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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뭇별중한별 Jan 27. 2022

특별한 날을 만들어줘

내가 듣고 싶은 아름다운 말소리

퇴근길 지하철 안에서의 일이다. (먼저 누군지 모를 이 글의 주인공에게 함부로 당신의 말을 듣고 글로 옮기는 것에 대한 사과를 전한다.) 코로나19가 다시 오미크론 변이란 이름으로 대유행을 하는 마당에도 목구멍이 포도청이고 가장의 노릇은 아니할 수 없으니 하는 수 없이 지하철로 출퇴근을 하는 터라 마스크를 쓰고서도 조심에 조심을 거듭하며 살고 있다. 대부분 사정은 비슷할 것이니 코로나 유행 이후 지하철 안은 아무리 사람이 많아도 조용하고 담담한 분위기이다.


그런데 어느 정거장에서부터인가 통화를 하는 듯한 말소리가 들리 시작했고 좌석에 앉아 책을 읽던 나는 고개를 들어 소리 나는 방향을 쳐다보게 되었다. 호기심 반 불쾌함도 반이었다. 일전에 어떤 청년들이 만원 지하철에서 “이렇게 대중교통에 사람이 많이 몰리는데 방역대책이 무슨 소용이냐”며 큰 소리로 떠들어대서 혼자 속말로 ‘그렇게 입을 벌리고 침을 튀기니 바이러스가 옮겨 다니지 않을 재주가 있겠냐’고 투덜거렸을 때 만큼 불쾌하지는 않았으나 그래도 내심 그녀의 통화가 신경 쓰이기는 했다.

나름 적막한 지하철에서 말소리는 그녀의 것뿐이라서 그랬는지 원하지 않아도 그녀의 통화내용이 계속 귓가에 들어왔는데, (절대 엿들으려고 한 것은 아니다) 그녀의 통화상대는 동성에 동년배이며 내용은 부득이하게 잡았던 약속을 취소하는 것으로 추정되었다. 거듭 사과를 하던 그녀가 친구와 다시 약속 날짜를 잡으며 이렇게 말하는 게 아닌가.


0월 00일이 무슨 날인 줄 알아? 아주 특별한 날인데….

……

……

무슨 날이냐면 …

너를 보고 싶은 날.

그러니까 그날이 특별해지도록 나를 만나줘.



세상에…. 나는 그렇게 사랑스러운 만남 약속제의를 들어본 적이 없었다. 아니 그 비슷한 말조차 들어본 적이 없었다. 나는 그 말의 아름다움에 끌려 그녀를 다시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조금 전에 원망하며 바라보았을 때와 다름없는 평범하고 수수한 그녀. 하지만 지금은 그녀의 통화상대인 친구가 나는 몹시도 부러웠다. 나도 그녀의 친구가 되고 싶었다. 나와의 만남을 통해 누군가의 시간이 특별해질 수 있다는 것은 생각만 해도 벅찬 기쁨이고 감동이 아닌가. 그리고 그걸 표현하고 말해줄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더할 나위 없는 축복일 텐데. 처음 바이러스 전파의 근심을 내게 끼치던 그녀는 이제 그런 축복 같은 말이 세상에 있다는 걸 알려준 아름다운 존재가 되어 있었다.

그녀는 지하철에서 내릴 때까지 통화를 멈추지 않았지만 그녀에 대한 나의 원망은 사라진 지 오래였다. 그런 천사의 노래 같은 말소리를 계속 들려준다면 마스크를 벗고 이야기한다고 해도 무슨 상관이랴 싶었다.


특별한 날이니까 나를 만나줘.

나를 만나서 그날을 특별하게 만들어줘.


꼭 써먹어야지. 내가 듣고 싶으니까 나한테도 돌려주도록 먼저 말해줘야지

아내에게도, 아이들에게도, 엄마에게도, 형제들에게도, 친구들에게도, 동료들에게도, 그리고 아직 이름을 알지 못하는 친절한 내 이웃들에게도.


특별한 네가 나를 만나줘. 그래서 나를 행복하게 해 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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