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는 만큼 보이고, 본 만큼 인지된다.
앞서 나는 여행을 하면서 얻어지는 경험과 그로 인해 인식되는 깊이와 농도에 관한 내 견해를 간단히 말한 바 있다. 아마도 앞으로 하고자 하는 이야기가 그 한 예에 속하지 않을까 싶다.
며칠 전부터 "니코스 카잔차키스, Nikos Kazantzakis"의 장편소설 <그리스인 조르바>를 읽기 시작했다. 원제목은 <Vios ke politia tu Aleksi Zorba>로 그리스 현대 문학을 대표하는 소설로써, 60년대(정확히는 1964년) 영화로도 만들어져 프랑스에서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고 한다.
내가 이 소설을 접하게 된 계기는 이전 읽던 책의 작가가 추천한 도서목록 가운데에 포함되어 있었다. 그전까지 영화는 물론이고 이 소설의 내용이나 작가에 대해서 아는 바가 전혀 없었다. 아니, "전혀"라고 말하기에 적합할지 어떨지? 이런 경우엔 어떤 표현이 어울리는지 모호하지만 어쨌든 내 기억 속에는 없었다. 듣도 보도 못한 생소한 단어라 생각했기 때문에 나로서는 그냥 모른다고 말하는 게 옳을 것 같다. 그런데 알고 보니 듣지도 보지도 못한 것이 절대 아니었다. 나는 이미 그의 존재와 그에 대한 흔적을 보다 구체적으로 목격했었던 것이다. 그 무엇보다 확실한 방법으로. 그런데 왜 내 기억에는커녕 머릿속에 인지되지 않았던 것인가? 그 까닭은 아주 단순했다. 아는 만큼 보였기 때문이다.
작가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약력은 이 책에서 소개한 그대로를 옮겨본다. "그는 현대 그리스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이자 <20세기 문학의 구도자>로 불린다. 1883년 크레타 이라클리온에서 태어나 터키의 지배하에서 기독교인 박해 사건과 독립 전쟁을 겪으며 어린 시절을 보낸 그는 이런 경험으로부터 동서양 사이에 위치한 그리스의 역사적 사상적 특이성을 체감하고 이를 자유를 찾으려는 투쟁과 연결시켰다. 1907년 파리로 건너간 그는 베르그송과 니체를 접하면서 인간의 한계를 극복하려는 <투쟁적 인간상>을 부르짖게 되었다.
자유에 대한 갈망 외에도 카잔차키스의 삶과 작품에 큰 영향을 준 것은 여행이었는데, 1907년부터 유럽과 아시아 지역을 두루 다녔고, 이때 쓴 글을 신문과 잡지에 연재했다가 후에 여행기로 출간했다. 1917년 펠로폰네소스에서 <그리스인 조르바>의 주인공이자 실존 인물인 기오르고스 조르바와 함께 탄광 사업을 했고, 1919년 베니젤로스 총리를 도와 공공복지부 장관으로 일하기도 했다. 1922년 베를린에서 조국 그리스가 터키와의 전쟁에서 참패했다는 소식을 듣게 된 카잔차키스는 민족주의를 버리고 공산주의적인 행동주의와 불교적인 체념을 조화시키려 시도했다. 이는 <붓다>와 대서사시 <오디세이아>로 구체화되었다. 이후에도 특파원 자격으로 이탈리아, 이집트, 시나이, 카프카스 등지를 여행하며 다수의 소설과 희곡, 여행기, 논문, 번역 작품들을 남겼다. 대표작의 하나인 <최후의 유혹>은 신성을 모독했다는 이유로 교회로부터 맹렬히 비난받고 1954년 금서가 되기도 했다. 카잔차키스는 1957년 중국 정부의 초청으로 중국을 다녀온 뒤 얼마 안 되어 백혈병으로 사망했다. 1947년부터 아홉 차례나 노벨 문학상 후보로 지명되었고, 톨스토이, 도스토예스키에 비견될 만큼 위대한 작가로 추앙받고 있다" - <그리스인 조르바> "니코스 카잔차키스 장편소설, 이윤기 옮김, 열린 책들"에서 옮김.
그리고 그와 그의 작품을 두고 콜린 윌슨, 알베르트 슈바이처, 알베르 카뮈, 토마스 만, 로제 마르탱 뒤 가르, 존 스타인백 등 많은 위대한 작가들이 찬사를 보냈다고 적혀있다.
