨버스 한 대 밖에 없었기 때문에, 우리는 버스를 타고 시내로 나가기로 했다. 태국에서 처음 타 보는 대중교통이었기 때문에 나는 꽤나 들떠 있었다. 메싸이에서 치앙라이까지는 대략 한 시간 반의 거리. 선풍기만 달려 있는 초록색 버스 (롯 메이)가 인당 39밧, 에어컨이 나오지만 손님이 꽉 차야 출발하는 미니밴 (롯뚜)가 인당 49밧이다. 아이들은 외국인인 나를 배려해서 롯뚜에 탑승했다.
차를 타고 조금 달리자 첫 번째 체크포인트에 도착했다. 밴은 당연한 듯이 길가에 정차를 했고, 경찰관 두 명이 탑승해서 모든 손님의 신분증을 검사하기 시작했다. 아이들은 모두 밧 후아쑨이 있었지만, 여자아이 한 명, 남자아이 한 명이 하차 명령을 받았다. 나는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우리뿐만 아니라 뒤에 앉아 있던 남자 승객 한 명도 내리라는 얘기를 들었다.
롯뚜 안에서는 밖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잘 보이진 않았지만, 경찰관이 이것저것 질문을 하는 것 같았다. 우리 일행은 이야기가 끝나자 다시 탑승했고, 뒤에 앉아 있던 남성은 체크포인트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뭐야?"
"아무것도 아니에요. 저 사람은 소변검사를 해야 해요."
조금 지나자 내렸던 승객이 다시 탑승했다.
나중에 자초지종을 들어 보니, 소변검사는 경찰관이 보기에 마약을 했을 가능성이 높아 보이는 사람에게 시키고, 소변에서 마약성분이 검출되지 않으면 다시 버스에 탑승하게 된다고 한다. 물론 마약성분이 검출될 경우 유치장으로 가게 된다. 그 외의 하차한 사람들에게는 행선지가 어디인지, 가는 이유는 무엇인지, 언제 돌아올 예정인지, 현재 거주지는 어디인지 등을 묻는다.
차는 다시 달렸다. 한참 달려서 이제는 도착하겠구나 싶을 즈음 우리는 다시 정차했고, 운전사 아저씨는 경찰관에게 밝게 인사했다. 아뿔싸, 체크포인트가 또 있었다. 나는 구시렁대며 여권을 다시 주섬주섬 꺼냈다. 경찰관은 내 여권을 쓱 쳐다보곤 다른 사람으로 넘어갔다. 그리고 다시 사람들이 내렸다. 이번엔 우리 중에는 남자아이만 내렸고, 소변검사를 했던 승객 역시 또 내렸다. 첫 번째 체크포인트를 지나서여서인지, 다행히 아무도 2차 소변검사를 당하는 변은 당하지 않았다. 차가 다시 출발했고, 나는 기분이 묘해졌다. 치앙라이로 가는 길이 이렇게 멀고도 험했다니!
"내가 롯뚜를 타고 갈 때는 한 번도 서지 않았는데."
"그건 대절해서 타고 가는 밴이잖아요. 부자들만 타는."
그렇지! 무국적자이거나 미얀마에서 넘어온 불법 노동자일 경우 밴을 대절해서 탈 수 있을 리가 없다.
아래는 각 이동수단의 인당 가격이다.
밴 대절 : 1,200밧 (약 5만 원)
택시 : 700~800밧 (약 3만 원)
공공 밴 : 49밧 (약 1,500원)
공공버스 : 39밧 (약 천 원)
그리고 평균적으로 아이들은 성인이 되어 일용직으로 취직하면 매달 5,000밧 정도를 번다. (약 20만 원)
어떻게 보면 태국은 이렇게 서류가 없는 이들에게 관대하다. 어쨌든 밧 후아쑨을 받으면 치앙라이까지는 (절차가 복잡하긴 하지만) 이동하고 생활할 수 있으니까 말이다. 주변 국가에 비해 부유하고, 그래서 태국으로 이주하려는 사람이 많기 때문에, 태국 국적자가 통제 불가한 정도로 늘어나는 것에 대한 우려가 분명히 있을 것이다. 그리고 위정자가 국익을 보호하려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다만 안타까운 것은 보육원 아이들과 같은 소수의 예외적인 [기타 누락자] 들이다. 부모님은 미얀마 산속 깊은 곳에서 왔을지언정, 본인은 태국어밖에 할 수 없고, 5세 이후에 미얀마에 발도 디뎌보지 못한 반쪽 태국 사람. 영화 한 편을 보러 시내를 가더라도 매번 소변 검사를 당하는 치욕(!)을 견뎌야 하는 삶. 태국인 배우자를 얻지 않으면 아이에게도 같은 삶을 물려줄 수밖에 없는 누락된 아이들.
우리가 아이들을 보호하고 밧 후아쑨을 만들어 주려고 노력하는 것은, 국적이 없는 아이들이 가장 범죄에 취약하기 때문이다. 아이를 납치하거나 매매하여 집창촌에 팔거나 마약 운반책으로 이용하다 큰 변을 당해도, 존재 자체가 기록되지 않았기 때문에 누가 언제 없어졌는지 세상의 그 누구도 알 수 없기 때문이다. 분명 2등 시민으로 사는 것이 존재하지 않는 사람으로 사는 것보다는 안전하고 유익하다.
하지만 롯뚜를 타고 치앙라이를 갈 때마다 마음이 무거워지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아일랜드의 극작가인 올리버 골드스미스는 생전에 이런 말을 남겼다.
법은 가난한 사람들을 심히 괴롭히고, 부자들은 법을 지배한다.
(Law grinds the poor, and rich men rule the law.)
그리고 5년이 지난 지금, 나는 아이들과 치앙라이를 갈 때 아무도 내리지 않게 하는 나름의 노하우가 생겼다.
(1) 깔끔한(=비싸 보이는) 옷을 입힐 것.
(2) 깨끗한 신발을 신길 것. (가급적 쪼리 지양)
(3) 피부가 검을수록, 더 비싸 보이는 옷을 입힐 것.
[덧붙이는 말]
지난주 처음으로 브런치에 기고한 글이 감사하게도 다음 메인화면에 노출되어 많은 분들이 읽어 주시는 기쁨이 있었습니다. 놀랍게도 부족한 글을 정독해 주셨을 뿐만 아니라 후에 다양한 형태로 후원해 주신 분들이 많았습니다. 이 자리를 빌려 격려의 말씀을 주신 모든 독자분들께 감사를 드리며, 특히 최0비 독자님, 최0석 독자님, 박0규 독자님, 그리고 성함을 모르는 원주의 신발 기증자님께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