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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나 김선자 Mar 23. 2024

인도여행

7. 탄자부르에 있는 힌두 사원과 박물관



타밀나두(Tamil Nadu) 주의 탄자부르(Thanjavur), 또는 탄조레(Tanjore)라 불리는 이 작은 도시에 인도에서 가장 큰 힌두사원 중 하나인 브리하디스바라(Brihadīśvara, 건축자의 이름을 따서 라자라제쉬바람 Râjarâjeśvaram 이라고도 함) 사원이 있다. 그리고 반대편으로 번화가를 갓 지나면 왕궁박물관이 나온다.

이 소도시를 찾는 수많은 순례자와 마찬가지로 우리 또한 이 사원과 훌륭한 조각상을 보려고 먼 길을 달려왔던 것이다. 역사적 장소에서 고귀한 예술품을 직접 본다는 것은 특별한 감동과 더불어 높이 수반된 이해력으로 기억 속 깊게 새겨지는 법이다. 그 단초가 여기에 있다.

나는 그동안 파리에 있는 기메 박물관을 드나들면서 많은 인도 조각품들을 보아왔다. 그때마다 시대적, 지역적 차이나 구별은커녕 머릿속에 쏙 들어오지도 않았었다. 모두가 유사하게만 보였기 때문이다. 촐라왕조시대의 작품을 보면서도 그 독특하고 구체적인 차이를 알지 못했고, 명칭조차 낯설어 뭉뚱그려 좋고 나쁨만을 분별했을 뿐이었다.

그런데 남인도를 여행한 후, 파리 기메 박물관의 작품들이 달리 보였다. 보다 명확히 파악되면서 친숙하게 와닿았다. 그동안은 왜 잘 보이지 않았는지 의문스러울 정도였고, 그리고는 또 다른 작품들까지 특별히 흥미를 갖게 되었다. 언제, 어디서, 발생, 제작되었는지 지도를 펼쳐 그 지역을 찾아보기도, 직접 찾아가 보고픈 마음까지 들었다. 나 스스로가 생각해도 놀랄 만큼 작품에 대한 이해력은 물론 투명한 시각차를 느꼈다.

이것이야말로 여행에서 얻는 역사적, 문화적 지식이며, 시각의 폭을 넓히고 새로운 세계를 확장하는 것이다. 여기에 여행하는 목적이 있고, 그 이유와 까닭이 있는 것이다. 경험이 주는 힘이다.


파리 기메 박물관에 있는 인도 촐라왕조시대의 청동상 (11세기)
파리 기메 박물관에 있는 인도의 라자스탄 주의 조각상 (10세기)


왕궁박물관에서 우리는 그 어느 시대보다 촐라 왕조시대 조각상들의 예술적 가치가 월등함을 알 수 있었다. 미적 극치를 이룬다. 이것은 파리 기메 박물관에서도 똑같이 느낄 수 있다.

박물관은 관람객이 많지 않아 내 집같이 천천히 작품을 볼 수 있어 좋았고, 여유로움이 있어 더없이 편안했다. 여기저기, 구석구석을 기웃거리며 돌아다녔다.

잠깐 시선을 돌려 왕궁박물관 모습을 살펴보면은 우리가 생각하는 말끔하게 먼지 한 톨 없이 잘 정리정돈된 박물관을 떠올리면 큰 오산이다. 고풍스러운 건물, 그러나 페인트칠이 낡아 벗겨져 약간은 방치된 듯, 또는 여기저기 공사가 중단된 모습이었고, 그 역시 작품을 보는 데는 큰 불편함이 없었을뿐더러 오히려 인간적이었다. 청동조각품들은 유리 진열장 속에 허술하게나마 전시되었으나, 석조각상들은 평범하게 테라스의 먼지 쌓인 받침대 위에 놓여 자연조명을 받고 있었다. 석조상이라 손상에 대한 우려가 적기 때문에? 그럼에도 유구한 역사를 품고 있는 예술적 가치만큼은 분명했다. 따라서 그 자연스러운 분위기가 참 좋았다. 자연조명을 받아 평온했고, 작위적이지 않아 좋았다. 겉치레 없는 타물사람들의 순박함을 보는 것도 같았다. 그런데 남편이 처음 왔던 1989년도에는 이보다 더 자유분방해서 멋스러웠단다. 그 당시 모습의 작품들이 지금보다 훨씬 더 강렬하게 인상적이었단다. 왜 아니겠는가! <자유>와 <자연>이 동반된 아름다움 앞에 감히 그 무엇이 능가할 수 있겠는가?

 

브리하디스바라(Brihadīśvara)사원은 마두라이 스리미낙시 사원보다 훨씬 긴 역사를 지닌, 11세기때 세워져, 촐라 왕조의 번성과 권력을 보여준다. 미낙시 사원은 도심에서 사방 높은 고푸람을 따라 굳게 쌓인 외곽으로 닫힌 느낌이었다면, 이 사원은 도심을 약간 벗어난 곳에서 사방 직사각형 울타리에 싸여 있음에도 불구하고 열린 느낌이다. 출입구의 나지막하고 고매한 고푸람과 함께 드넓게 조성된 내부 뜰, 그 덕분에 담장이 낮아 보이면서 확 트인 기분이었고, 하늘과 맞닿아 시원하면서도 자유롭고 평화로웠다. 또 마두라이 사원의 채색된 고푸람과는 반대로 원석의 붉은 화강암이 강하면서도 자연스럽고, 섬세한 세련미와 함께 뛰어난 예술성을 가진다.    

