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 차 마케터가 되었다. 어디선가 '오 년 차는 오만해서 5년 차'라는 우스갯소리를 들은 적이 있는데 만만의 콩떡이다.
트렌드는 늘 새롭고 변한다. 대왕카스텔라 가게가 반짝하다 사라진 자리에 명랑한 폰트의 핫도그 가게 간판이 올려지고 1년도 지나지 않아 그 자리가 다시 왕씨가 하는 탕후루가게로 바뀌는 그런 류의 것이라고나 할까. 트렌드를 읽기는커녕 트렌드에 끌려다니느라 정말이지 오만해질 틈이 없다.
직업이 뭐냐고 물어보면 당당히 마케터라고 대답했던 시절이 있었다. 명함도 잘 뿌리고 다녔다.
마케팅이라는 단어, 어쨌든 뭔가 있어 보이고 똑똑해 보이니까.
5년 차가 된 지금은 뭘로 돈 벌어먹고 사냐고 물어보는 사람에게 간단히 대답한다.
"... 그냥 회사 다녀요."
재택근무 3년이 넘어가자 명함은 호떡 싸는 종이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것이 되어버렸다는 말을
덧붙이려다가 이건 좀 아닌 것 같아 속으로 삼킨 적도 여러 번이다.
나는 어째서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는 홍길동도 아니고
스스로를 마케터라 소개하지 못하는가.
처음에는 열정이 사그라들었다고만 생각했다.
언젠가 꼬박꼬박 챙겨있던 '뉴닉'이나 '캐릿'같은 뉴스레터가 읽지 않음 상태로 메일함에 쌓인 지 꽤 되었으니까. 깊은 생각을 하기 싫어 글쓰기를 멈춘 지도 꽤 되었으니까.
지금은 생각한다. 어쩌면 나는 이전보다 내 직업에 더 진심이 된 것일지도 모른다고 말이다.
연차가 쌓일수록 내가 하고 있는 일들이 더 이상 가볍게 느껴지지가 않기 때문은 아닐까.
5년 차 마케터가 되었다. 10년 차가 되면 나는 스스로를 자신 있게 마케터라 칭할 수 있을까?
나는 아직 확신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