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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운설 Aug 03. 2022

[서평, 리뷰] 조금 일찍 나선 길

새로운 인생길을 위한 부엔 까미노

  21년 전 ‘Yes도 No도 소신 있게’라는 카피의 광고가 대히트를 친 적이 있다. 남들 모두 Yes를 외치거나 No를 주장하더라도 소신 있게 반대하자는 내용이다. 선행 학습과 엄마의 철저한 관리가 대학입시의 성패를 가름하는 교육 현실에서 중학 1학년이 학교 울타리를 박차고 나오기란 생각하기 힘든 일이다. 무엇보다 아이가 자퇴를 절실히 원해도 부모가 이를 흔쾌히 수용하기가 매우 어렵기 때문이다. 그런데 작가 태윤은 중학 1학년 때 미련 없이 학교를 나왔다. 자유롭게 놀고 배우고 싶다는 이유에서다.


  평소 산티아고 순례 서적에 관심이 많기도 했지만 작가 이력에 큰 호기심을 느꼈다. 14 살에 자퇴를 하고 2 년 만에 대입 검정고시에 합격한 다음, 16 살에 걷는 산티아고라니. 평범함을 거부한 어린 작가가 까미노에서 체험하고 느낀 감상이 어떤 것일지 매우 궁금했다. 작가가 담담하게 내려갔을 여행기를 읽으며 그 감정들을 공유하고 싶었다. 그리고 책을 덮은 후 작가의 용기 있는 선택이 옳았음을 알 수 있었다. 또한 앞으로 펼쳐질 그녀의 인생길에 비록 험한 난관이 있을지라도 쉽게 굴복하는 대신 엄마의 뒷모습을 기억하며 묵묵히 한 걸음씩 나아갈 거라 굳게 믿는다.


  태윤 작가의 ‘조금 일찍 나선 길’은 엄마와 함께 나선 산티아고 순례기이다. 여느 순례 기행을 다룬 책처럼 순례 일정을 따라 도보 여행에서 보고, 느끼고, 순례객들과 부대끼며 나눈 대화들을 열여섯 감성으로 차분히 풀어냈다. 별도로 정리되진 않았지만 본문 중간중간에 프랑스길에 나설 때 유용한 정보나 팁들이 꽤 적혀 있다. 순례를 계획 중인 독자들에게 꽤 도움이 될 듯하다. 내년 봄 프랑스길을 걸으려는 나 역시 참고할 사항들을 노트에 기록해두었다.

 

  작가는 살면서 산티아고에 나서기 전까지 별을 제대로 본 적이 한 번도 없다 했다.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 모른다. 입시 부담의 중압에 시달릴 청소년들이 하늘의 별을 보며 꿈과 희망을 그리기가 쉽지 않다. 진학이란 당면한 목표가 박혀 있을 땅으로만 시선이 쏠릴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까미노를 걷고 나서야 밤하늘에 찬란한 별들을 제대로 바라보았다고 고백한다. 이름도 모르고 아무것도 모르니 순례객들의 특징적인 걸 잡아서 별명을 짓는 재치 있고 발랄한 소녀에게 산티아고 순례길은 이렇듯 무거운 마음과 가벼운 짐으로 시작되었다.


  작가와 엄마는 이 길을 걸을 수 있다는 걸 스스로에게 보여주고 싶어 순례에 나섰다. 작가는 자유롭게 배우고 싶었으나 자퇴생의 성공이 결국 입시 성공에 달려 있다는 결론에 이르자 조바심이 났다. 뚜렷하게 하고 싶은 목표가 명확지 않은 상태에서 입시가 부담으로 다가왔다. 어느 날 엄마에게 이를 털어놓으며 펑펑 울었고 두어 달 뒤에 그녀들이 산티아고에 나선 배경이기도 했다. 학교 울타리 밖에 있던 작가에게 산티아고란 단순한 도피처였지만 그 길을 걸으면서 처음으로 세상을 마주하는 계기이기도 했다. 온전히 자신의 힘으로 마무리했으니 성취한 일이 하나 더 생긴 셈이다.


  7년 전 도보로 국토 종주를 했던 선배 말로는 일주일 정도 걸어야 몸이 걷는데 적응한단다. 작가 역시 순례길 초반부에 몸이 무거워 힘들어했다. 처지는 페이스를 지켜준 이들은 엄마와 순례길에서 만난 동행자들이다. 작가는 그들에게 맞춰서 조금 덜 쉬며 걸었고 그들은 그녀에 맞춰 좀 더 쉬어갔다. 야고보를 기리는 이 길은 함께 가서 좋은 길이다. ‘가로질러 들판 산이라면 어기영차 넘어주고 고개 넘어 마을에서 목마르면 쉬었다 갈 길이다.’(김남주 詩).


