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큰 세상을 꿈꾸게 만든 뉴욕 여행일기 02
취준생 시절에는 사원증을 걸고 커피 한 잔을 여유롭게 들고 다니는 직장인이 멋있어 보였다. 막상 직장인이 되고 나니 모든 게 멋과는 상당히 거리가 멀어졌지만. 고작 2년차밖에 안되었으면서 출근하기 싫어서 일요일 저녁부터 무기력해지는 현실이 안타깝기까지 하다.
마음이 메말라 갈증을 느끼던 차에 떠나야겠다고 마음먹은 곳이 뉴욕이었다. 뉴욕은 내가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미지의 도시이자 야망과 열정의 상징 같은 곳이었다. 전세계의 학업, 예술, 금융 엘리트들이 모여들어 서로 경쟁하고, 성취하고, 그야말로 성공을 일구어내는.
친구가 어디서 들은 바로는, 뉴요커들이 분야를 막론하고 탑티어일 수 밖에 없는 세 가지 요인이 있다고 한다. 집값도 학비도 세계 최고 수준인 뉴욕에서의 삶을 감당하는 그들은 아마도 1) 세계 최고 수준의 능력을 갖고 있거나 2) 훗날 재정을 담보할 만한 잠재력이 있다거나 3) 악조건을 감수하고서라도 버텨낼 열정과 패기가 있을 것이라고.
그래서일까? 뉴욕에서는 별 것 아닌 풍경에도 쉽게 자극을 받았다. 가령 그렇게 싫어하던 출근길에서조차.
UN 투어 신청날. 우리가 신청한 시간은 평일 오전 11시 가이드 투어였다. 투어 전에는 visitor's office에 미리 가서 대기를 하고 있어야 한다. 숙소를 이른 아침에 나섰더니 뉴욕 출근 인파를 볼 수 있었다. 우리가 방문객으로 줄 서 있을 때 옆 직원 출입구에는 UN으로 출근하는 사람들이 줄을 서 있었다.
정치외교학과생이라면 한번쯤은 국제기구에 대한 로망을 갖기 마련이고, 나도 예외는 아니었다. 나의 풋내기 시절 로망은 그저 로망에 그쳤지만 누군가는 꿈을 자신의 일상으로 실현해냈다. 그걸 내 눈으로 직접 보고 있자니 기분이 오묘했다. 그들은 출근길에 가슴이 늘 두근거릴까. 어쩌면 그들의 아침은 이미 퇴색되어버린 나의 아침과는 사뭇 다른 의미를 갖고 있지 않을까.
투어에는 온전히 집중하지 못한 채 나도 모르게 조금이라도 설레는 출근길이 부럽다고만 속으로 되뇌였다.
돌이켜보면 학부생이었던 시절 나는 하고싶은 것이 이것저것 꽤 많았다. 대부분은 현실적이지 못한 것들이었다. 아무래도 지금보다 이상적인 목표치가 높았던만큼 늘 거창한 단어들만이 날 설레게 했다. '정의'니 '국제사회' 처럼 의미있고 추상적인 단어들이었다. 이제는 내게 그런 단어들이 별다른 울림을 주지 못할 줄 알았는데.
지금의 나를 설레게 하는 건 출근보다는 퇴근. 정시에 퇴근해서 저녁시간을 소중한 사람들에게 기꺼이 내어주는 일, 친구들과 함께 가는 골목골목의 와인바, 동기랑 잠깐 얼굴 보고 빵 사러 가는 점심시간과 운동 마치고 돌아가는 길에 하루치만큼의 스트레스를 풀어주는 수다처럼 작은 일상들이 놀라울만큼 큰 기쁨과 위안이 되어주었는데...
퇴근 후의 삶을 채우는 것만으론 채워지지 않는 무언가는 있는 게 분명해졌다.
오랜만에 ‘나는 커서 ~가 될거야!’하고 말하던 시절의 내가 생각났던 하루. 나도 그때처럼 다시 설렐 수 있을까.
어째서인지 목이 더 타는 것도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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