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전생물학, 유학, 아마존 탐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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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산다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나이가 들수록 점점 더 뼈아프게 깨닫게 된다. 내가 진짜 하고 싶은 일이 도대체 무언지, 저 멀리 있는 목적지까지 어떻게 가야 하는지. 목적지와 길을 안다고 해도 그 길은 보통 가시밭길이다. 가는 길이 너무 힘들고 고되어서, 계속 나아가려면 무언가를 희생하고 포기해야만 해서 많은 사람들이 도중에 포기하게 된다. 특히 연구자의 길은 길고 험난하기로 정평이 나 있는데, 그 중에서도 우리나라에서 비주류인 생태/진화생물학 분야에서 자신의 길을 개척하고 있는 전종윤 연구원을 만나보았다. 그는 양서류를 사랑해서 아마존으로 인턴을 떠났고, 돌아와서 그 기록을 담은 <아마존 탐사기>라는 책을 펴냈다. 최근에는 한반도에서만 발견되는 이끼도롱뇽(Karsenia koreana)에 관한 연구로 저명한 학술지인 <Scientific Reports>에 논문을 게재했으며, 가을부터는 미국의 퍼듀 대학교에서 박사과정을 시작할 예정이다.
류광민 기자 (이하 류) : 논문 게재와 유학 결정을 축하드립니다. 어떻게 이끼도롱뇽에 관한 연구를 하시게 되셨나요?
전종윤 연구원 (이하 전) : 거슬러 올라가자면, 학부 때 내가 무슨 연구를 할지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제가 원래 양서류를 좋아하기도 하고, 털이나 깃털 달린 것, 비늘 덮인 것들은 안 되겠다 싶었어요. 그래서 양서류를 주로 연구하는 서울대 생명과학부의 Bruce Waldman 교수님 연구실에 인턴을 가서 도롱뇽에 관한 일을 해보고 싶다고 이야기를 했더니, 마침 연구실에 도롱뇽 연구를 하는 분이 계셨습니다. 그 분이 첫날에 여러 도롱뇽들을 보여주는데, 그 중 이끼도롱뇽을 보고 딱 꽂혔던 것 같아요. '아, 얘는 내가 해야겠다'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독특하고 귀엽게 생겼어요. 뭐, 그러니까 사실 별 이유가 없네요. (웃음) 그냥 마음이 가서.
류 : 연구 내용을 간단히 설명해주세요.
전 : 우리나라의 이끼도롱뇽 서식지 11곳에서 이끼도롱뇽을 채집해 유전적으로 분석한 연구입니다. 이끼도롱뇽을 분석하기 위한 유전자 지표들이 없었기 때문에 새로 개발했고, 그걸 이용해서 여러 지역에서 채집한 이끼도롱뇽 개체군들을 비교 분석했습니다. 이를 통해 이끼도롱뇽들이 남쪽에서 북쪽으로 이동했다는 분석 결과를 얻었고, 이것이 한반도가 빙하기 때 동물들의 피난처가 되었다는 기존의 가설과 들어맞았습니다. 아마 빙하기 때 한반도에서만 이끼도롱뇽이 살아남았던 것으로 추정됩니다.
류 : 흥미롭습니다. 그러니까 빙하기가 와서 동물들이 남쪽으로 밀려왔다가, 다시 기후가 따뜻해지면서 북쪽으로 올라갔다는 건가요?
전 : 그렇죠.
류 : 그런 것을 밝혀낼 수 있다니 신기하네요. 이러한 연구 분야를 뭐라고 부를 수 있을까요?
전 : 제가 사용한 연구방법론은 집단유전학인데요, 저희는 이를 이용해서 보전생물학적인 접근을 하기 때문에 보전유전학이라고 부릅니다.
류 : 생태학, 보전생물학이라고 하면 사람들은 보통 자연을 돌아다니며 연구하는 일이라고 생각할 것 같지만 사실 유전적 분석을 위해서는 분자생물학적 기법이나 컴퓨터 분석 도구도 필요할 것 같은데요.
전 : 그래서 저는 이 분야가 다양한 분야의 접점에 있다고 생각해요. 야외에 나가서 채집도 하고, 관찰도 해야 하지만 그것들로 실험실에서 실험도 해야 하고, DNA 서열을 컴퓨터로 분석도 해야하니까 결국 이것저것 다 해야 하는 상황인거죠. 전통적인 방법론과 최신의 방법론을 모두 사용하고 있습니다. 요즘은 유전체 전체를 읽는 방법들도 널리 사용되니까 빅데이터 처리를 하기도 합니다.
