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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피유진 Feb 28. 2020

설리번 선생님이 아니라서 미안해

"아파도, 힘들어도, 말을 못 하니까 더 불쌍해." 

많은 동물 애호가들이 동물 권리 활동을 할 때 으레 하는 이야기다. 그리고 동감한다. 자기표현을 할 수 없는 것은 분명 불행한 일이다. 


우리 학교에는 웃(가명)이라는 아이가 있다. 웃의 가족은 인근 오렌지 농장에서 소작농으로 일하는 가난한 소수민족 가정인데, 웃을 포함 해 세 명의 오누이가 우리 학교에 다니고 있다. 처음 세 아이를 데리고 부모님이 오신 날, 웃의 어머니는 웃을 우리 쪽으로 떠밀며 이야기했다.

"여기 보육원이니까 원하시면 얘는 여기서 키우시던지, 아니면 뭐 데려가겠다는 사람이 있으면 데려가도 된다고 하세요."

웃은 귀가 들리지 않는다. 하지만 그렇다고 엄마가 매정하게 자신의 등을 처음 보는 이들에게 떠미는 것의 의미가 무엇인지 모르지는 않았을 것이다.


내가 본 청각장애인들은 말 그대로 귀가 들리지 않을 뿐이지 자기표현도 가능하고, 지능에도 문제가 없기 때문에 일상생활에 지장이 없는 것이 보통이었다. 하지만 웃은 수화를 배운 적이 없었고 방치된 상태로 일고여덟 살을 먹은 터였다. 아이는 그야말로 야생마 같았다.


반 친구들이 칠판에 적힌 글씨들을 받아 적고 있으면 온 교실을 뛰어다니며 책상을 두들기며 으어어억! 하고 소리를 질렀다. 당연히 "웃!"이라고 무서운 목소리로 불러도 듣지 못하므로 쫓아가서 아이의 어깨를 붙잡고 무서운 표정을 해야 했다. 두 팔로 X자를 만들고, 검지 손가락을 펴서 양 옆으로 까딱까딱 거리는 등 최대한의 바디랭귀지를 동원해서. 처음에는 혼을 낼 때마다 선생님들의 얼굴에 침을 뱉고는 교실 밖으로 후다닥 도망가곤 했다. 밖에 나가서도 돌멩이 던지기, 휴지통 뒤지기 등 온갖 말썽을 피우는 초특급 개구쟁이였다.


시간이 지나 우리들과 친근해지자 더 이상 침을 뱉거나 하지는 않았다. (여전히 말썽을 피우긴 하지만.) 이따금 다른 아이들처럼 공책을 펴고 앉아 있으면 옆에 다가가 가나다를 적는 것을 연습시키려 했다. 웃은 연필로 의미 없는 선들을 좀 긋다가 멋쩍게 웃고는 다른 곳으로 도망가곤 했다.


인근이라고 하기에는 좀 멀지만 어쨌든 맘먹고 통학시키면 통학이 가능한 곳에 왕실에서 운영하는 특수학교가 있다. 학비를 알아보니 달에 만 바트로, 부잣집 아이들만 다닐 수 있는 학교라고 했다. 웃이 워낙에 야생마 같은 아이라 적응할 수 있을지 판단이 잘 서지 않았지만 시험 삼아 한 두 달 정도 보내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장학금을 준다고 하고, 웃을 한 달 정도라도 일단 보내 보면 어떨까요?"

"그 집 어머니가 어떤 식으로 하시는지 봤잖아요. 절대 그 멀리까지 애를 학교에 보내지 않을 거예요."

"보육원에서 부담이겠지만... 우리 스쿨버스로 우선 통학시켜 보면 어때요?"


기름값에, 돌아가는 시간까지 생각하면 우리로서는 큰 희생이었다. 하지만 으억, 으억, 하는 소리만 내며 간단한 의사소통도 하지 못하는 아이를 보며 모두 시도해 보기로 마음을 먹었다.


"나쁜 소식이 있어요."

"왜요?"

"웃이 주민등록증이 없어서, 입학이 불가하대요."

"돈을 내도요?"

"학비랑 무관하게 주민등록증이 있어야 한대요."


