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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케넷 Nov 13. 2019

 착한 아이 콤플렉스

“그래도 애는 착해...”

엄마는 늘 나를 자랑했다. 친척들을 만날 때나 친구들을 만날 때나 모든 대화의 끝은 나를 자랑하는 것이었다. 자랑의 소재는 무궁무진했다. 그중에서도 단골 소재는 된장찌개만 있다면 밥 한 공기를 해치우는 어린아이답지 않은 식성, 아침 일곱 시만 되면 스스로 일어나 이불을 개는 부지런함, 엄마가 힘들까 늘 일거리를 찾는 지극한 효성이었다.

하지만 엄마의 무궁무진한 자랑거리 속에는 사실이 아니거나 심하게 부풀려진 것도 많았다. 그로 인해 ‘자랑’과 ‘자랑스러움’의 미묘하면서도 극명한 간극을 어린 나이에 터득할 수 있었다.

엄마는 나를 자랑할 때 행복해 보였다. 자랑은 눈물 마를 날 없던 엄마 얼굴에 함박웃음을 피워주는 몇 안 되는 일들 중 하나였다. 그렇게 나는 엄마의 자랑이자, 희망이자, 빛이 되어 있었다.


엄마의 자랑을 통해 나는 전형적인 엄친아로 거듭났다. 아들의 편식이 걱정이던 민호 엄마는 나를 집으로 초대하여 된장찌개에 밥을 비벼먹는 모습을 시범 보이게 하였다. 민호 엄마는 ‘멋지다’, ‘의젓하다’, ‘남자답다’ 등의 감탄사들을 연신 남발하였다. 그러나 일곱 살 민호는 콧방귀도 뀌지 않은 채 끊임없이 소시지를 집어댔고, 민호 엄마는 소정의 성과도 거두지 못한 채 나에 대한 위상만을 재확인하였다.

친척집을 가는 날은 자고 오는 것이 늘 부담되었다. 혹여나 늦잠을 자게 되어 친척들이 실망하면 어쩔까 안절부절못했다. 그 부담감은 어린 나에게 불면증을 안겨주었다. 뜬 눈으로 밤을 지새우다시피 한 나는 일곱 시가 되자마자 쏜살같이 일어나 이불을 개고 친척들에게 싱그러운 아침인사를 건넸다. 친척들의 감탄과 칭찬이 들린 후에는 모든 임무를 완수했다는 안도감에 긴장이 풀리곤 했다. 이처럼 나는 엄마의 사실이 아니거나 부풀려진 자랑들을 몸소 실천함으로써 현존하는 엄마의 자랑이 되어갔다. 하지만 아무도 알지 못했다. 된장찌개보다 돈가스가 더 좋았던 일곱 살 아이의 속마음을.


스무 살이 된 나는 지원한 모든 대학에서 떨어졌다. 어린 시절 편식을 하던 민호는 명문대에 진학하였고, 민호는 엄마에게 자랑스러운 ‘자랑’이 되어있었다. 엄마는 좀처럼 웃지 못했다. 스무 살 아들의 식성이나 부지런함은 더 이상 자랑거리가 되지 못했다. 사람들은 워너비 아들상이던 나의 대학 진학에 대한 궁금증을 참지 못했다.

“아들은 어떻게 됐어?”

“......”

“......”

“그래도... 애는 착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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