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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기반성 Nov 03. 2023

2023년 연말, 떠오르는 고마운 분들

한 아이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

아직 30도를 웃도는 더운 나라 싱가포르이지만, 연말이 다가오고 있네요.

벌써 11월이 시작되었다니 정말 시간의 속도는 무섭습니다. 20년...버터온 회사생활을 돌이켜보니 고마웠던 분들이 떠오르네요.

한 아이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말처럼, 신입 직장생활의 펑크를 매워주시던 어른들이 생각납니다. 그분들 덕분에 제가 20년 동안 어째 저째 사회생활이라는 걸 해나가고 있는 것 같아요.


저는 화장품회사에서 첫 커리어를 시작했어요.

인턴 근무를 하던 곳에서 휴가를 내고 다른 동네에 비염 때문에 병원을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전화를 받았어요. "합격입니다. 언제까지 준비해서 출근해 주세요." 바로 엄마께 전화드리고 너무 신나게 집으로 향하던 그날이 생생합니다. 5년을 다녔는데 그곳에도 참 좋은 분들이 많았어요.

내 애증의 사수부터 여장부 부장님께도 많이 배웠고, 같은 부서 똑 부러지는 언니는 저의 롤모델이었고, 달력 만드는데 날짜 오타로 재 인쇄할 때 혼내지도 않으시고 다 메꿔주셨던 문구 과장님, 인쇄업체 삼광사의 세상 착한 철기씨, 으뜸 사장님, 옥외광고 여사장님, 인품이 훌륭하신 영업부장님들과 존경하는 우리회사 대표님까지 그분들 덕분에 신입 딱지 떼고 하나같이 이쁜 후배들 데리고 5년을 근무했었지요. 그리고 그 5년 사이, 친동생도 같은 회사에 취직해서 1년은 같이 다녔던 것 같아요. 그리고 동생은 그곳에서 쭉 직장생활을 하다 지금은 디자인 고등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고요. 저에게는 친정 같은 회사였답니다.  

다들 너무 보고 싶네요. 이제 너무도 오래 연락이 닿지 않아 다들 어떻게 사시는지, 건강하게 잘 계시는지 궁금하네요.

이렇게 기억에 만나고 싶은 사람들을 독자분들도 그냥 맘에 담아두시고 계신 건가요? 나이가 10년이 더 들면, 만날 기회가 있을까요? 당장 1~2년 안에는 만나질 것 같지 않아, 먼 훗날 우연히라도 뵙고 싶네요.


그렇게 그 회사에서 석사도 시작했는데, 대학교 때 이뻐해 주시던 교수님이 자리를 소개해주셔서 금융기관으로 이직을 했었어요. 참 거기서도 우여곡절이 많았죠. 확실히 공기업이라 정치적인 개입이 애꿎은 직원들에게까지 영향이 가더라고요. 그때 또 한 번 저는 어른이 됩니다. 아... 사회란, 정치란 이런 것이구나.

온실 속 화초, 사회와 정치에 무지했던 저는 지식이 아닌 몸으로 부딪히며 배워갔죠.

많은 걸 얻고 많은 걸 잃은 기간이었는데 거기서도 사람은 남았어요. 많은 직장인들이 자기 회사를 다니는 게 아니니 회사에서는 '쓰임'으로 월급을 대가로 맡은 바 일을 처리해 주지요. 자의든 타의든 '쓰임'을 끝내고 나면 남는 건 그때 만난서 시간을 함께 했던 사람만 남게 된다 말하게 되는 것 같아요.

'그때'라는 부분도 중요한데, 남게 된 그 사람도 나도 그 회사를 떠나 '그때'를 함께 했기에 우리가 만나 또 '그때'의 이야기를 하게 되니까요.

공기업 사람들은 사람들이 다르기보다 사기업과 다른 기업 문화 때문에 스며들어 있는 태도가 생기는 것 같아요. 그게 5년, 10년이 되면 외부에서 볼 때 비슷한 성향으로 느껴지는 그들의 태도. 돈을 다루다 보니 생기는 꼼꼼함. 혼자 소속감 없이 존재하면서 어떻게든 적응하려고 참석했던 동문모임과 여직원 모임들에 참 열심히 쫓아다녔던 것 같아요. 동문모임에도 참 본받고 싶다는 분이 계셨는데 저와는 반대로 차분하시고 무뚝뚝하지만 다정한 여 과장님, 늘 정신은 없으셨고 가벼워 보이셨지만 한마디라도 걸어주시고 인정해 주셨던 허 과장님, 미국으로 시집가버리신 사수였던 여자과장님, 반짝반짝 빛난다고 늘 밝게 인사해 주시던 경비아저씨 모두 그곳에서 고마웠던 분들이세요. 여의도 앞을 지나갈 때면 늘 바라보는 그곳. 다들 안정적으로 그곳에 계시더라고요.


참 저도 회사를 많이 옮겨 다녔네요. 열심히 하고 싶었어요. 그리고 조금씩 나아간다고 생각했고 정말 늘 좋은 분들이 계셨기에 버텨왔고 30대를 꽉 채울 수 있었던 것 같아요.

회사를 다니는 동안에는 하루하루 힘들었는데, 싱가포르로 떠나와서 옛 생각을 하니 회사생활이라는 걸 해본 것 자체가 나에게 참 많은 도움이 된다라는 생각을 해요. 저처럼 인생 1회 차 미생은 좀 많이 굴러서 반들반들해질 필요가 있는데 많은 분들이 눈감고 지켜봐 주셨구나 싶어요.

그런 면에서는 저는 참 회사인복이 있는 것 같아요. 사수분들이 특히나 고맙고, 저는 후배들이 너무너무 예뻤어요. 그들은 나를 어찌 생각할지 돌아봐야겠으나 오지랖퍼인 저에게 후배들은 조금이라도 더 뭔가 알려주고 싶은 대상들이었기에 주제도 안되면서 더 똑똑한 애들한테 오버를 했나 싶지만 다들 너무 이뻤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고 나니 그렇게 이뻐했던 후배들보다 제가 쫓아갔던 선배들이 더 보고 싶네요.


다들 아직도 한참 일하실 시기니 각자의 자리에서 열심히 회사생활을 하고 계실 텐데... 보고 싶습니다.

이렇게 보고 싶다는 걸 잘 모르시겠지만, 응원합니다. 그리고 저를 이만큼 성장하게 기회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 다음편은 대기업 SK와 삼성전자 시절에서 고마운 분들 한번 기록해두려고요~ 기대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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