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오기 전 오후 교보문고에 다녀와서
자취방으로 가는 길에 잠실 교보문고에 들렀다. 새단장을 해서 좀 더 아늑한 분위기가 되었다. 오래전부터 책장에 있던 하이젠베르크의 <부분과 전체>를 읽다가, 과학과 철학이 뒤섞여 말라붙은 난해한 문장들을 도저히 계속 넘길 수가 없었다. 친구와 이런 식으로 대화를 하는 사람이 있을 수가 있나 하며, 교환을 갔던 덴마크에서 봤던 독일 친구들의 얼굴에 로보트를 겹쳐 떠올리며, 애꿎은 독일어만 탓하고 있었다. 그러다 읽기가 수월한 새 번역본이 나와 있다는 것을 알고 정말 번역이 문제였던 것인지 서점에 가서 확인해 보기로 했다.
다행히 새 번역본은 만족스러워 보여 책을 집어들고 계산을 하려다, 운 좋게 들어온 약간의 용돈이 떠올라서 책을 끌리는대로 몇 권 더 사기로 했다. 우선은 친구가 추천한 정세랑의 <시선으로부터>를 집어들고, 평대를 이리저리 오가다 하루키의 에세이 <직업으로서의 소설가>가 눈에 들어왔다. 복무하면서 한참을 읽었던 하루키가 반가워 집어들고 계산대 앞으로 가 보니, 그의 신작 단편집 <일인칭 단수>가 잔뜩 쌓여있었다. 요즘 하루키의 장편을 다시 읽을 자신은 없었는데, 내 마음을 어떻게 알고 또 단편집을 갖다놓다니. 쉽게 번 돈은 쉽게 나간다지만 책 사는 데 썼다면 누가 나무라진 못할 거라 생각하며 책 네 권을 가방에 우겨넣었다.
사오년 전쯤, 복무하느라 공부를 거의 하지 않은 동안, 나는 하루키를 몰아서 읽었다. 옛날부터 집에 있던 <상실의 시대>를 우연히 꺼내 읽은 것을 시작으로, 그가 책을 쓴 순서대로 읽겠다는 생각에 학교 도서관에서 먼지 쌓인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를 찾아 펼치기도 했었고, 장편들도 밤중에 침대 위 몸을 이리저리 뒤척여 가며 넘겼다. 그러다가 어느 날부터 다른 작가의 책들을 읽었고, 하루키는 곧 희미해졌다.
한시간여가 걸려 자취방에 와서는, 지쳐서 책들은 가방째로 구석에 던져두었다. 반찬을 꺼내 먹으려는데, 밥통이 비어 있는 것을 알았다. 꺼내었던 깻잎김치 통을 다시 냉장고에 집어넣고 전기솥에 밥을 올렸다. 창밖을 내다보니 함박눈이 세상을 뒤덮고 있었다. 잿빛 하늘 위로 흩날리는 눈을 보니 잠시 기분이 좋았지만, 곧이어 혼자 이 풍경을 보고 있다는 사실이 외로워졌다. 아까 샀던 하루키의 단편집이 생각나 꺼내들었다. 첫 장부터 마음에 들었다.
방황하던 시간동안 왜 그토록 하루키를 열심히 읽었었는지 조금 알 것 같았다. 그의 책에는 목적 없는 방황과 공허함이, 해소되지 않는 외로움이, 채우는 법을 모르는 미묘한 갈망이 가득하다. 그런 잡히지 않는 것들을 현실의 다른 사람들도 다 가지고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적어도 내게는 그것들이 하루키를 통해 세상에 존재하게 되었고, 그것들이 내 마음속의 망령들이 아니며 그렇게 존재한다는 것만으로도 나는 큰 위안을 얻었다. 그런 감정들이 나를 즐겁게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하루키를 읽는 동안은 적어도 그것들을 피하고 싶지는 않았다. 아니, 오히려 그런 감정들에 천착할 수 있었다.
요즘의 외로움과 공허함을 코로나 탓으로 돌리곤 했다. 그러나 전염병은 원래 내가 가지고 있던 허무와 우울의 원형들이 현현하게끔, 조금의 비어 있는 시간과 '타인과의 거리'를 제공했을 뿐이다. 눈이 내리는 오늘 우연히 하루키를 사서 다행이다. 내가 예전에 나도 모르게 잠시 터득했었던, 피할 수 없는 감정에 대처하는 법을 덕분에 다시 깨닫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