류 : 그렇군요. 이건 개인적으로 정말 궁금했던 부분인데, 이끼도롱뇽 채집은 어떻게 이루어지나요?
전 : 도롱뇽이 정말 채집하기 힘들어요. 도롱뇽들은 잘 움직이지 않고 개구리처럼 뛰어다니지도 않아서 돌이나 나뭇잎들을 막 들추고 다녀야 합니다. 거기다 이끼도롱뇽은 다른 도롱뇽들과는 다르게 번식기에 집단 번식을 하지도 않아서 몇 시간씩 돌아다니며 주먹구구식으로 채집할 수밖에 없습니다.
류 : 그걸 열한 군데에서.
전 : 그렇죠. (웃음) 물론 혼자 한 것은 아니고 도와주시는 분들이 있었구요. 한 마리도 발견하지 못하는 날도 많아서 같은 곳을 여러 번 가기도 했습니다. 그러다 한 번에 여러 마리를 찾아서 끝낸 때도 있었구요. 원래는 한 서식지마다 15-20마리는 채집하는 게 목표였는데, 그게 마음대로 되는 게 아니었어요. 도롱뇽들이 나와주질 않으면 어쩔 수가 없는 거니까.
류 : 고생이 많으셨겠네요. 도롱뇽을 잡고 나면 샘플은 어떻게 얻는 건가요?
전 : 이끼도롱뇽은 꼬리를 채취하게 됩니다. 아무래도 인간에게 위협을 느끼니까, 이끼도롱뇽을 잡아서 꼬리를 엄지손가락으로 살짝 눌러주면 스스로 꼬리를 똑 떼고 달아나는데, 그렇게 얻은 1cm 정도의 꼬리를 가지고 유전적 분석을 진행할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 도롱뇽 중에서 스스로 꼬리를 자르는 녀석은 이끼도롱뇽 뿐입니다. 그래서 채집은 힘들지만 잡고 나면 샘플을 얻는 건 그나마 쉬운 편이에요. 서로에게 좋은 거죠. 도롱뇽에게 해를 끼치지도 않고요.
류 : 생태/진화 분야는 가난하다는 인식이 있는데, 현실은 어떤가요?
전 : 사실 연구비 규모를 보면 어느정도 알 수가 있죠. 분명 같은 생물학이라도 의생명이나 분자생물학 쪽에 좀 더 많은 펀딩이 이루어지는 것 같긴 합니다. 이쪽 분야에서 많은 돈을 만지기는 쉽지 않습니다. 자비로, 또는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대학원 학비를 충당하는 경우도 많고요. 주변을 봐도 이쪽에서 돈을 벌겠다는 생각을 하는 사람은 거의 없고, 이 동물이 너무 좋아서 연구하고 싶다는 호기심, 탐구에 대한 집착 때문에 오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죠.
류 : 본인도 마찬가지인 건가요.
전 : 그렇죠. 사실 저는 너무 돈에 대한 생각을 안 해서 문제인 것 같아요. 밥벌이도 해야 하고, 가정을 이룰 나이도 다가오긴 하는데... 돌아보면 어릴 때의 나는 정말 돈에 대한 생각을 안 했구나 싶네요. (웃음) 그래도 저는 지금까지는 운이 좋게 풀려서 굶어 죽을 걱정까지는 안 합니다. 물론 여전히 돈과는 거리가 먼 삶을 살 것 같지만, 이 일이 제가 할 수 있는 일 중에 가장 재미있고, 지치지 않고 의미를 찾으면서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류 : 유학은 어떻게 결정하셨나요?
전 : 어릴 때부터 유학 생각은 있었습니다. 아무래도 이 분야가 외국이 좀 더 앞서 있기도 하고, 주류이기도 하니까요. 전세계의 똑똑한 친구들과 같이 공부해 보고 싶다, 축구로 따지면 프리미어리그에서 한번 뛰어봐야 하지 않겠냐 하는 오기도 있었죠. 그리고 현실을 겪어보니 더더욱 유학을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확실히 미국이 환경도 더 좋고, 펀딩도 더 많고, 최신의 방법론들도 많이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미국 대학원이 우리나라에서는 미처 신경쓰지 못하는, 독립적인 연구자를 양성하기 위한 교육 과정이 더 잘 갖춰져 있다고 생각해요. 물론 우리나라에서도 노력을 하고 있긴 하지만요. 미국 대학원에서는 논문을 작성하는 법, 연구비를 쓰는 법, 독립 연구자로 살아가는 법, 스트레스를 관리하는 법 같은 것들을 수업으로도 가르치고, 또 이런 일들을 위한 센터가 따로 있기도 합니다. 이런 환경 때문에 좀 더 유학에 대한 확신을 갖게 됐던 것 같아요.
