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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살랑 Sep 19. 2021

전등을 가는 사나이

꿈은 생각의 발현이라 하던가. 그랬기에 아빠는 최근 몇 년 나의 꿈에 등장한 적이 없었다. 먹고 사느라 바빠서, 라고 변명해보지만 난 정이 많은듯 하면서 냉정하고 현실적인 구석이 있었다.


사실 아빠가 망자가 된 이후로 그를 크게 그리워하거나 눈물을 흘린 적이 없었다. 사실 원망은 많이 했다. 가족을 두고가서가 아니었다. 속은 느낌이 들어서 그랬다. 난 아빠가 정말 100살까지 살 줄 알았다.  그렇게 건강하고 기력이 좋을 수가 없었다. 그가 그렇게 허무하게 빨리 간 것에 대해서는 나는 아직도 이해가 잘 안된다. 약속을 믿지 않게된 것도 그때 부터 였다. 내년에는 꼭 무엇을 하자는 친구의말을 들을때마다 속으로 생각했다. 내년에 우리 둘 중 하나는 세상에 없을 수도 있지않을까?


그나저나 내 방 전등이 나간지는 3개월이 되었다. 낮에는 방에서 재택근무를 하긴 하지만 해가 지면 방에서 하는 일이라고는 누워있거나 잠을 자는 용도 쯤이라 귀찮아 전등을 갈지 않아왔다.


그러던 차에 어젯밤 꿈을 꿨는데 오랜만에 아빠가 나왔다. 그리고 내 방 전등을 갈아주었다. 살이 빠지기 전 건강한 모습이었다. 잠에서 깨어 잠깐 이게 현실인가 꿈인가 되짚어보다가 노트북을 열고 로또를 샀다. 그리고 역시나 몇시간 후 확인한 로또는 낙첨이었다.


아빠를 그리워하기는 커녕 망자가 꿈에 나왔다고 로또를 산 난 예전이나 지금이나 정말 나쁜년이다. 근데 이상하게 마음이 든든해졌다. 딸 방의 전등을 갈아주러 온 돌아가신 아빠라니, 그래도 거기서도 내 생각을 하긴 하는구만.


다음주는 무슨일이 있어도 전등을 갈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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