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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나 김선자 Aug 24. 2024

인도여행

12. 바다미 시에서



찰나적 달콤한 낮잠. 아침 일찍부터 발버둥 치며 하루종일 길 위에서 보냈던 보상의 꿀잠이다.

고단했던 하루의 흔적을 씻어내고 바람을 쐬러 밖으로 나갔다. 해는 보이지 않으나 날이 아직 저물지도 않았다. 근처를 한 바퀴 대충 돌면서 동네 분위기를 파악한 뒤 저녁식사를 하러 호텔 카운터 옆에 있는 식당으로 갔다.  

호텔식당이라 해서 거창하게 호화스러운 것을 기대하면 안 된다.

그렇다고 처음부터 기대를 아니한 것도, 아주 나쁘다는 뜻도 아니다. 다만 우리에게 주어진 선택의 여지가 너무나 좁다 보니 끼니마다 같은 음식만을 여러 날 반복해 먹는다는 것이 괴로웠을 뿐이다.

그리고 우리는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서라도 이 호텔에다 의지할 수밖에 없다는 걸 깨닫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여길 벗어나면 숙식을 해결할 곳이 딱히 없었다. 물론 전혀 없는 것은 아니겠지만, 요컨대 이 깡촌에서 우리 입맛에 맞는 곳을 찾기가 쉽지 않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한 끼 식사는 미식가들의 숭고한 의식도, 정신을 위한 원료도 아닌 오직 여행을 이어가기 위한 기본적인 연료였다.

조금 나은 호텔과 그에 딸린 식당도 있다지만 외곽에 있어 택시를 타야 했고, 그만큼 가치가 있을지도 의문이었다. 물론 한 끼를 위해 그처럼 수선을 피우며 부지런을 떨 여유도 없었다. 애당초 맛집을 찾아온 것도 아니지 않은가! 그렇다고 아무 식당이나 들어가기도 솔직이 두려웠다. 왜냐면 길거리 일반 음식점은 보기만 해도 고개가 절레절레 흔들릴 만큼 빨간 옷을 입힌 음식이 태반이라 비단결 같이 부드러운 내 위장이 버터 낼지 장담할 수가 없었다. 어쩌면 입이 아주 까다롭다 할지 몰라도 내 입맛은 무엇이든지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있지만 위장은 달랐다. 요컨대 민감하다 못해 섬세하다. 한국인 입맛의 정체성을 잃어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가히 의미심장하다.

낮동안 유적지를 돌아다니다 보면 마땅한 식당을 찾지 못해(식당을 찾는 일도 큰일 중 하나라) 식사를 건너뛰기가 일쑤였고, 아무리 순례자가 많은 유적지라도 근처 식당들이 즐비한 풍경은 절대 아니다. 고작해야 길바닥 좌판에 음료와 과일 몇 개 놓고 파는 것이 전부였다. 그래서인지 사실상 유적지가 더 아름답게 빛났다. 관광촌의 잡다한 상업적인 모습이 아니라 삶의 그 자체였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는 자연스레 하루 두 끼만 먹게 되었고, 차라리 가방에 과일을 넣어 다니며 밥대신 끼니로 해결했다. 솔직이 날씨가 더워서인지 삼시 세끼 챙겨 먹는 것도 버거웠고, 딱히 배도 고프지 않았다. 차라리 따뜻한 짜이 한잔으로 한낮의 피로를 풀었다. 짜이를 사랑하는 인도인들처럼. 그들을 이해하면서. 그리고 살갗이 까맣게 변색되도록 분출되는 뜨거운 무공해 햇살이라는 비타민을 무한정 흡수했다.

본의 아니게 다이어트가 되어 몸무게도 줄고 뱃살도 쑥 들어갔다. 흡족했다.


