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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현서 Apr 14. 2024

스페인 3개월 살이(16)

- 세고비아(Segovia) -

 세고비아는 마드리드에서 차로 대강 1시간 거리에 소재하고 있다. ‘카스티야-레온 자치주(La Communidad Autonoma de Castilla y Leon)’에 속해있으며 ‘세고비아 Province’의 수도이다. 과다라마 산맥(Sierra de Guadarrama)의 끝자락에 자리 잡고 있어서 평균고도가 1,002 미터이다. 그래서 마드리드에서 멀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바람 불고 추운 날이 많다. 세고비아 도착해서 먼 산을 보니 산 정상에 하얀 눈이 아직 녹지 않았다.  


 2000년 초 마드리드에서 거주할 때 주말에 종종 가족을 데리고 세고비아에 갔다. 이때 ‘푸에르토 데 나바세라다(Puerto de Navaserrada)’ 란 곳을 지나가는데 여기에 스키장이 있다. 스키장 베이스에 카페가 있었는데 항상 이곳에서 잠시 머물며 커피를 마셨다. 아내가 마드리드 있을 때 이곳에 다시 가보자고 하는데 차가 없이는 접근이 용이하지 않아서 지금 가는 방법을 찾고 있다. 


 2019년 11월 늦가을 차마르틴 역에서 아베(AVE) 고속철을 타고 세고비아를 갔다. 지금 기억이 명료하지는 않지만 1시간이 넘지 않은 시간에 도착했던 것 같다. 세고비아역은 도시와 상당하게 떨어진 평야에 외롭게 서있었으며 세고비아 중심지와는 1시간 간격으로 시내버스가 운행되고 있었다. 이번에 세고비아 와서 처음 안 사실인데 이 역은 기요마르역(Estacion de Guiomar) 또는 아베역(Estacion de AVE)이라고 불리는 고속철 전용 역사이다.



 그런데 이 번 세고비아 여행에서 내가 고속철을 타지 못하고 교외선을 타버렸다. 그 이유는 아주 단순하다. 렌페(Renfe) 앱을 통해 온라인으로 승차권을 구입했고 나는 그것이 당연하게 고속철인줄 알았다. 교외선이 있다는 것을 전혀 몰랐기 때문이다. 그런데 타보니 많은 역에 정차하는 완행 교외선이어서 조금 당황했다. 


 세고비아까지 2시간이 소요된다. 차마르틴(Chamartin) 역에서 출발하고 1시간 10분 뒤에 세르세디야(Cercedilla) 역에서 내려 세고비아 행 열차로 바꾸어 타야 한다. 세르세디야역에서 세고비아역까지 소요시간은 50분 정도이다. 외국 여행자들이 착각하기 쉽다. 이 교외선이 정차하는 세고비아역 이름은 ‘세고비아 기차역(Estacion de Trenes de Segovia)’이다. 통상적으로 랜페역(Estacion de Renfe)으로 불린다.


 9시 조금 못된 시간에 지하철을 타고 차마르틴역으로 향했다. 숙소에서 가까운 그란 비아역에서 11번째 정거장이 차마르틴역이다. 교외선은 지정좌석이 없고 두 시간을 가기 때문에 좌석이 없으면 어쩌나 하고 걱정을 했는데 좌석이 충분하게 있다. 객실 내부도 깨끗하고 화장실도 있다. 


 그런데 웬걸...? 이 교외선을 타니 정차역이 많은 데다가 조금 느리지만 마드리드 근교의 넓고 시원한 자연 풍경을 볼 수 있다. 전혀 지루하지 않고 오히려 즐겁다. ‘고속철 타지 않은 것이 오히려 다행이다’라는 생각을 했다. 좌석도 깨끗하고 쾌적하다. 1시간 10분 정도 간 뒤 세르세디야역에서 세고비아행 열차로 바꾸어 타고 50분을 더 가서 소위 세고비아 렌페역에 도착했다. 


