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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기반성 Nov 03. 2023

중요한 미팅, 보고 싶은 아이들

내가 그랬듯이 우리 아이들도 그렇겠지

오늘은 중요한 미팅이 있었어요. 콜을 끝내자마자 둘째가 왜 이렇게 보고 싶을까요? 꽉 앉고 잠시만 있었으면 좋겠는데, 유치원에 있답니다. 

해외에 나오면서 저는 일적으로 여러 가지 경험을 하게 되었어요. 제가 발휘할 수 있는 능력으로 돈을 벌기도 하는 좋은 일부터 일한 거 돈 못 받고 끝나는 경험까지 다양한데, 그때마다 가장 힘이 되는 건 역시 가족이더라고요. 같이 욕해주고 같이 이겨내고 그런 거더라고요. 


저희 엄마아빠는 힘든 일을 저희에게 잘 알리지 않으셨어요. '너희들은 좋은 것만 보고 들어라' 하시는 위주여서 같이 이겨내는 경험은 많이 없었어요. 늘 받기만 해서 능동적이지 못한 면이 있었죠. 아이는 타고난 성향도 있겠지만, 엄마아빠의 교육관에 굉장히 영향을 많이 받잖아요. 함께하는 생활이 모든 가정마다 다르고, 엄마 아빠라는 성향이 다른 두 사람 밑에서 또 달라지고, 30년 살고 같이 살아야 가야 하는 부부가 다른 건 뭐, 너무 당연한 이야기라는 걸 몸소 느낍니다. 


저는 아빠가 대학교 4학년 때 암으로 돌아가셨어요. 그전까지는 정말 평탄한 가정이었는데 아빠가 아프시기 시작하면서 남편이 떠나가면 어쩌지, 남편을 잃은 아내, 아빠를 잃은 첫째 딸, 아빠를 잃은 둘째 딸은 서로를 돌보기도 어려울 만큼, 각자 힘듦을 이겨내는 시간이 꽤 오래 걸렸습니다. 저희 아빠는 사회에서도 인품으로 인정받으시고 가정에서도 정말 다정한 아빠셨어요. 그래서 그 빈자리가 너무너무 컸습니다. 그리고 그 빈자리를 인정하고 받아들이기까지 10년이 넘는 시간이 필요했어요. 

부모님이 돌아가신 분들은 공감하실까요? 갑작스러운 교통사고가 아니더라도 긴 기간 아프시더라도 돌아가시는 날까지 정말 마음의 준비라는 건 될 수가 없는 것이더라고요. (그러니 갑작스러운 이별은 얼마나 힘들지 감히 상상조차 안됩니다.) 

엄마의 마음도 이해가 돼요. 어떻게든 힘든 일은 엄마가 해결하기 위해 최선으로 애쓰는 분이라 혼자 고군툰부 하셨을지요. 조금 다른 맥락에서 딸들을 손에 물도 안 묻히게 설거지 한 번을 안 시키셨어요. 힘든 건 다 혼자 하셨죠. 하고 나면 힘들어서 짜증은 조금 내셨어도, (하하하) 많은 지원을 해주셨어요.

시간이 이렇게나 흘러 드는 생각은, 아이들에게도 나쁜 일도 공유를 하는 것이 좋겠다 생각했어요. 아빠가 정말 많이 아프시기까지 엄마와 아빠는 저희에게 알리지 않으셔서 상상조차 못했었습니다. 대학 때문에 타지에 생활했기도 했고, 거리가 꽤 멀어서 경상도까지 자주 내려가 보지도 못했었습니다. 조금 더 일찍 알았다면, 아빠에게 더 많이 질문했었을 것 같아요. 그럼 아빠의 삶의 지혜와 사랑을 더 알 수 있었을 텐데, 가만히라도 더 옆에 있어 드릴껄. 얼굴이라도 자주 보여드릴껄. 엄마와 대화하며 조금이라도 힘이 되어 드릴껄. 

얼마전, 엄마에게 여쭤봤어요. 간경화가 시작되었을 때, 왜 우리에게 말하지 않았냐고. 엄마도 그때에는 당연히 아빠가 이겨내실 것이라 생각하셔서 타지에 있는 저희에게 알리지 않으셨다고 하시더라고요.

그리고는 고비들이 찾아오고 엄마 혼자 감당해내시느라 저희와 이야기나눌 여유조차 없으셨던 것 같아요. 

아빠가 공무원이셨는데 도청으로 출근을 하시다 고통에 사고가 나서 폐차를 했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상황이 심각하다는 걸 알았던 것 같아요. 하지만 당시엔 멀리서 걱정만 할 뿐, 엄마처럼 돌아가시리라고는 상상조차 못했습니다. 우리 아빠니까. 우리 아빠는 이겨내시고 늘 곁에 계시는 분이라고요. 


그렇게 온실 속 화초처럼 자라다 어려운 일을 겪어낼 때 그래도 기특하게 잘 버텨왔던 것 같아요. 그래도 성인이였기에 그정도로 잘 넘겨왔던 것 같습니다. 나름 참 많이 애쓰며 어른으로 조금씩 성숙해져 갔어요. 아빠는 저희 두 딸이 능동적이고 자립적이였으면 하셨어요. 어렸을 때 할머니집까지 둘이 기차를 타고 오게 해 보기도 하셨고, 씩씩하게 해내는 모습을 좋아하셨어요. 아빠가 키워주신 바람대로 씩씩하게 사회생활을 하다가도 남자친구네 집에 인사드릴 땐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셨다는 말을 어떻게 시작해서 어떻게 말씀을 드려야 하나 늘 고민했었고, 대답을 꺼낼 때면 고스란히 아픔이 드러났어요. 

떠올리기만 해도 눈물이 주룩주룩 흐르는 대상이 저와 엄마, 동생에겐 저희 아빠셨지요. 

아직도 그리워요. 아이들이 이쁜 짓할 때마다 아빠가 참 좋아하셨을 텐데, 아이들이 외할아버지 참 좋아했을 텐데 아빠가 두 팔로 아이들을 앉아주는 모습을 상상하며 20년이 지나도 울먹거리게 됩니다. 

가족은 그런 것 같아요. 힘들 때, 좋을 때 늘 가장 먼저 생각나는 사람. 함께 하고 싶은 사람.


독자님에게 첫째 딸은 어떤 딸이었나요?

독자님에게 아버지는 어떤 아버지셨나요? 

독자님에게 어머니는 어떤 어머니셨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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