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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살랑 Jul 14. 2021

친구는 끼리끼리라면서요?

내친구 J 이야기

나까지 도합 총 여섯. 고등학교 친구들의 단톡방이 다시 시끄러워진 것은 3월 부터였다. 친구 J가 첫 직장을 잡고 본격적인 사회생활을 시작하면서 조용한 단톡방이 그녀의 분노를 토로하는 창구로 변모한 것이다. 아침에는 산뜻했던 그녀의 기분은 유관 부서의 비협조적인 태도에 하루에도 몇번 씩 고점과 나락을 반복했고 입사 후 네달이 지난 지금도 그녀의 급발진은 계속되고 있다. 


사실 11년을 보아 오면서  가장 속을 모르겠던 것은 바로 J였다. J는 항상 어디로 튈 지 모르는 걱정스러운 친구였다. 재수학원을 빠지고 내가 일하던 편의점에 찾아와 내 시급만큼의 음식을 순식간에 해치울때도 그랬고, 내 또래가 취업 준비에 열을 올릴 때 배우 덕질에 누구보다 진심이었을 때도 그랬다. 사실 그녀가 없는 모임에서는 종종 그녀에 대한 걱정 어린 말들이 오가곤 했었다는 것을 부정하지는 않겠다. 하지만 늘 J를 걱정하는 것은 연예인 걱정하는 것과 같다는 결론으로 끝을 맺었고 친구들의 결론을 증명이라도 하듯 J는 편입성공과 같은 뜻밖의 반가운 소식을 불시에 알려왔다. 


취직 소식도 J의 깜짝 서프라이즈 중 하나였다. 그녀가 대기업의 로고가 박힌 출입증을 나에게 수줍게 내밀었던 그 날의 점심을 잊지 못한다. 안그래도 흰 J의 얼굴이 그날따라 유독 더 뽀얗고 화사했다. 이상하게 기분이 들떳다. 사실 그 날이 간만의 오후 반차라 들떳던 이유도 조금은 있을 것이다.


30대가 되서야 20대 초반에는 잘 맞지 않는다고 생각했던 J에게서 새로운 면을 많이 발견하게 된다. 그녀는 늘 회사 이야기를 한다. 쉽게 동요하지 않는 그녀의 최고의 기쁨이자 분노는 바로 일터에서 일어난다. 그녀는부정하지만 나는 안다. J는 일에 누구보다 진심이다. 자고로 애정을 느끼지 않는 것에는 분노조차 느끼지 않는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나 또한 일에 진심인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녀는 정말 힘들면 내색하지 않는다.  견디기 힘든 일이 있으면 사방팔방 떠드는 나와 달리 그녀는 고통을 타인과 절대 공유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 고통을 견딜 수 있을 지점이 되어서야 그런일이 있었음을 제3자의 일인듯 '통보'하곤 한다. 그런 J가 한없이 어른스러워 보이다가도 가끔 생각한다. 저 애는 10년 넘게 보아도 정말 종잡을 수가 없구나.


요즘 가장 좋아하는 말 중 하나는 '친구는 끼리끼리'다. 주변에 자주 어울리는 사람들의 모습이 나를 비추는 거울과 같다는 말 쯤으로 해석하면 되려나. 사자성어 근묵자흑도 이와 동일한 맥락이다. 

'친구는 끼리끼리' 이론에 따르면 J와 나는 그야말로 끼리끼리다. 그리고 그 말이 내심 좋다. 사람 좋은 친구를 가장 가까운 이로 두고 있는 나도 퍽 괜찮은 사람이라는 증거이기 때문이다. J도 나를 부디 그렇게 생각해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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