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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케넷 Feb 08. 2020

딩크족 선언

새 삶의 축복과 고난의 재생산 사이의 경계에서.

 나는 인생주기마다 주어진 과제들을 수행하며 살아왔다. 스무 살에 대학을 들어가고 졸업 후 취업을 한 것. 이것이 나의 대표적 과제들이었다. 이것들은 주로 사회적 통념과 주변의 기대에 의해 수행된 결과물들이기에 '과제'라고 칭할 수 있겠다. 나는 자의에 의해 이 과제들을 수행하지 않을 수도 있었겠지만, 여느 과제가 그러하듯 따가운 질타를 견뎌야만 했을 것이다. 서른을 앞둔 나에게 주어질 앞으로의 과제들은 너무나도 극명하다. 사람들은 나에게 결혼과 출산을 종용할 것이고, 그들이 칭하는 적령기에 이를 수행하지 않는다면 학업에 있어 불성실한 문제아 취급을 받게 될 것이다. 하지만 정상 범주에 속하고 싶은 욕구로 인해 번식을 서두르는 것은 어디까지나 욕심이며 무책임의 극치이다.


 아빠는 가난과 폭력으로 점철된 유년기를 보냈다. 아빠는 그런 유년기의 실타래를 풀지 못한 채 나를 낳았다. 해결되지 않은 유년기의 트라우마는 마치 유전자와 같아서 고스란히 나에게 전달되었다. 어린 시절 내가 가장 많이 보아 온 어른의 모습은 아빠였고, 그 모습들은 증오 속에서 체화되어 갔다. 나는 성장 과정 속에서 여러 번 다음과 같은 의문을 가졌다.  '나를 가졌을 때 엄마 아빠는 나의 미래에 대해 그려본 적이 있을까? 그렇다면 그 미래는 과연 행복한 미래였을까?'. 어른이 된 나는 위의 질문을 이제 나에게 던진다.  '나로 인해 잉태될 한 사람의 인생은 과연 행복에 가까울 것인가?'. 이 질문은 출산을 결정하는 데 가장 큰 이유가 되어야 한다. 그럼에도 많은 사람들의 결심은 자기중심적 요인에서 기인한다. 정상 가족에 대한 욕망, 육아에 대한 로망, 결핍에 대한 충족 욕구, 노후에 대한 대비 등등... 이 모든 요인에서 출산의 당사자인 새 생명의 일생은 철저히 소외된다.


 행복은 세습적이어서 노력해서 얻기 힘들다. 나는 아직까지 해결되지 않은 트라우마들로 인해 다양한 성격적 결함들을 갖고 있다. 또한 내 품은 한 사람의 인생을 품을 만큼 넉넉지 못하다. 따라서 나의 잉태로 인해 재생산될 것은 행복보다 고난에 가까울 것이다.  

영화 『가버나움』

 영화 가버나움 속 자인은 자신과 형제들을 가난과 고통 속에 방치해 둔 부모를 고발하며 재판장에게 외친다.

 "그들이 더 이상 아이를 낳지 못하게 해 주세요."

영화를 본 많은 사람들이 난민이면서 빈민가에 거주 중인 자인의 특수한 환경에 초점을 두어 그들의 인생을 타자화한다. 하지만 우리는 모두 언제든지 자인의 부모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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