그렇다. 웃의 부모님은 태국인이 아니었고, 웃은 국적이 없는 아이였다. 그렇게 수화라도 가르쳐 보려 했던 우리의 마음은 물거품이 되었다. 이를 아는지 모르는지 웃은 그날도 나뭇가지를 꺾어 여기저기를 툭툭 치며 뛰어다녔다. 그 뒷모습을 보고 있자니 괜스레 눈물이 나왔다. 운다고 나아질 일은 없는데.


다음 교무회의 때에 다음 학기부터 웃은 데려오지 않는 것이 어떻겠냐는 의견이 나왔다. 어차피 아이는 배움에서 소외되어 있고, 수업시간에 면학 분위기를 심각하게 해치는 존재였기 때문이었다. 다들 깊은 생각에 잠겨 있을 때, 보육원 원장님 아내분이 조심스레 입을 여셨다.


"사실... 웃은 뭘 딱히 가르치려고 데려온다기보다는... 그냥 점심 먹이려고 데려오는 거예요. 집에 있으면 부모님이 다 일을 나가셔서 끼니를 굶으니까요..."


우리는 모두 조용해졌고, 이사진에 계시는 선생님이 어쨌든 아이가 다른 친구들과 어울리는 법을 배우는 것이 중요하니 거기에 의미를 두고 모두 힘내자는 이야기로 아름답게 회의를 마무리했다.



어릴 적 헬렌 켈러의 위인전을 읽었을 때 설리번 선생님이 헬렌의 손을 분수에 갖다 대고 손바닥에 W A T E R라는 단어를 계속해서 적는 식으로 어린 헬렌을 가르쳤다는 구절을 읽은 기억이 났다. 웃의 가슴팍을 손가락으로 톡톡 친 후 공책에 '폼' ('나'라는 뜻)을 적었다. 웃의 가슴팍을 톡톡, '폼'이라는 글자를 톡톡. 몇 번 반복 후 아이의 손에 연필을 쥐어 주었다. 연필을 쥔 아이의 손을 잡고 '폼'이라는 글자를 삐뚤삐뚤 적어 보았다. 아이는 내가 손을 놓자 특유의 멋쩍은 미소를 짓고는 운동장 쪽으로 달려가 버렸다.


이후에도 몇 번 '폼'을 쓰게 만들려는 노력이 있었지만 늘 웃이 씨익 웃고는 자리를 피하는 형태로 마무리되었다. 설리번 선생님은 도대체 몇 번의 W A T E R를 적었던 것일까. 


나는 설리번 선생님이 아니기 때문에 이내 '폼'을 적는 것을 그만두었다. 웃을 가르치는 것보다 중요한 일이 많았기 때문이었다. 나는 설리번 선생님이 헬렌을 사랑했던 것처럼 웃을 사랑하지 않았다.


웃은 수업 중에 영상을 틀어 주면 매우 즐거워한다. 내 노트북에서 HDMI 선을 연결해서 영상을 튼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수업 중에 계속 앞으로 나와서 노트북을 툭툭, 하고 건드린다. 영상을 틀어 달라는 말이다. 비디오를 좋아하는 녀석을 위해 수업 후에 휴대폰을 들어 셀프 카메라로 영상을 촬영하게 내버려 두었다.



웃은 놀랍게도 입을 벌리며 으, 데데, 하는 소리를 내며 말을 하는 시늉을 했다. 빈칸뿐인 공책을 펴서 안에 있는 내용을 발표하는 시늉도 했다. 친구들이 발표하는 것이 내심 부러웠나 보다. 촬영을 마치고 결과물을 보여 주니 말을 하는 자신의 모습이 썩 마음에 들었는지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교실 문을 나섰다.


짐승이 말 못 해 슬프다고는 하지만 동물은 본디 말로 자기표현을 하지 않는다. 언어를 사용해 호모 로쿠엔스라는 별명이 있는 사람들 사이에서 수화로도 말을 하지 못하는 이의 마음은 어떠할까?


웃, 내가 설리번 선생님이 아니라서 미안해. 하지만 다시 노력해 볼게.

'폼', '폼', '폼', '폼', '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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