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비 오는 월요일, 새 학기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날. 새 학기라 이것저것 준비물만 한 보따리, 저학년 아이들이 그 많은 짐을 혼자 챙겨가기 버거울 정도다. 그래서 교실로 들어가는 입구에는 아이들과 엄마들로 북적북적, 정신이 없다. 빗물이 뚝뚝 떨어지는 우산에 살짝 젖은 양말은 기본. 아이의 교실이 있는 2층으로 올라가 교실 앞 복도에서 무거운 종이 백 2개를 넘겨주었다. 낑낑거리며 짐을 받아든 아이는 교실로 들어간다. 알아서 잘 하겠지만 나는 이렇게 덧붙였다.
"잘 챙길 수 있지? 엄마 갈게~"
그러면서도 휙 돌아서지 못하고 교실로 들어간 아이의 뒷모습을 보고 나서야 발길을 돌렸다. 집에서 학교까지
거리가 있어 매일 차로 등교시키는 나는 다시 차로 돌아가 골목이 한산해지길 기다렸다. 어차피 급할 것도 없고 지금 움직여봐야 뒤엉킨 차들로 옴짝달싹 못 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10분 정도 차에 앉아있다 보니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일은 책을 가지고 와야겠다.'고. '이사를 할까?' 어쩌면 이렇게 생각해야 하는지도 모르겠다만 뭐, 굳이. 집으로 돌아와 어질러진 집을 정리하고 컴퓨터를 켰다. 이제 커피를 한잔 마셔야겠다. 음... 이 글만 보니 이렇게 느껴진다. 남편이 벌어다 주는 돈으로 집에서 살림'이나'하는 팔자 좋은 여자.
보슬보슬 날리는 비가 내리는 서늘한 오후. 북북동 초속 9m의 바람에 체감온도 1℃인 바깥에서 25분을 덜덜 떨다 방금 집으로 돌아왔다. 아침에 교실 앞 복도에서 우산을 주지 않고 그냥 돌아 나왔기 때문이다. 원래부터 일을 만들어서 하는 일복 터진 나는 시간에 맞춰 덤덤히 차를 몰고 학교 앞으로 갔다. 이미 몇몇 엄마들과 학원 픽업 선생님들이 신발장 앞에 서서 오들오들 떨고 있었다. 나도 한 자리 차지하고 가만히 섰다. 행여나 나오는 아이를 못 보고 놓칠까 싶어 건물 안쪽을 뚫어지게 쳐다보면서. 그런데 갑자기, 28년 전의 내가 떠올랐다. 비가 오는 하굣길의 나 말이다.
우리 엄마는‘워킹맘’이었고 나는 그날 우산을 가지고 가지 않았다. 하교 시간, 교실을 나서 복도를 지나 중앙현관 앞에 우뚝 섰다. 다른 친구들처럼 우리 엄마도 곧 올 거라고 생각하면서. 자기 우산을 같이 쓰고 가자던 친구의 말에 '엄마가 올 거야.'라고 대답한 나는, 그렇게 학교 정문을 맨 마지막으로 빠져나갔다. 그리고 비 오는 날 학교 앞에서 엄마를 기다리는 바보 같은 짓은 두 번 다시 하지 않았다.
나올 때가 됐는데도 아이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1학년 때 이용하던 첫 번째 문으로 나왔나 보다. 난 두 번째 문에서 기다렸는데. 아니나 다를까 첫 번째 문으로 갔더니 거기서 만난 엄마가 ‘○○이 아까 나갔는데?!’라고 했다. 원래 아이는 수업을 마치면 학교 후문에 있는 문방구에서 학원 선생님을 만나기로 되어있다. 그래서 나는 얼른 문방구로 향했다. 얇은 점퍼 하나만 걸치고 아이 쇼핑 중인 아이. 나를 보더니 "엄마~! 나 이거 사 먹고 싶었는데 돈이 없어서 구경만 하고 있었어." 라며 웃는다. 호주머니를 뒤적이니 천 원짜리 하나가 나온다. 천 원짜리는 금세 아이의 립스틱 사탕이 되었고, 우산이 없어 비 맞고 왔는데 엄마가 와서 사탕을 먹는다며 그저 즐거워하는 아이의 입속에서 달콤함이 되었다. 그럼 됐지 뭐. 문방구까지 비 맞고 왔지만 이젠 네가 즐겁다면 됐지 뭐. 다행이다. 아이는 학원 차를 탔고 나는 아이의 무거운 책가방을 들고 집으로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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