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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뭇별중한별 Jan 27. 2022

글을 계속 쓸래요

나를 위한 글쓰기 선언

    내가 브런치에 글을 써서 올린다는 것은 철저한 비밀이었다. 바로 오늘 오전까지는. 

 

    점심을 먹고 올라온 참이었다. 잔잔한 음악이 반복 재생되는 헤드폰을 쓰고서 오늘 쓸 글감을 끄적거리고 있었는데 갑자기 인기척이 느껴져 돌아보니 오랜 동료 K가 방금 내가 적은 글자들이 떠 있는 워드프로세서 화면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나는 대충 얼버무리려 했으나 하도 K가 추궁을 하였으므로 하는 수 없이 “내가 글을 쓰기 시작했으며 혼자 하다간 또 금방 포기할까 봐 브런치라는 곳에 글을 올리고 있다”라고 고백하고 말았다. 


K는 호기심 가득한 표정으로 나의 브런치 주소를 물었고, 링크를 전달하자 바로 스마트폰으로 확인을 하는 것이 아닌가. 나는 몹시 부끄럽고 민망하여 자리를 피하려고 생각했지만 막상 실행을 하지는 않았다. 내 글을 내  눈앞에서 읽는 첫 독자가 아닌가! 어찌 그의 반응을 듣지 않을 수 있겠느냔 말이다.  나는 두 손을 무릎 위에 공손히 모으고 숙제 검사를 받는 어린아이처럼 그의 반응이 나오기만을 기다렸다.

처음엔 미소가 가득하던 K의 표정은 차츰 굳어져서 어느덧 40대 능구렁이의 사회적 미소만이 입가에 남아있었다. 마침내 K의 입이 떨어졌다.

“이거… 몇 명이나 봐? 많이 안 보지?”


    나는 뭐라 할 말이 없어서 가만히 있었다. 그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바람이나 쐬러 나가자고 했다. 산책을 나가서 K는 이렇게 이야기를 해줬다.

“주제도 없잖아. 톤도 일정하지 않고. 어떤 글은 감정만 있고, 어떤 글은 교훈을 가르치려고만 하고,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건지, 대상으로 하는 독자들이 누구인지도 모르겠고. 매일 타겟 유저층이 누군지 고민하면서 일하는 사람이 왜 그래? 이건 심하게 이야기하면 그냥 일기야. 그런 건 그냥 일기장에 쓰지 그랬어. ”



    K와의 산책에서 돌아와 내가 발행한 글들을 다 읽어보았다. 사실 자기혐오에 빠질 것 같아 발행을 하면 다시 읽지를 않았었는데, 역시 읽어보니 아니나 다를까였다. K의 말처럼 주제도 없고 톤도 없는 글이었다. 주제넘게 가르치려고 들기만 하는 글도 있었고, 내 감상에 취해 무슨 말을 하는 건지 알 수 없는 글도 있었다. 나도 모르게 혼잣말이 나왔다. 

“참 어디서 이런 용기가 나서…”


하지만 속에선 다른 생각도 꿈틀거리며 이렇게 반발을 하는 것이다. 

'쓰는 동안은 즐겁지 않았어? 새롭지 않았냐고?!' 


그렇다. 글을 쓰려는 결심을 했을 때는 무엇을 써야 할지 하나도 생각나지 않아 겁도 나고 괴로웠었다. 살면서 느껴온 것들이나 가지고 있던 생각들을 글을 통해 이야기하고 싶다는 욕망일 뿐이라서, 어떤 주제로 이야기할지, 누구에게 이야기할 지도 정하지 않았던 것이었다. 하지만 그냥 막 썼다. 워낙 훈계하길 좋아하니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한 글, 내 얘길 들어보라는 꼰대 같은 글을 써댔던 것이다.


그런데 시간이 갈수록 매일 글감을 생각하고 그간 묵혀왔던 것들을 정리하다 보니 점점 생각이 내 안으로 파고드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동안 들여다볼 생각을 못했던 나, 나름 괜찮다고 생각했던 내 안이 이렇구나라는 걸 알게 되는 순간은 놀라움의 연속이었다. 



    나는 원래 옛날 일을 잘 기억하지 못한다. 고등학교 때 매일 붙어서 농구도 하고 그러던 친구를 길에서 만났는데 얼굴도, 이름도 몰라 당황했을 정도로 말이다. 그런데, 그런 내가 글을 쓰면서 내 과거를 돌아보고 있는 것이다. 그랬더니 까맣게 잊고 있었던 예전의 일들과 그날의 감정들, 그리고 그것들이  현재의 내 모습을 어떻게 만들어 왔는지가 머릿속에 마구 떠올랐다. 나는 이제 나의 진짜 모습이 무엇인지 , 나는 못 보고 다른 사람은 보았던 내 모습은 또 무엇이 있었는지가 몹시도 궁금해졌다.


그리고 또 그 안에는 상처받은 내가 있었다. 그땐 ‘피가 좀 나는구나, 그런가 보다’ 싶었던 것들이 이제와 돌아보면 엄청난 출혈이었던 것을 발견하면 나는 놀랍기도 하고 안쓰럽기도 하면서 그때 피 흘리던 곳을 새삼 어루만져 보게 되는 것이다. 어떤 것은 아문 것도 있었고, 어떤 것은 크게 흉터가 남은 것도 있었고,  또 어떤 것은 아직도 피를 흘리고 있었다. 나는 아직 피가 흐르는데도 여전히 그걸 모르고 사는 내 모습이 거듭거듭 놀라웠다. 


무엇보다 나는 사람들을 진심으로 대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허위의 껍데기로 나를 둘러싸서 웅크리고 보호하느라 정신이 없어서 내 진심을 보여주고 다른 이를 진심을 받아들이는데 엄청나게 서툴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다른 이들이 나를 밀쳐내고 멀리하는 게 아니라 내가 그들에게 진심을 숨겼다는 것을 말이다. 



    이 모든 게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알게 된 것이었다. 고작 1달 남짓한 시간에. 그러므로 나는 글쓰기를 멈출 생각이 없다. 비록 서툴고 형편없으며, 주제도 없고 대상도 불명확하지만 그래도 나는 쓸 것이다. 일기에 불과한 글이라 해도 나의 진 면목을 바라볼 수 있게 해 주고, 상처를 치유하는 도구가 된다면 나는 쓸 것이다. 이제부터는 누군가를 위한 훈계와 교훈은 집어치우고 나를 위한 위로의 글을 쓸 것이다.


 부끄럽고 민망하지만 이게 나라는 걸 보여주기 위해 주변 모두에게도 내가 브런치에 글을 쓴다는 것도 알릴 생각이다. 내가 그들을 사랑하고 아낀다는 것이 나의 글쓰기에 어쩔 수 없이 묻어 나올 것이므로 내 글을 통해 사랑을 고백할 것이다. 그들이 내 글을 통하여 잠시라도 행복해지면 좋겠다. 묻었던 옛 일들이나 몰랐던 나의 모습 때문에 아프거나 슬프기도 하겠지만 결국 나의 말은 그들을 사랑한다는 것일 것이므로.


그리고 단 한 명의 독자라도 내 진심을 봐주고 공감해 준다면 나는 글쓰기에 보람을 느낄 것이다. 앞으로도 주제가 없을지도 모른다. 계속 대상이 불분명할 것이다. 그렇지만 나는 쓸 것이다. 


이제부터 진짜 나를 위한 글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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