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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칠리아 여행기 2

팔레르모에서

by 다나 김선자



보베공항에서 마지막 비행기를 탔다. 2시간 30분 만에 시칠리아 수도 팔레르모에 도착했다. 공항은 한적했고, 밖에는 이미 어둠이 내려앉았다. 우리는 미리 계획한 열차를 타지 않고 공항버스를 탔다. 운전사는 친절했고, 승객 대부분은 시칠리아 사람들로 특이한 점은 없었다. 어둑한 거리, 어스름이 비친 불빛에 프라다, 구찌 상표가 보이는가 했는데 다시 깜깜해진다. 어느새 버스가 터미널에 도착했다. 낯선 곳에 대한 긴장과 호기심으로 예약한 아파트를 찾아 어둠 속을 걸었다. 행인도 뜸한 으슥한 거리, 간혹 스치는 사람도 시커먼 얼굴들, 건물도, 거리도, 하늘도, 사람도 온통 새까맣다. 조용하다 못해 괴괴스럽다.

나는 불현듯 기괴한 생각이 든다. ‘여기가 어디지? 팔레르모는 이탈리아의 도시가 아니었던가? 분명 건물 형태를 보아서는 이탈리아가 맞는데...'

우람한 석조 건물은 언뜻 보아도 바로크 양식이다. 그런데 까맣게 때가 낀 형상에다 낡고 허름하여 마치 거대한 괴물 같다. 바닥 곳곳에 나뒹구는 쓰레기와 엄청나게 큰 직사각형 원석의 보도블록은 파이고 주저앉아 두세 걸음마다 푹석 꺼지며 절뚝 걸음이 된다. 그 순간 불안한 의구심이 뇌리를 스친다. ‘싼 집을 찾느라 이 범죄소굴 같은 동네로 온 것일까? 결코 싸다고 생각지도 않았었는데…’

그러나 여행을 한, 두 번 하는 것도 아니고, 필시 그럴만한 이유가 있을 거라 생각되어 금세 의심을 거두고 지켜보기로 했다. 아니나 다를까 아파트 안으로 들어서자 놀라운 광경이 나타났다. 당장 허물어질 듯한 입구의 모습과 달리 건물 내부에 이렇게 말끔하고 멋진 공간이 있을 줄이야. 전통과 현대가 어우러져 예상 밖의 고상한 분위기다. 그리고는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팔레르모의 진가를 발견하게 되었고, 자고이래 이탈리아인의 세련된 감각적 기호도 함께 보았다.


수도 팔레르모는 티레니아 해를 끼고 시칠리아 북서쪽 팔레르모 만의 물에 젖어 구도시가 있고 이어져 신도시가 넓고 길게 펼쳐진다. 대부분의 시민들은 오래전 구도시를 벗어나 신도시에서 살아간다.

구시가지 건물들은 오래된 만큼 매우 낡았고, 긴 시간의 공격에 방치된 모습이다. 때로 새롭게 수리된 건물들은 호텔이나 여행객들을 위한 숙소이고, 서민층 사람들은 허름한 채 살아가고 있다. 이토록 구도심은 밤낮없이 여행객들 몫이 되어 우리 건물 벽에만도 다섯 개의 여행객 숙소 열쇠통이 달려있다.

실제로 중요한 볼 것들은 이 구도심에 다 모여 있다 해도 틀리지 않다. 8개의 유네스코 문화유산을 비롯해 예술적이고 역사적인 궁전, 성당, 수도원과 박물관, 미술관 등이 즐비하여 곧 구도심 자체가 박물관이다. 팔레르모에서는 감히 그 장소에 오래 머물지 않고서야 방문했다고 말할 수 없다. 특히 내가 꼽는 가장 아름다운 유적지 <산타 마리아 델라미랄리오, Santa Maria dell'Ammiraglio>와 <산 카탈도, L’Église San Cataldo>가 그 예다. 이 두 예배당은 벨리니 광장에 위치하여 시칠리아에서 노르만 통치하에 번성했던 주목할 노르만-아랍-비잔틴 건축의 대표적인 양식이다.

1152년 성모 마리아에게 봉헌되면서 <산타 마리아 델라미랄리오, Santa Maria dell'Ammiraglio (또는 마르토라나 교회, L'église de la Martorana로 불림)>라 이름 붙여진 이 교회는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을 만큼 경이로운 건축물로 내부에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비잔틴 양식의 모자이크 장식이 보석처럼 반짝인다. 단언컨대 그 자체가 아름다운 보석이며 보물이다.

온통 금빛 모자이크와 금박을 입혀 장식된 벽과 돔 천장의 성상화, 아치형 창문, 다양한 색깔의 대리석 기둥과 바닥의 섬세한 대리석 모자이크가 서로 조화롭게 배열되어 장관을 이룬다. 이 빛나는 모습은 황홀하다 못해 영혼을 깨우는 듯하며, 천상의 소리가 울려오는 것 같았다. 그동안은 비잔틴 양식의 모자이크로서 이탈리아 북쪽 도시 라벤나에서 본 것이 최고라 생각했는데, 여기서 그 관념이 깨어졌다.