  잠시 목표를 잃고 방황하던 작가를 지켜보던 엄마의 심정은 어땠을까? 유추하기로 엄마 김 항심 작가는 쿨한 성격 같다. 무던한 그녀라도 딸의 울음에 마음이 무너졌던 듯하다. 순례길에서 만난 크리스틴에게 엄마는 이렇게 말한다. “내가 나중에 죽고 이 세상에 없을 때 내 딸이 내 뒷모습을 기억해줬으면 해서요. 우리 딸이 삶을 살아가면서 어렵고 힘든 순간을 만날 때 이 길을 걷던 내 모습을 기억하면서 삶의 원동력을 다시 찾았으면 좋겠어요.” 산티아고 길을 함께 걸으며 엄마와 딸은 서로서로 더 이해하고 마음과 마음이 더욱 단단히 연결되었다.


  근자감이 충만한 작가는 다부진 체격에 다이어트를 고민하는 또래 아이들만큼 감수성도 충만하다. 그러나 학교 밖 2 년의 세월을 거치며 한층 더 단단하게 성장한 것 같다. 급작스레 결정된 탓에 사전 준비가 미흡하여 유적과 명소에 대한 지식이 부족했다고 자평한다. 그래서 걷는 도중에 감흥이 덜했지만 “내가 지나친 것들은 나한테 그 정도의 감흥만 있었던 거고 내게 인상 깊게 기억되는 것은 그것의 유명세와 상관없이 나한테 그만큼의 가치가 있었던 것”이라며 자기 주관을 강하게 드러내었다. 작가의 이러한 견해는 단지 개인적 주관을 넘어서는 일반성과 사회성을 담아내고 있다. 오르막 길에 애써 고생하는 인체 기관에 비해 그저 힘든 오름길이라며 한탄만 하는 ‘눈’을 두고 보통은 비우호적인 해석을 한다. 그러나 작가는 ‘눈’의 역할은 보는 것이니 각자의 일을 열심히 하는데도 실질적인 도움이 안 된다고 인정을 안 해주는 것은 너무하다며 ‘눈’을 옹호한다.


  소수자 혹은 사회적 약자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이다. 순례길 와중에 혐오주의자들의 낙서가 꽤 심각한데 여성주의와 동성애에 노골적으로 반대하는 낙서를 없애거나 절묘하게 바꿔놓은 사람들의 흔적에서 작가도 힘을 보탰다. ‘No Feminism’을 ‘Now Feminism’으로 재치 있게 돌려놓는다. “지금까지 너무 당연했던 것을 당연하지 않게 바꾸는 데는 큰 노력이 필요하다”면서 일상생활에서 시민들의 자각과 동참이란 깨어있는 시민들의 조직화된 힘이야말로 시대와 역사가 진보하는 원동력임을 자각한다. 산티아고 순례길 완주 증명서를 받으려면 최소 100km 이상 걸어야 한다. 그래서인지 Sarria에서 순례를 시작하는 이들도 상당하다. 이를 비난하는 문장이 있다. “Jesus didn’t start in Sarria.” 동키를 보내고 숙박지를 예약하는 것이 무슨 순례냐며 힐난하는 이들에 대해 작가는 당당하게 의견을 피력한다. “종교적 의미의 순례가 아닌 도보 여행하듯 걸었지만 현대 사회의 이기에 순례 환경이 영향을 받는 만큼 순례길은 존재하고 이 길을 걷는 수많은 사람들이 그 존재를 증명한다. 중요한 것은 길 자체가 아니라 걷는 우리에게 있다. 까미노는 오롯이 걷는 사람의 것이다.” 그녀는 길을 온전히 누리고, 즐기고, 무언가를 배웠다.


  작가가 순례에 나선 때가 2019년이었을 것이다. 그로부터 3년이 흘렀으니 19살, 대입을 목전에 둘 나이다. 혼자 입시를 준비하기가 만만치 않았을 거라 여기지만 책에서 드러난 작가의 자질과 소양에 비추어 보면 잘 이겨내고 있을 것이다.  까미노 말미에 어느 현지인이 순례객에게 해준 말이 매우 인상적이다. “이 까미노는 끝났지만 앞으로 당신 인생에 다른 까미노들이 있을 거예요. 이제 그 길들의 시작이니까. 새로운 길을 위해 부엔 까미노.”  작가는 책의 서문에서 게오르그 루카치의 ‘길이 시작되자 여행이 끝났다’는 말을 인용했다. 이 책을 다 읽고 나니 순례 여행이 끝나자 그녀에게 이내 새로운 길이 펼쳐져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길을 내 앞에 놓여 있다. 여기가 너의 장소, 너의 시간이다. 여기서 네 할 일을 하라’ 던 故 김남주 시인의 말처럼 작가의 앞에 놓인 ‘표지석도 화살표도 없는 냉정한 여행지로 향하는 까미노’를 힘차게 걷고 있을 것이다. 언제나 그녀 앞에 엄마의 뒷모습이 놓여 있을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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