책의 몇몇 장이 넘어가는 동안 글은 매끄럽게 술술 읽혔고, 문장이 매우 아름답고 시원해서 계속 읽기로 했다. 무엇보다 소설의 배경이 된 곳이 그리스의 크레타 섬이라는 점에서는 내 구미를 특별나게 끌어당겼다. 왜냐면 우리는 몇 년 전에 여름 바캉스를 그 섬곳곳을 여행하면서 약 한 달간 보냈던 적이 있다. 그 이후 나는 살아볼까 하는 마음까지 먹었을 만큼 참 좋은 기억으로 남겼던 곳으로 날씨, 인심, 환경, 자연이 아주 매력적인 섬이다. 크레타 섬은 그리스의 최남단에 위치하여, 남쪽은 리비아와 이집트 연안, 동쪽으로 튀르키예 연안을 낀 지중해 위 동서로 길게 뻗어있는 그리스에서 가장 큰 섬이다. 그리하여 많은 관심과 흥미를 느끼면서 소설을 읽기 시작했다.
책장이 약 20% 정도 넘겼을 무렵, 남편이 내게 묻는다.
"지금 읽는 책이 뭔데? 제목은?
"그리스인 조르바…"
"아, 카잔차키스의 조르바 르 그래스(그리스인 조르바)"
"응, 당신도 아네. 읽었어요? 어때요 이 책?"
"아니, 아직 읽지는 않았지만, 알고는 있어, 60년대인가? 영화로도 만들어져 아주 유명했었거든"
"영화로도...!"
"응, 우리가 갔었던 스타브로스 해수욕장, 기억나지? 그 영화를 촬영했던 곳이잖아"
“어디라고?"
"스타브로스 기억 안 나?"
"난, 몇몇 책장을 넘기면서 자연스럽게 떠오르던 곳이 자코스 인걸... 산과 촌락, 협곡을 낀 한적한 해변, 백사장, 바다... 그리고 조르바의 야성적인 영혼... 꼭 소설 속 분위기가 왠지 자코스 같아, 읽으면서도 계속 그곳을 연상하게 돼"
자코스는 크레타 섬에서도 아주 야성적이고 전통적인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있는 곳이다. 섬 동쪽 끝의 산등성이에 있는 옛 시골마을은 특히 아름답고 멋진 풍경을 지녔으면서도 관광객이 적다는 점이 가장 큰 매력이다. 아주 최소한의 개발로 인해 고유한 풍경을 잘 간직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어쩜 산골이라 교통이 불편하고 외져서인지 아직은 외지인의 발길이 뜸한 곳이었다. 우리는 이라클리온에서 자동차를 렌트해서 작은 항구도시 시티아를 거쳐 자코스에 도착했었다.
좁을 골목을 지나면 마을의 작은 광장에 성당이 나오고 그 옆 좁다란 골목길을 들어서면 전형적인 옛 시골집을 잘 개조한, 하얗게 색칠된 벽과 파란 문, 입구 담장에 아치형으로 재스민 꽃덩굴이 향기롭게 우리를 맞이하던 곳. 주인장 어머니께서 강낭콩보다 작은 자줏빛 올리브를 한통 가득 절어두어 끼니마다 실컷 먹었지. 그리고 촌락 너머 산등선의 가파른 협곡, 흥분한 태양빛을 온몸으로 받아 내며, 바짝 마른 하얀 땅을 밟고, 가시나무 관목들 사이로 양치기와 산양들이 만들어 놓은 길 따라 내려가거나, 쉽게는 올리브 밭을 가로지른 자동차 길을 십여분 달리면, 산자락에 바다를 낀 몇 가옥의 촌락과 백사장이 나온다. 마치 책의 한 장면처럼. 아늑하고 소박한 백사장은 한적하기 이를 데가 없고, 바닷물도 맑으면서 잔잔하여 수영을 하기에 새삼 물고기가 부럽지 않았다. 백사장에 두 개의 카페식당이 있지만 전혀 상업적이지 않아 아주 쾌적하고 조용했으며, 주변의 어느 해수욕장을 찾아가 보아도 비슷한 풍경과 분위기였다. 비록 삶의 형태는 이 책이 출판된 1940년대와 차이가 있겠지만 자연의 풍경만큼은 변함이 없어 보인다.
"소설의 배경이 영화와 같은 곳인지 아닌지는 몰라도, 영화가 촬영된 곳은 자코스가 아니라 스타브로스 해수욕장이야. 왜 있잖아, 파라솔과 비치의자를 바가지 씌워 엄청 비싸게 빌려주던 곳. 소설에서 지역이름은 없어?"