그리고 가운데 조그마한 정원과 계단을 두고 붙어 있는 <산 카탈도> 교회, 이 역시 팔레르모에서만 볼 수 있는 사례로 1154년-1160년 사이에 바리의 마이온 제독에 의해 건립된 뒤 여러 차례의 우여곡절 끝에 신고전주의 양식으로 통합되었단다. 내부에는 짧은 본당이 세 개의 돔으로 리드미컬하게 배열되어 수수하면서도 엄숙한 성스러움과 동시에 우아함과 웅장함을 준다. 그리고서 영적 경험에 빠져들게도 한다. 비잔틴 양식의 대리석 아치 기둥, 창문의 투각 블라인드 장식과 함께 엄격한 벽은 바닥의 화려한 다색 모자이크 대리석과 더불어 아름답게 조화를 이루며 예술적인 느낌은 물론 부드러움을 준다. 또 건물 외관의 모습은 사암 석조로 되어 간결하면서도 우아하고, 팔레르모를 상징하는 아름다운 세 개의 붉은색 아랍 스타일 작은 돔 구형이 정결하게 지붕 위에 놓여있다. 그런데 이 예배당은 1787년 어이없게 우체국으로 개조, 사용되다가 1882년에 진정한 보존을 외치며 엄격한 복원 작업을 거쳐 중세시대 매력적인 지금의 모습에 이르렀단다. 이 예배당은 앞서의 <산타 마리아 델라미랄리오>와는 사뭇 다른 듯, 그러나 영적인 힘과 예술적인 아름다움에 있어서는 우위를 따질 수 없었고, 이 두 건축물은 팔레르모를 대표하여 나에게 충분히 좋은 추억을 선사했다.

첫날 우리가 도착했던 밤, 숙소에 짐을 대충 내려놓고 늦은 저녁을 먹으러 밖으로 나갔을 때, 가장 인상 깊게 내 시선을 잡았던 것이 바로 이 세 개의 붉은 구형이 있는 건물이었다. 그것은 어둠 속에서도 예사롭지 않았고, 공사 중이라 천막이 한쪽을 막고 있어도 간결한 외관의 아름다운 건축미가 우아하게 빛을 발하고 있었다.

그리고는 벨리니 광장이다. 이 다정다감한 공간은 하루에도 몇 번씩 지나다녔지만 한 번도 변변찮다 여긴 적이 없다. 주변의 조화롭게 아름다운 건물들과 온화한 분위기를 주었다. 이 광장에는 맛으로 소문난 수도원의 파트스리(과자) 가게가 있다. 바깥에서는 전혀 모르고 지나칠 수 있지만 건물 이층으로 올라가면 긴 복도에 언제나 사람들이 길게 늘어선 모습과 복도에서 또는 안뜰 정원에서 파티스리를 먹고 있는 사람들과 마주친다. 맛있는 과자집이 있기도 하지만, 이 수도원 건물 안뜰의 아늑함과 멋스러움도 빼놓을 수 없다.

한바탕 소낙비가 내리고 막 개인 어느 날, 유리창을 파열하는 눈부신 햇살과 영롱한 초록잎에 매달려 대롱거리던 은빛 물방울들, 이 촉촉이 젖어 있는 정원에서 나는 어느 시인의 서재를 떠 올렸고, 지붕의 처마와 초록에서 떨어지는 빗방울 소리가 요한 슈트라우스의 왈츠곡을 듣는 것 같았다.


구시가지의 중심에 가장 역동적인 <콰트로 칸티> 교차로가 있다. 이 기념비적인 바로크 양식의 광장을 기점으로 긴 도로가 음식점 거리와도 연결된다. 네 귀퉁이에 언뜻 보아서 똑같아 보이는 건물이 있고, 그 정면 오목한 부분에 세 개의 층으로 나뉘어 각각 다른 양식의 장식이 하늘로 오르는 듯하다. 가장 아랫부분 지면에 4개의 고대 수로를 나타내는 분수와, 그 위 4계절을 나타내는 조각상들, 그리고 2층에는 시칠리아 4명의 스페인 국왕 동상과 맨 위층에 팔레르모 네 성인의 동상이 있다.

항상 관광객들로 붐비는 이곳은 그들의 기념사진 촬영소가 된다. 여기서 불과 몇 걸음 안에 우리 숙소가 있어 하루에도 서너 번 이 길을 통해 다녔지만 멋진 사진을 남기기란 쉽지 않았다. 그리고 몇 발자국 떨어져 <프리토리아 광장>과 15세기의 기념비적이라는 분수도 보인다. 이 분수에 장식된 다양한 형태의 조각상들은 흡사 연극 무대의 한 장면을 연상케 했고, 의도적으로 보이는 구성과 자세가 우스꽝스럽고 재밌게 느껴졌다.