그렇게 아침저녁으로 드나들던 식당에서 직원부터 홀 안을 가득 메운 손님들까지 우리의 존재는 사원 주변을 맴돌던 원숭이보다 더 큰 흥밋거리였고, 우리의 일거족일투수는 그들의 호기심 어린 관심의 대상이었다. 당연히 이방인이었다. 외국인이라고는 우리 밖에 없는 곳에서 지극히 감수해야 할 부분이다. 인도에서 중, 상류 계층인 이들은 교육을 받은 자존감인지, 자부심인지, 자긍심인지 함부로 막대 놓고 우리를 쳐다보지는 않아도, 오히려 힐끔거리는 곁눈짓이 그들의 자만처럼 보여 신경을 거슬리게도, 때론 피곤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차라리 대놓고 본다면 눈치야 없어도 그 솔직함이 순박해서 좋으련만. 그럼에도 호기심 어린 눈동자만큼은 순수함을 담고 있어 위안이 되었다.

하지만 그들 못지않게 내게도 그들의 행동과 표정, 태도 하나하나 관찰하는 재미를 주었다. 그들은 대체로 할머니, 할아버지부터 부모, 손자, 손녀까지 대가족 단위로 움직였으며, 아마도 축제기간이라 사원을 찾아 순례에 나선 여행객들로 보였다. 왜 그런가 하면 아침저녁 그토록 벅적대든 호텔과 식당이 삼사일이 지나자 모두 약속이라도 한 듯 떠나버려 한산하다 못해 썰렁한 느낌이 들 정도였다.

그리고는 첫날 식당의 한 남성직원이 지나칠 정도로 친절했다. 재비 같은 콧수염과 날씬한 몸매에 언제나 하얀 셔츠를 바지춤에 찔러 넣고 허리띠로 단단히 졸라 맨 그 날렵한 모습이 보기만 해도 코믹했다. 처음에는 우리가 특별한 대우를 받는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틀 후에 그 친절함 속에 팁을 전제로 한 속뜻이 있었음을 깨달았다. 요컨대 친절함이 절대 공짜 서비스가 아니었던 것이다. 인도의 대도시에서는 일반적이지 않던 팁 문화가 이 깡촌에서는 마치 드러내 놓고 요청하는 꼴이었다. 시골인심이 무섭다는 말과 상통되는 지점이다.  

사실 첫날에 우리는 팁을 놓지 않았다. 우리에게 팁이란 의무사항이 아닌 고마움과 예의상의 징표였다. 미국처럼 당연시된 팁 문화와 달리 한국을 포함한 프랑스나 유럽에서는 의무사항이 아니다. 물론 전혀 없는 것도 아니지만, 개인의사에 따라 선의나 감사하는 일종의 예의적 표시로써 그에 따른 행위일 뿐이다. 요컨대 팁을 꼭 내야 할 의무가 없다는 뜻이다.

사실 우리는 하루이틀 머물 것도 아닐뿐더러, 어제만 날도 아니고 앞으로 여러 번 기회가 올 것이기 때문에 서둘지 않았을 뿐이다. 다음날 식당에 들어섰을 때, 우린 전날 아주 친절했던 그 직원에게 반가운 마음이 솟구쳐 입꼬리를 올리며 따뜻한 시선을 던졌다. 그는 우리의 선의를 깡그리 무시한 채 우리와 눈도 마주치지 않고 투명인간 취급을 한다. 그는 젊은 직원에게 주문을 받으라는 신호를 보낸다. 턱을 들었다 내리면서. 그 광경이 아주 의도적으로 보여 우린 심상치 않음을 감지했고, 이상한 낌새로 눈치챘다. '아차! 기대했던 게 팁이었구나'라고 생각했다. 맞았다. 우리가 너무 소홀히 대했던 것이다. 우리는 그의 친절을 잘못 해석해서 받았다.

이 깡촌 시골에 아무리 훌륭하고 아름다운 유적지가 많다 하나 외국인은 소수에 불가하니 그들에게 우리는 당연히 일종의 도구였고 기회였다. 그의 친절 역시 도구로 쓰일 뿐이다. 우리는 그 도구를 사용했던 것이다. 그때 비로소 고유어처럼 여겨진 순수한 시골인심이 우리들의 착각이며 자만과 교만했던, 과도하게, 어긋난 기대였음을 알아차렸다. 우리는 식당을 나가면서 어제의 몫인 팁을 카운터 직원에게 남기면서 전달해 달라고 했다.  

