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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aeon Dec 29. 2020

<고전에 기대는 시간> - 정지우 작가

타인의 고뇌, 타인의 깨달음을 엿보기

나는 정지우 작가를 좋아한다. 책을 많이 샀다고 할 수는 없지만 선물로 준 것까지 합치면 그의 책을 5권은 샀을 것이다. 그는 자신의 책들 중에서도 더 아끼는 것들이 있다고 했는데, <고전에 기대는 시간>은 그런 책이다.


<고전에 기대는 시간>은 철저히 개인적인 독서기다. 작가는 열두 편의 고전을 자신의 내밀한 경험과 결부시킨다. 그는 과거의 자신을 책을 통해 이해하기도 하고, 책을 통해 자기 앞에 놓여진 삶의 방향을 바라보기도 한다. 그의 이야기는 때로 너무나 내밀한 것이어서 잠시 이것이 소설이 아닌가 하는 착각에 들기도 하고, 내가 이런 것을 엿보아도 되는가 하는 죄의식이 생겨나기도 한다.


그의 글들은 너무나 나의 비밀들에 근접해 있어서, 나는 이 모든 것을 털어놓지 않을 도리가 없다. 이러한 접속의 작업, 그르니에의 비밀과 나의 비밀의 접점을 찾아 기록하는 일이 내게 대단한 것을 건네주리라 생각하지는 않는다. 다만 내가 원하는 것은 성리학자들이 사서삼경에 주석을 달듯『섬』의 문장들에 나의 기억들을 접합시켜 놓는 일이다. 나는『섬』이 보증하는 어떤 청춘의 공간, 존재의 고요한 진실, 영원하고도 고립된 순간에 나를 덧붙이고 싶을 따름이다.

<장 그르니에,『섬』─ 유령 같은 삶을 견디는 방법> 중.


열두 편의 고전과 그에 따르는 열두 편의 글에서 작가는 비슷한 빛깔과 향을 내면서도 조금씩 다른 이야기를 꺼내놓는다. 그것들은 서로 이어지는 것 같으면서도 어긋나며, 정합적인 듯 하면서도 모순적이기도 하다. 우리는 마담 보바리가 되지 않기 위해, 하지만 동시에 개츠비도 되지 않기 위해 인생에서 무엇을 찾아야 하는가. 릴케와 헤세의 '운명'을 찾기 위해 우리는 고독한 산책자가 되어야 하는가. 그러나 현실에서 그러한 삶이 어떻게 가능한가(루소는 최악의 남편이자 아버지였다). 고독한 산책자와 도스토옙스키의 지하 생활자는 무엇이 다른가. 작가의 잔잔한 글결 속에서도 이러한 생각들은 작은 파열음을 내며 부딪히고 있다. 잉게보르크 바흐만의 『삼십세』의 「빌더무트라는 이름의 사나이」가 마지막 순서에 오는 것은 이러한 고민의 자연스러운 결과물일지도 모르겠다.


그렇기에 우리 삶의 '단 하나의' 진실은 무엇인가, 라는 질문에 대한 대답을 찾기란 쉽지 않다. 우리가 삶을 다시 상상할 때마다, 어떤 측면에 주목하느냐에 따라 우리 삶은 새롭게 태어난다… (중략) …이 책을 쓰며 열두 편의 문학작품과 마주하면서, 나는 열두 번 내 삶을 다시 썼다. 하나의 관점에 몰두하다 보면 금세 또 다른 관점의 진실에 대한 욕망을 느꼈다…

<잉게보르크 바흐만,『삼십세』─ 진실을 상상하는 언어> 중.


훌륭한 고전들은 각기 인생의 '진실'의 단편들을 우리에게 보여준다. 때로는 그것들이 상충되는 것처럼 보여도, 우리가 빌더무트처럼 그 중 하나만을 선택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애초에 우리 자신이 불안정하며 모순적인 존재이기 때문이다.


좋은 책들은 우리에게 용기와 위안을, 삶을 되돌아볼 기회와 다가올 일들을 바라볼 새로운 시선을 준다. 하지만 그것들은 우리에게 직접 지시하지는 않는다. 힐링을 목적으로 한 책이 진정한 힐링이 될 수 없는 것은 위안과 치유를 타인의 언어를 그대로 받아들이는 방식으로 찾으려 하기 때문이다. 모든 책들은 나와는 조금씩 다른 상황에 놓인 사람들의 이야기이고, 그 이야기가 내 삶에 스며들게 하기 위해서는 내면적인 번역 과정이 필요하다. 그러나 그 과정은 꾸준한 독서와 생각이라는 훈련이 필요한 일이며, 때로는 명작이라 불리는 어떤 책의 언어가 나와는 너무나도 달라서 도저히 내가 이해할 수 있게끔 번역되지 않는 경우도 있다. <고전에 기대는 시간>은 한 개인이 열두 편의 명작들을 어떻게 자신의 언어로 번역하여 자신의 삶에 받아들이는지를 보여주는 훌륭한 모범사례다. 원래는 불어로 된 책이 영어로 번역된 것을 다시 한국어로 번역하듯이, 타인의 개인적 번역을 보면서 나 혼자서는 받아들이기 힘들었던 원작의 부분들을 이해하게 되기도 한다. 그리고 조금 속물적이기는 하지만,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이 전부 읽기는 쉽지 않을 열두 권의 명작의 감흥을 한 권으로 조금이나마 얻을 수 있다면 그 또한 마음이 혹할 일일 것이다.


한편, 이 책은 그 자체로 하나의 훌륭한 수필이기도 하다. 고전을 소개하거나 평론하는 책들은 많지만, 독서기를 통해 자신의 청춘의 고뇌와 모순을 담담히 털어놓는 책은 흔치 않다. 작가는 우리에게 어떤 규범이나 교훈을 전하지 않는다. 그래서 우리는 이 책을 통해 정지우라는 타인의 고뇌와 깨달음을 그저 지켜볼 수 있고, 또 이 열두 권의 책들을 어떻게 나의 언어로 새로 이해할 것인지를 여유를 갖고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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