구도심 전체 건축물들이 바로크 양식으로 보이지만 꼭 그렇지만도 않다. 역사만큼 유수한 시대적 번영을 설명하듯 다양한 건축물들이 혼재되어 있으므로 골목마다 구석구석 걸어보는 게 좋다. 뜻밖의 멋진 풍경을 만날 것이다.

팔레르모는 가톨릭 문화가 짙은 만큼 교회도 궁전과 저택의 수와 맞먹을 정도다. 그만큼 많다는 뜻이다. 길모퉁이마다 쉽게 몇몇은 광장과 더불어 만난다. 따라서 멋진 광장도 많다. 광장은 쉼터를 마련해 줄 뿐 아니라 공간의 밀집도를 완화시켜 더욱 편안하고 여유로운 건강한 도시를 만든다. 주말 저녁은 시민들이 광장의 카페로 속속 모여들어 피자와 맥주를 앞에 놓고 긴 수다에 들어간다. 유쾌하고 활기찬 공간이 된다.

그리고 이 많은 성당을 며칠 만에 다 볼 수는 없다. 다 볼 필요도 없다. 중요한 역사적인 곳만 방문해도 꽤 많다. 입장료도 만만찮다. 처음 한, 두 번은 호기심에 입장료를 내면서 들어가기도 했지만, 역사 전문가가 아닌 만큼 특별한 차이를 못 느꼈다. 이후부터는 "또? 이거 너무 하군, 여행객 지갑 트는 합법적 도둑이잖아" 하고 수차례 입구에서 되돌아 섰다. 때때로 무료입장하는 곳은 휙 들어가서 둘러보고 나오기도 했다.

팔레르모 대성당은 지방색이 아주 짙어 보이는 시칠리아 특유의 아랍-노르만 양식의 긴 형태를 띤다.

노르만 궁전도 빼놓을 수 없는 볼거리라지만 아쉽게도 놓치고 말았다. 피카소 전시도 볼 겸 갔다가 휴일이라 어쩔 수 없이 발걸음을 되돌려야 했다.

흔히 관광객이 즐겨 찾는다는 벼룩시장이 우리 숙소 다음 길에 있어 가 보았으나, 주로 음식점이었고, 서민적인 분위기에 끌려 들어갔지만 값에 비해 맛도, 신선도 역시 별로였다.

이어서 미술관, 고고학 박물관, 그리고 복원된 아름다운 궁전에서 작품과 건축미를 감상했고, 훌륭한 작품이 많다 할 수는 없으나 뜻밖에 한, 두 점 좋은 작품을 만났으니 그 또한 큰 성과다.

문득 거리의 상점마다 심심찮게 진열된 남, 여 머리 형상을 한 도자기 인형에 관해 궁금해졌다. 알고 보니 팔레르모의 귀족 여성과 아랍 남성의 사랑 이야기다. 팔레르모를 상징하는 이 서사의 줄거리는 여성이 사랑했던 아랍 남자가 이미 결혼하여 본국에 부인이 있었고, 그 사실을 알게 된 여성이 남자의 목을 베어 죽였다는 전설이다.


팔레르모에서의 4박 5일은 이렇게 후다닥 지나갔다. 도착 첫날밤에 느꼈던 첫인상과는 많이 달랐고, 지루할 틈 없이 볼 것도 많았다. 장엄한 건물, 넉넉한 공간, 여유로움, 서민적 분위기에서 전혀 답답함을 느끼지 않았다. 낡고 허름한 모습이 언뜻 보아 괴기스럽게 느껴질 수도 있겠으나 그 속에 스며들어 관심 어린 눈으로 자세히 보면 건물 하나하나가 소홀히 넘길 수 없는 멋과 개성이 있다. 하지만 건물 복원으로 곳곳에 천막으로 감싸 놓은 점은 감상하는데 약간 거슬리기도 했다.

나는 특히 주택가 뒷골목 소 수공업자들의 모습에서 정겨움을 느꼈고 흥미로움을 가졌다. 비록 흐리고 간헐적으로 내린 비를 피해 다니기는 했어도 여행객이 적다는 장점도 있었다. 따라서 우리는 팔레르모가 좋았다.


벨리니 광장과 좌, <산 카탈도>와 우, <산타 마리아 델라미랄리오> 교회
<산 카탈도> 예배당 내부
<산 카탈도> 예배당 내부 천장
<산 카탈도> 예배당 내부
<산타 마리아 델라미랄리오> 예배당 내부
<산타 마리아 델라미랄리오> 예배당 내부
<산타 마리아 델라미랄리오> 예배당 내부
<산타 마리아 델라미랄리오> 예배당 내부
팔레르모 대성당
팔레르모 성문과 교회
구도시의 서민층 주택가
우리숙소 건물입구
수도원 파트스리 가게
<콰트로 칸티> 교차로
<콰트로 칸티> 교차로
<콰트리 칸티> 교차로
<프리토리아 광장>과 분수
<프리토리아 광장>과 분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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