 

 역사는 꽤 낡았다. 교외선 수요가 많지 않고 고속철을 이용하는 고객이 많아서인지 앞서 말한 ‘아베역’은 신식 건물이고 ‘렌페역’은 조락해 가는 낡은 건물이었다. 화장실도 폐쇄되어 있다. 역사에서 나와 보니 길 건너편에 카페 레스토랑이 있다. 이 카페의 화장실을 사용하고 나오면서 보니 꽤 잘하는 동네 레스토랑 같아 보인다. 아내에게 여기서 점심을 해결하자고 했더니 동의한다. 



 아내는 엔트레코트(entrecot, 소 갈빗살 부위), 나는 새우 구운 것을 주문하고 전식으로는 맥주 한 컵에 문어 세비체를 주문했다. 그런데 오 ~~ 음식 맛과 양이 장난이 아니다. 완전하게 동네 맛 집이다. 약간 비만하고 무뚝뚝한 종업원의 얼굴이 귀엽게 보인다. 엔트레코트도 적당하게 잘 구워졌고 특히 세우가 따끈하게 구워졌다. 눈치를 보니 아내가 관심이 있는 것 같아 ‘바꿔먹을래?’ 했더니 두 말 않고 자기가 먹던 엔트레코트 접시를 나에게 넘겨준다. 그리고 새우를 거의 전문가 수준으로 해체해서 흡입해 버린다. 그럴 것 같아 새우를 주문했다. 사실 나는 새우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버스를 타고 로마 수도교 정류장에서 내렸다. 로마 수도교는 건설된 지 2000년이 넘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꿋꿋하게 서있어 많은 관광객을 오게 하는 효자 건축물이다. 주변풍경과 어울려져 매우 아름답기까지 하다. 




 수도교를 뒤로하고 위로 올라가다 보면 자연스럽게 세고비아 광장이 나오고 아름다운 세고비아 성당이 나타난다. 이 광장에도 많은 관광객이 서성이고 있다. 도대체 지금이 성수기도 아닌데 왜 이렇게 많은 관광객이 올까? 스페인 관광산업이 부럽다.



 광장에서 세고비아 성당 쪽으로 난 골목길을 따라 쭉 내려가면 필연적으로 그 유명한 알카사르 성이 나온다. 이 성은 바로 아래가 매우 깊은 계곡이고 넓은 세고비아의 평원을 내려 보고 있어서 누구라도 보면 천연 요새임을 당장 알아볼 수 있다. 그런데 이제는 이 모든 것들이 어디에 카메라를 대고 찍어도 작품이 되는 아름다운 그림이 되어 버렸다. 성안에는 들어가지 않았다. 과거에 몇 번 들어가 봤기 때문이다.



 세고비아 골목길 분위기는 톨레도의 그것과 느낌이 다르다. 세고비아 골목길은 대체적으로 톨레도보다 조금 넓고 밝은 기분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역시 골목길은 아름답다. 골목길을 걷다가 종종 보게 되는 고색창연한 낡은 목재 문과 숨겨진 예쁜 가게들이 보는 사람에게 잔잔한 즐거움을 준다. 



 다시 렌페역으로 돌아와 기차를 타고 차마르틴역에 도착하니 저녁 8시가 가깝다. 지하철을 타고 그란 비아역에 도착해 지상으로 나왔더니 길거리에 인파가 많다. 문득 생각해 보니 금요일 초저녁이다. 금요일부터 시작해서 일요일까지 이 거리는 인파가 몰리는 것 같다. 대로뿐만 아니라 골목길에도 사람이 찬다. 골목길에도 많은 카페, 바, 식당들이 숨어있기 때문이다. 숙소가 있는 골목도 평시에는 조용하고 인적이 많지 않은데 주말이 되면 사람들이 많아지고 소란해진다. 이런 것들은 과거 주택가에 거주하며 살 때 전혀 알지 못했던 것들이었다. 여행자로 와서 새삼스럽게 보고 느끼는 이들의 일상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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