삶의 형상이 비록 개발도상국에서 벗어나지 못해 우리들보다 남루한 모습으로 보였을지언정, 사람 마음까지 과거에 머물려 있지는 않았다. 오히려 그 이상이었다. 아니면 인도인들의 타고난 상업적이고 노련한 기질이 발휘된 것인지도 모르겠다.   

다음날 그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첫날과 같은 미소를 지으며 재빠르게 다가왔다. 내 사고방식으로는 도통 이해할 수 없는 신통방통한 모습이지만, 새삼 '이게 인간사구나' 했다. 그럼에도 그의 행동을 순진함으로 보아야 하는지, 아니면 능청스러운 상업적 기술로 여겨야 할지 참 난감한 기분이 들기도 했지만, 그의 미소를 다시금 보게 되었다는 점에서 마음이 놓였다.

그러던 어느 하루는 그의 상냥하고 친근하게 활발했던 미소가 고개를 돌리는 순간 너무나 다른 양상의, 무의미하고, 무미건조한 표정으로 변했다. 순간 너무 놀란 나는 그가 눈치챌까 얼른 고개를 돌렸다. 갑자기 돌변한 그 표정에 되레 내가 무안한 기분이 들었다. 본의 아니게 그의 민낯을 본 것 같았다. 불행한 진실, 무의식적인, 그의 실체를 목격한 것이다. 권모술수 같은 그 이중적인 모습에서 아주 묘하고도 씁쓰레한 기분이 들었다. 남편도 그 모습을 보고서는 한 편의 연극 같았단다. 그러나 악의로 해를 입히려는 모습이 아니므로 차라리 재밌게 생각했다.


작은 시골도시 중심가는 인도의 어느 소도시와 다를 바 없이 차량, 오토바이, 릭샤등으로 뒤엉켜 있었고, 단조롭고도 밋밋한 현대식 낮은 건물들과 그 사이에서 더 밀집하게 붐비는 사람들, 제각각 분주하게 살아가는 모습이다.

바다미시에는 아주 훌륭한 석굴사원이 있다. 이 번잡한 중심가를 약간 벗어나 시장통을 거쳐 마을 뒤쪽 골목길을 따라가면 사람 사는 진솔한 모습의 전통가옥들이 옹기종기 모여있다. 나지막한 테라스식 지붕, 출입문마다 꽃으로 엮은 금줄이 매달려 있으며, 그 앞 빨랫줄에 늘린 옷가지들, 살림살이, 현관 앞에서 집안일을 하는, 사리를 입은 여인과 아이들의 모습도 보인다. 현관 지기 같은 염소와 골목에 풀어놓은 돼지들이 쓰레기 더미에 코를 박고 있는 것도 전형적인 시골 삶의 풍경이다. 채식가인 힌두교 마을에서 돼지와 연관성이 궁금했다.

마을이 끝나는 곳에 시원한 그늘을 만드는 고목나무가 서있고 왼쪽 언덕으로 사원과 박물관 그리고 맞은편 커다란 호수가 있으며 호수 건너편 언덕 위에는 그 유명한 석굴사원이 있다. 마을을 두고 삼면이 붉은빛이 감도는 돌산으로 둘러싸여 있으며, 커다란 호수가 중앙에서 바다미의 젖줄 같은 역할을 한다. 이 넓고 아늑하게 펼쳐진 골, 평화롭고도 아름다운 고고한 풍취, 선인들의, 헌신적으로 탄생된, 이 훌륭한 예술품이 있다는 게 놀랍지 않다. 그만큼 아름다운 정기를 품고 있는 곳이다.  

우리는 동굴사원을 오르기 위해 호수가의 계단을 따라 걸었다. 주변의 돌을 깎아서 만든 거대한 붉은빛 돌계단. 치맛자락을 허리춤에 뭉쳐 올리고 호수물에 발을 담근 아낙이 빨래하는 모습은 참으로 오랜만에 보는 정겹고도 인간적인 모습이었다. 마치 내 어린 시절 냇가에서 방망이질로 빨래하던 모습과 크게 다를 바 없어 보이지만, 이들은 방망이대신 빨랫감을 돌 위에 내리친다. 그리고는 계단 위에다 펼쳐서 말리는 색색의 빨랫감은 무릇 대지예술을 연상케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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