"아! 기억난다. 그때 당신이 말했었다, 그곳에서... 왜 나는 이 소설이라고 미처 생각도, 연결하지도 못했지? 아, 거기였구나. 이제 알겠다. 맞아, 그때 당신이 캐이블 이야기도 했었어. 소설에서 지금 조르바가 목재 운반을 위해 캐이블을 설치해야겠다는 말을 하고 있는 중이거든. 아참! 그 스타브로스(stavros) 해수욕장 참 별로였어. 바가지요금에 백사장이 크지도 않은데 사람은 너무 많고... 아! 진짜로 파라솔과 의자의 요금은 억지고 미친 가격이었어"
스타브로스(Stavros) 해수욕장은 크레타의 북서쪽에 위치한 제2의 도시 하니아에서 그리 멀지 않은, 혹처럼 북쪽에 툭 튀어나와 있는 곳이다.
하지만 작은 곶과 만으로 형성되어 파도가 거의 없을뿐더러, 바닷물도 잔잔하고 따뜻하여 비록 6월 초라도 수영하기에 딱 좋은 온도였다는 게 기억난다. 하니아에서 더 가까운 서쪽 해수욕장은 아주 길게 수십 킬로미터로 형성되어 있지만 파도가 거칠어 감히 물속에 들어갈 엄두조차 낼 수 없었는데, 그래서 수영에 목말라 있었는데, 크레타 도착 후 이곳에서 처음으로 바닷물에 몸을 담갔다. 그러나 이미 영화 때문에 너무 많이 알려져서인지 앞에서 말한 바가지요금과 해수욕객들의 높은 밀집도, 그리고 바캉스를 위한 현대식 주택들이 볼썽사나워 그다지 좋은 인상을 남기지는 못했다. 그래서 내 기억 속에서도 지워졌나 보다.
"책은 재밌어?"
"난, 흥미로워, 크레타 섬을 아니까... 가 봤으니까... 더욱 생생하게 연상되며 다가와. 그리고 문장이 좋아, 시원해, 쉽게 잘 넘어가"
"그래? 그럼 나도 읽어봐야겠네, 다음번 도서관 갈 때 빌려와야겠다. 도서관에 분명히 있을 거야"
"그래, 함 읽어 봐요? 괜찮아, 나쁘지 않은걸, 암튼 난 좋아, 내가 좋아하는 크레타 섬 배경이라서 더욱 관심도 가고... 흥미롭기도 해. 카잔자스키, 카잔자... 아, 카잔차키스... 암튼 이 작가, 참 글을 잘 쓰는데요. 아름다우면서도 매끄러워..."
"그럼 당연하겠지, 우리 이라클리온에서 그의 무덤에도 갔었잖아, 기억나지?"
"아, 그 무덤? 우리 아파트 뒤쪽 언덕에 있던... 기억나. 아! 그렇구나, 그 무덤이 카잔차키스의 무덤이었구나...? 몰랐어요 그가 누군지... 방금 전까지 정말 몰랐어... 이제 분명해졌어. 오, 고마워요 그의 무덤에까지 데리고 가 줘서... 당신 덕분에 또 하나의 지식을 쌓게 되는걸요. 이젠 확실히 기억에도 남겠어요"
그렇다. <그리스인 조르바>를 쓴 그리스 작가 <카잔차키스>라고, 당시 남편은 분명히 그의 이름과 동시에 설명을 해주었다. 그러나 나는 내 모국어로 된 이름도, 프랑스어도 아닌, 그렇다고 흔한 영어식도 아니면서 슬라브어 발음 같기도, 아니기도... 역시 우리가 그의 무덤을 찾았을 때도 나는 비석 위에 새겨진 그리스어를 보면서도 읽을 수가 없었고, 어렵고 생경해서 머릿속이 혼란할 뿐이었다. 솔직이 그 외 여행으로 너무 많은 새로운 것을 담은 후라 들어도 들어도 더 이상 머리에 기록할 공간이 없었고, 사전에 지식이 없던 터라 당연히 굼뜬 내 머릿속으로 들어올 수도 없었다. 마치 그의 존재는 여름날 습기를 가득 품고 짙게 내려앉은 무거운 구름 같았다. 그냥 피곤했었다.
단지 그리스의 유명한 작가인가 보다 생각했었다. 그리고는 이후 까마득히 잊혔다. 누군지 찾아볼 생각도 없이 관심 밖으로 밀려나 저장도 되지 않았나 보다. 왜냐면 관심도, 흥미도 어느 정도 알고 있거나 사전 지식이 있을 때 더 쌓이고 생기는 법이니까!
지금 역시도 그의 이름 발음만큼은 입술에 착 달라붙지가 않는다.
그렇다. 요컨대 나는 결국 아는 만큼 보였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