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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기반성 Oct 26. 2023

English, 언어의 무게

영어권 국가에 살아요

언어에는 정말 소질이 없는 나. 

한국에 있을 땐, 내가 외국에 살고 있지 않아서 못하는 것이라 생각했다. 

살면 그래도, 그래도 지금 보다는 낫겠지. 

하지만, 너무나 안타깝게도 4년을 살고 있는 지금도 영어는 늘고 있지 않다. 비록 싱글리시일지라도 나는 말만 통하면 되는데, 말을 시작하면 문장은 온데간데없고 단어만 나열한다. 그 단어들도 중학교 언저리에 외웠을법한 기초 단어들로. 

엄마의 한을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그리고 영어권에 취직해서 밥 먹고 살 수 있는 것에 감사하며 아이들은 영어로 공부하면서 신기하게도 1년 만에 말을 했다. 

첫째가 7살 때 이주를 했는데 마지막 1년 유치원을 다녔다. 싱가포르는 로컬 유치원에서 영어와 중국어 수업을 오전/오후로 나눠 오롯이 그 언어로만 수업하고 대화해야 한다. 

처음엔 중국어까지 욕심도 안 냈고, 그저 영어로 화장실 간다, 물 먹고 싶다만 시켜서 보냈다. 

한국에서는 유치원에서 하는 1시간, 2시간짜리 영어가 다였다. 잡고 파닉스를 시키지도 못했던 워킹맘이었기 때문에 이주하고도 전혀 영어 욕심을 부릴 수준이 아니었다. 

그렇게 1년이 흘러 초등학교 1학년이 되기 위해 교복을 수령하러 갔던 날 밤, 아이는 침대에 누워 나에게 자신의 감정을 영어로 줄줄줄 이야기했다. 어느새 저만큼 늘었나 할 정도였는데, 어렸을 때 노출이 그래서 중요하다고 하나 싶었다. 싱오기전 7살 땐, 한글도 쓸 줄 모르고 영어 파닉스도 마스터하지 못했고, 중국어는 들어보지도 못했던 딸이었다. 3년이 지난 지금은 한글 까먹을까 생일마다 카드는 한글로 쓰게 하고 뜻 알려주고 방학 때 한글 과외 붙여서 책 떠듬떠듬 읽게 하는 게 모국어 공부가 다이다. 

해외 거주자분들 공통 걱정거리인, 노출이 확 줄어드니 집에서 엄마아빠와 대화 말고는 한국어는 점점 까먹어가고 있다. 나도 한국에 있을 때 해외 사는 친구들 자녀들 한국어 걱정하면, 그래도 엄마가 조금 노력하면 유지는 되지 않을까 했는데 언어는 정말 생활이라 물리적으로 떨어지는 순간 두 배, 세배의 노력이 필요한 것 같다. 우리 딸 말고 읽기를 5세부터 독립한 언어 천재들은 그래도 한국어 책을 영어 책 보다 재밌어하는 친구가 있다. 부럽다. 

하지만 어떡하리. 엄마의 유전자가 언어에는 잼병인걸. 

정말 어쩌면 이렇게도 안 나는 것인가라고 하소연하면, 남편 왈 "뭔가 인풋이 있어야 아웃풋이 있지. 너 공부하고 물어보는 거야?" 이놈의 원수 정말. 

더 이상 말을 안 한다. 나도 안다. 내가 단어라도 외울라치면 다음날 까먹고 또 까먹고, 문법 책이라도 볼라 하면 to부정사 아는 단어 나오면 뭔가 다 이미 알고 있는 것 같고,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몰라서 싱가포르에 유명하다는 영어는 그래도 친정엄마 찬스로 꽤 들었다. 그래서 더 할 말이 없다. 

남들 효과 본다는 비싼 영어학원 고민고민하다 엄마 돈까지 받아서 다녔건만, 수업시간에 적극적인 중국인들에 밀려 점점 입을 닫고 선생님도 골고루 시키는 것에 한계가 있으시고, 결국 내가 더 적극적으로 나서야 하지만 입이 안 떨어지고, 내가 아는 단어로 어찌어찌 손짓발짓 설명하면 1시간 30분 후딱 간다. 

아이고 프린트물은 3달 들었더니 파일이 묵직한데, 저것만이라도 복습하지. 참. 어렵다. 

일은 8시간 꼬박 앉아서 하겠는데, 영어 공부는 왜 이렇게 어려운지. 아직도 갈피를 못 잡는 나는 내 유전자만 탓하고 있다. 언어에 주실 재능 다른 곳에 몰아주셨나 보다. 언어 학습 유전자는 없나 보다라며 내 정신줄이라도 잡는다. 

둘째는 이제 5살로 한인유치원을 2년 다니고, 10개월째 로컬 유치원을 다니고 있는데 다닌 지 7개월쯤부터 문장으로 말한다. 나보다 낫다. 다행이다. 

먼저 육아해 본 언니들에게 듣기로 초등학교 5학년 때 어느 나라에 거주했는지가 메인 구사 언어의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데, 우리 첫째 딸 이제 2년 남았다. 둘째는 어디나 둬도 잘 헤쳐나가고 이쁨 받을 성격이라 걱정이 안 되는데 첫째 딸 5학년때까지는 어떻게 하든 영어권 국가에 있었으면 좋겠다. 

우리 돈덩어리 첫째 딸. 보고 싶네 갑자기. 

엄마의 영어도 너희처럼 초등학생 영어라도 좋으니 사람 만나면 당황하지 말고 문장으로 좀 말했으면 좋겠다. 

미국, 중국, 캐나다 애들이랑 일하는데 영어는 말하지 않고 번역한 글만 붙여 넣고 있으니, 어찌 늘겠소. 아주머니. 항상 우선순위에서 밀리는 영어 말하기 공부. 영어 문장 만들기 공부. 

언제쯤 최우선 순위에 있으려나요. 싱가포르에서 영어 못해도 살아요. 착한 싱가포리언들이 잘 받아주고 인종차별도 없어서 위협은 없는데, 미국은 영어 해야 살 것 같은데, 미국 사는 영어 못하는 분들도 저와 같은 마음이시겠죠? 어쩌면 더 힘드시겠죠? 저 더 정신 차려야 하는 거죠? 

너무 모르겠어요 영어. 이 죽일 놈의 영어.


지금은 미얀마 헬퍼라 영어로 말하면 못 알아 들어서 한국말로 계속 하게 되는 요상한 상황.

필리핀 헬퍼랑 이야기하면 영어가 늘까해서 구했더니 10일만에 두바이로 도망간 사연은 다음 이야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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