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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피유진 Apr 03. 2020

코로나 시대의 사랑

코로나바이러스로 인해 전 세계가 시름하고 있다. 우리 보육원도 예외는 아니다. 

관광산업이 GDP의 11% 정도를 차지하고 있는 태국에서 외국인의 전면 입국 금지를 선언할 정도로 상황이 심각하고, 경기 악화로 인해 정부에서 마련한 재난 소득을 받으려고 몰려든 인파는 무려 3천만 명에 달했다. 이 와중에 기부할 여력이 없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슬금슬금 코로나가 세력을 늘려 가던 때부터 하향선을 그리던 보육원의 수익이 급기야 0원에 수렴하기 시작했다. 다들 마스크를 쓰고 바삐 지나가는 도중, 아이들이 농사지었다는 쌀과 커피가 진열되어 있는 키오스크에 멈춰 설 여유는 없었다. 봉사자인 나를 통해 들어오는 후원금이 유일한 수익이 되었다. 그야말로 비상이었고, 오후마다 과자를 먹겠다고 우르르 몰려오는 대여섯 살짜리들이 우유도 달라며 투정을 부리면 나도 모르게 있는 것이나 먹으라는 투로 예쁘지 않은 말들이 튀어나갔다.


어른들이 점점 침울해져 가고 있던 차에,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질풍노도의 시기를 지나고 있는 고등학생 나이 때의 아이들이 보육원을 위해 팔을 걷어붙이고 나선 것이다. 우리 보육원에는 천애고아뿐만 아니라 부모님이 계시지만 가정환경이 불우하여 보호하고 있는 아이들도 있는데, 상황이 어려워짐에 따라 코로나바이러스가 잠잠해질 때까지 집으로 돌아가고 싶은 친구들은 돌아가도록 하였다. 이 상황에서 서너 명뿐인 어른들이 어린아이들을 돌볼 것을 생각하니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아 돌아갈 가정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보육원에 남은 친구들도 있었다. 남학생들은 갈수록 더워지는 태국의 땡볕 밑에서도 동생들과 함께 먹을 야채를 심고 물 주며 종일 밭을 매었다. 형들이 농사를 하니, 동생들도 덩달아 고사리손으로 농사를 짓기 시작했다. 여학생들은 생필품들과 식료품을 정리하고, 남은 쌀과 커피를 판매하기 위해 예쁘게 사진을 찍어 인터넷에 올리기 시작했다.


누나들의 지휘 아래 훌륭한 모델이 되어준 아이



지성이면 감천이라는 말도 있듯, 적당한 때에 도움의 손길이 들어왔다. 코로나가 종식될 때까지 어떻게 될지 아무도 모르는 상태라, 우리는 식비의 일부를 떼어 오리를 50마리 더 키우기로 결정했다. 총 60마리의 오리들이 매일매일 알을 낳아 주고, 그 알들 중의 일부는 부화하기를 기대하며. 남자아이들이 직접 지은 오리우리가 완성되어 갈 즈음, 온라인에서 조금씩 주문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코로나 전에는 쌀보다 커피가 더 잘 팔렸었는데, 다들 식료품 사재기를 하는 분위기가 되니 천대받던(?) 쌀이 효자 상품이 되었고, 한 번에 무려 100킬로그램의 쌀을 주문하는 고객도 있었다.


보육원 주변 나무에서 아이들이 따 온 망고들

우리 텃밭에서 난 야채들은 먹을 수 있는 때가 되면 바로 따 먹힘을 당했기 때문에(?) 모두 싱싱한 어린잎이었다. 결과적으로 시장에서 사 오던 것들보다 맛이 있었다. 아이들이 동네를 돌아다니며 열심히 따 온 신 망고는 고춧가루와 소금에 찍어 먹으면 처음에는 진저리 쳐지도록 시었지만 계속 먹다 보면 은근한 중독성이 있었다. 모든 특식은 약속이나 한 듯 막내들에게 우선 시식권이 제공되었다.


알 많이 낳거라

오리들이 드디어 입주하던 날, 녀석들은 형들이 녀석들의 심신 안정을 위해 만든 우리 내 연못에서 헤엄을 치며 놀았다. 연못 덕이었는지 장기간 이동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다음 날 10마리 정도가 바로 오리알을 낳아 주었다.



쌓여 있던 쌀의 재고가 바닥을 드러내기 시작하자 수익원을 위해 새로운 상품 개발이 필요했다. 오래 두고 먹을 수 있는 김치를 팔면 어떻겠냐는 제안이 있었다. 내 인생 마지막 김장은 초등학생 때였지만 서당개도 3년이면 풍월을 읆는다던데... 바닥에 신문지를 가득 깔고 김장을 하던 할머니와 그 옆에서 식은 밥 좀 퍼달라며 갓 담근 김치에 밥 때도 아닌데 시원하게 두 그릇씩 비워내던 나의 경력(?)에 의존해 도전을 해 보기로 했다. 


여자아이들의 손을 모아 한 알 한 알 깐 마늘과 생강을 태국식 절구에 넣고 으깼다. 새우젓이 없어 짭짤한 냄새가 나는 말린 새우를 사다가 태국 액젓에 담아 놓고 괜찮을까 머릿속으로 생각하며 찹쌀가루로 풀을 쑤다 보니, 어릴 적 김장하시던 할머니 생각이 났다. 그래도 나름 무채와 당근까지 썰어 넣고 혹시 몰라 우편으로 공수한 다시다까지 두 스푼 투척한 김칫소에 절인 배추를 버무려 첫 잎을 옆에서 구경하던 아이의 입으로 넣는다. 긴장되는 순간, 녀석이 다행히 맛있다며 또 먹겠다고 한다. 할머니, 괜찮대요... 할머니처럼 굴이랑, 조개젓 같은 건 못 넣었지만요.


너무 많이 만들어 남아버린 김칫소에 그새 신 망고를 썰어 넣어 버무려 먹으며 좋아하는 녀석들을 보니 어릴 적 김치에 밥을 두 그릇씩 비우던 나를 보던 할머니 마음이 이러셨을까 싶다.



코로나로 모두가 힘들고 어려운 와중에도 우리는 서로 사랑하고 있다. 정신없는 와중에도 어려운 이웃을 기억하는 귀한 손길들과, 나보다 어리고 약한 이들을 위해 가족과의 시간을 포기하고 시설에서 일하는 청년들과, 몇 달째 급여가 없음에도 아이들을 위해 헌신하는 동료들과, 마트에, 은행에, 관공서에 갈 때마다 묵묵히 제 자리를 지키고 있는 일상의 영웅들과, 코로나와 맞서 일선에서 싸우고 있는 의료진들. 그리고 어느 순간 반찬투정도 하지 않고 형, 누나들을 조금씩 돕는 유치원생들까지. 


Amor Vincit Omnia. 사랑은 모든 것을 이긴다. 코로나 포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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