사원으로 들어가는 출입구 고푸람은 웅장하거나 거대하지는 않아도 멋과 숭고한 우아함이 있었다. 안정적인 구도가 가부좌를 틀고 좌선하는 모습 같기도, 도포자락을 펼쳐 앉은 선비의 품격도 느껴졌다. 참으로 고고하고 아름다웠다. 그 앞에 순례자들의 발걸음 따라 곡선을 그으며 팔랑대던 찬란한 색상의 의상들, 어깨에서 사르르 흘러내릴 듯한 모슬린 비단사리가 가볍게 리본처럼 나풀거리던 모습은, 마치 나타하자 시바 신을 모시던 무용수들 같았다. 그 청아한 풍경을 보고 있자면 덩달아 내 마음이 춤을 춘다. 발걸음도 가볍다.  

입구를 지나 안으로 들어가서 신발을 벗어 보관소에 맡긴다. 검열 없이 출입도 자유롭다. 그리고 명상을 하듯이 널따란 뜰을 유유히 돌면서 자유롭게 사원을 관람한다. 따끔거리는 발바닥도 무시한 채 순례자들을 따라 어느 성소로 들어갔다. 까만 석조상들로 둘러싸인 어두컴컴한 공간 중앙에 힌두승려가 조각상처럼 서 있다. 차례대로 다가온 순례자들의 미간에다 빈디를 찍어주는 의식을 치른다. 얼떨결에 나도 하얀 빈디를 받았다. 이어 빈디값을 치루라는 시늉에 '이크 잘못 들어왔구나' 내 미처 준비하지 못해 머쓱한 기분이 되어 나왔다.

 

타밀 종교 건축 양식의 모범적인 성과를 이룬 이 사원은 라자라자 촐라(RajaRaja Chola) 황제에 의해 1003년에서 1010년 사이에 지어져 시바에게 헌정된 사원이다. 촐라 왕조의 권력을 보여주며, 왕실의 종교의식에 사용되었단다. 사원은 높이가 81톤에 달하는 단일체 블록으로 건축되었고, 13층짜리 비마나와 66m 높이의 꼭대기에 구리 냄비(kalash)가 설치되어 있으며, 둘레가 270m x 140m 크기의 이중 직사각형 울타리 내부에 위치한다. 이 울타리는 아마도 16세기에 조영 되었다 추정한다.

출입문 고푸람은 대부분의 드라비다 스타일 사원과는 달리 본당의 비마나보다 훨씬 낮은 30m 높이다. 사원은 5m의 높다란 기단(Jagati) 위에 자리 잡고 있으며, 얕은 돋을새김과 춤추는 시바 조각상으로 덮여 있다. 사원 전체는 이 지역의 풍부한 암석인 화강암으로 지어졌다.

현관(안타랄라) 양쪽에 계단이 있고 주요 성역은 비마나(Vimana)로 덮여 구성되었다. 여기 수많은 기둥으로 이루어진 두 개의 방이 있는데, 신자들의 모임이나 공공 의식을 위해 사용되었단다. 울타리 안에는 난디 황소를 위한 누각과 보조 사원도 있다. 각 신들의 주요 조각상마다 정제된 버터기름을 발라 더더욱 까맣게 반들거리는 모습에다 화사한 꽃들과 사리로 장식되어 가히 엄숙하고도 성스러웠다.


여기서 내가 참 인상적으로 본 것은 남성 생식기 모양의 까만 돌로 조각된 링가(linga/링감, lingam)다. 그 위에 올려진 꽃송이. 수많은 링가를 전시한 긴 방과 인도에서 가장 큰 3.7m 높이의 링감이 있다. 이것은 인도 남부지방에서, 나타하자 시바의 모습을 비유한, 춤을 추는 훌륭한 사람이라 불렀단다.

이처럼 남인도 힌두사원 조각상들의 특징을 보면 그지없이 유쾌하다. 춤과 함께 환희가 넘치는 축제의 분위기. 자유롭고 율동적인 몸짓과 관능적이고도 매력적인 볼륨감, 곡선미, 그러나 상스럽거나 비속함은 없다. 고착됨이 없고, 건조하거나 딱딱한 느낌도 아니다. 유연하면서도 부드러운 기운이 가득 차다. 인도의 고혹적인 전통 춤처럼. 살아있는 아름다움이다.

사원 외부는 물론 내부에도 수많은 조각품으로 덮여 있는데 일부는 뒤늦게 마라티 시대에 추가된 것이고, 외벽에는 인도 고전 춤인 바라타나티암(Bharatanatyam)의 108가지 포즈를 담은 조각품이란다. 이 모두 자세히 살펴볼 수는 없었다. 다만 그 공간에 함께 숨 쉬며 있다는 사실만으로 충분했다.

이 브리하디스바라(Brihadisvara) 사원은 "촐라의 살아있는 위대한 사원 "이란 제목으로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에 분류된다.


이 아름답고 평화로운 사원과는 정 반대로 중심가 상업지역은 그 규모는 작으나 밤낮으로 붐볐고, 길가 곳곳에 설치된 공용스피커에서 귀청이 찢기도록 전파되는 프로파간다 고성, 이것은 소음을 넘어 대중들의 사고까지 망각하게 했다. 마치 사회주의 혁명 때나 들음직한 환청. 개발도상국의 불청객 같았다.

타물인들의 순박한 인정을 가슴속에 묻고, 그리고 추억 속에 담아서 우리는 이 작은 도시를 떠났다.

포르투갈의 옛 영광이었던 동양의 리스본, 인도 남서쪽 고아 주로 향해서...



출입구의 고푸람
출입구 모습
사원의 모습
사원의 모습
사원 내부의 작품들
링가(링감)
갤러리가 있는 외곽 울타리
왕궁 박물관
왕궁 박물관의 별관
왕궁 박물관에 전시된 석조상
왕궁 박물관에 전시된 청동조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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