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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양 Oct 12. 2022

말 할 수 없는 비밀

오늘은 여기까지 걸을게요 

가끔 히프코 할아버지와 문자를 주고 받는다. 보통 하루를 시작 할 때, 각자가 걷고 있는 길을 찍은 사진이나 커피나 음식 사진들. 그리고 오늘은 어느 마을에 있다는 간단한 소식 정도다. 그리고 문자는 끊어진다. 할아버지 말고도 이렇게 연락을 주고 받는 사람이 한 명 더 있다. '마멘'이라는 기부제 숙소에서 봉사활동을 하던 사람이다. 그녀는 그라나다 지방에 살고 있는데 순례길을 걷다가 그곳에서 호스피탈로를 돕고 있었다. 토산토스라는 마을에서 만난 우리는 그날 단 하루에 깊은 친밀감을 공유하고 순례길과 스페인에 대한 나의 애정을 과시하면서 친해지게 되었다. 내가 하는 스페인어의 발음이 좋다고 하면서 아마 다음에는 더 많은 단어들을 말 할 수 있을거라고 격려까지 해주었다. 


여행에서 만난 사람들과 짧은 대화, 안부를 주고 받는 이 일상이 나에게는 벅차고 의미있는 시간들이다. 하지만 이것도 영원하지 않을거라는 걸 잘 안다. 한국으로 돌아가면 우리들의 시차가 그것을 어렵게 할 것이다. 히프코 할아버지는 나와는 전혀 다른 계절에, 다른 시간에 속해 할아버지의 삶을 살아가겠지. 할아버지는 집으로 돌아가면 곧 여름이 올 것이라고 말했다. 



오늘은 산티아고 대성당에 도착하는 날이다. 길을 걸은지도 이십 오일이 흘렀다. 아쉽게도 트리아카스텔라 이후로는 계속 흐리고 가끔 비가 내렸다. 우비가 없어서 가랑비는 맞고 다녔고 그러다 바람이 불면 옷은 말라 있었다. 오늘 나는 가을방학의 가을방학이라는 노래를 들으며 축축한 길을 걸었다. 저만치에 있는 길은 희뿌연 안개에 가려있고 바람이 불면 살짝 떨리는 정도의 온도였다. 귓가에 흘러드는 가을방학의 고요한 목소리와 담담한 가삿말에 괜히 마음이 울렁였다. 









그래서 이 길을 시작 할 때 내가 궁금해했던 '이 길은 나에게 어떤 의미가 있을까' 라는 질문에 답을 할 수 있을까? 혹은 '왜 걷는 것일까?' 라는 질문에는? 



대답이 어려워 굳이 대답해야 하느냐고 스스로에게 다그치기도 한다. 인생에 답은 없는거라 외면하기도 한다. 그런데 분명한 것은 그저 좋으니 걷고, 왜 하필 산티아고냐 물으면 이곳의 자연이 좋아서라고 말 할 수 있겠다. 스페인 대신에 제주의 올레길을 걸을 수도 있고 지리산 둘레길을 걸을 수도 있지만 한국에는 끝없이 펼쳐진 밀밭이 없고 포도밭이 없고 저렴한 가격의 과일도 없고 파차란이 없고 뽈뽀가 없다. 산티아고 순례길은 이 모든 것의 총합인데 하나라도 빠지면 의미가 없어지는 것이다. 그리고 분명히 이 길은 말 할 수 없는 매력이 있다. 모험 같기도 하고 쉽게 경험 할 수 없는 것들 낯선 사람들과 매일 얼굴을 마주하며 쌓이는 연대감, 평소에는 몰랐던 나의 모습을 발견하기도 한다. 다양한 순간과 다양한 선택을 하면서 마주치는 일련의 사건들이 나를 성장하게 한다. 결코 이 길은 쉽게 생각하고 쉽게 걸을 수 있는 길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오늘은 비를 꽤 많이 맞았다. 성당에 다가갈수록 사람이 부쩍 많아졌다. 평소에는 몇 키로를 혼자 걸었는데 이번에는 백 미터마다 사람이 보였다. 



너무나 큰 산티아고 콤포스텔라. 산티아고에 도착했다는 이정표가 보인지 한참 지났는데도 성당은 더 멀게만 느껴졌다. 이젠 배낭을 멘 사람은 보이지 않고 정장을 입고 걸어가는 사람, 지팡이를 짚고 집으로 들어가는 사람, 자동차를 운전하는 사람, 강아지를 산책 시키는 사람이 보였다. 사람들과 오고가며 입버릇처럼 하던 인삿말 '부엔까미노'는 온데간데 사라지고 없었다. 이 어색한 분위기. 모든 순례자들이 느끼는 것이 맞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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