류 : 공감이 되네요. 확실히 우리나라에서 좀 부족한 부분인 것 같습니다. 그런데 석사 졸업을 하고 논문을 내고 유학을 가시는데, 학부를 졸업하고 바로 유학을 가지 않은 이유가 있으신가요?
전 : 사실 그때도 유학을 준비했었는데, 제가 눈이 높아서 정말 탑 스쿨 두 곳 정도만 지원을 했었습니다. 물론 떨어졌고요. 그런데 지금 와서 보니 미국 대학에서, 적어도 이쪽 분야에서는 어느정도 연구 실적이나 능력을 입증할 수 있는 사람들을 원하는 것 같아요. 옛날에 비하면 학력 인플레가 심해져서 유학의 문턱이 좀 더 높아진 느낌도 듭니다. 그런데 원래 계획은 아니었지만 한국에서 석사를 하면서 많이 배우기도 했습니다. 한국의 도제식 시스템이 기초 실력을 닦기에 좀 더 좋은 측면도 있죠.
어쨌든, 대학원 유학을 가고 싶다면 첫 지원이 잘 되지 않았을 때 학부 졸업 후에 어떻게 연구 실적을 쌓아서 다시 도전할 것인지도 계획을 하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저는 그러지 못했지만요.
류 : 생태학, 보전생물학을 한다고 하면 사상적으로도 생태주의자일거라는 생각을 많이 하는데요, 저희 아버지한테 도롱뇽을 연구하는 선배가 있다고 말씀드렸더니 혹시 터널 뚫는 거 막는 사람이냐고. (웃음) 실제로는 어떤가요?
전 : 일단 먼저 말씀드리자면 천성산 터널에서 문제가 됐던 도롱뇽은 미기재된 신종 꼬리치레도롱뇽이었고.
류 : 와. (감탄)
전 : 어느정도 사실인 것 같아요. 동물 연구자라면, 동물을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면 환경을 우선시하는 성향이 있는 것 같고, 그렇지 않으면 오히려 더 이상한 경우라고 생각해요. 이 분야는 돈 때문에 연구할 수도 없는 분야기도 하구요.
류 : 그렇군요. 그런데, 이처럼 이끼도롱뇽의 생태를 연구하고, 유전적 다양성을 파악하고, 빙하기 피난처 이론같은 가설을 검증하는 일들이 어떤 의미를 가질 수 있을까요?
전 : 일단은 인간의 호기심을 채워주고, 자연에 대한 지식을 늘려준다? 뭐 다윈의 연구도 결국 다윈의 호기심에서 시작된 거니까요. 그런데 이제 저는 보전생물학을 하니까 그런 관점에서 보자면 각 종의 유전적 다양성을 평가하는 일이 어떤 종이 더 취약한지, 어떤 생물다양성 보전 전략을 취해야 할지를 결정하는 데 도움을 주기도 하죠.
생태계라는게 원래 그물처럼 얽혀 있는거라, 한 요소가 변했을 때 그것이 생태계 전체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우리는 잘 모릅니다. 이번에 코로나도 야생동물에 의해서 생겼다고 하고, 인간이 자연에 대한 고려를 등한시하다가 실질적인 피해를 입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해야 합니다. 요즘은 사람들의 환경보전에 대한 인식이 많이 변한 것 같긴 해요.
류 : 그러면 이끼도롱뇽을 연구하는 일도 복잡한 생태계 네트워크의 요소들 중 하나를 파악하는 일이라고 생각할 수 있을까요?
전 : 그렇죠. 물론 큰 스케일에서 (네트워크를 포괄하는) 거시적인 연구를 할 수 있다면 정말 좋을 것 같은데, 현실적인 어려움들도 있고 그걸 위해서는 각 요소에 대한 연구가 어느 정도 되어있어야 하니까, 그런 측면에서 기여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류 : 마지막 질문은 좀 다른 질문입니다. 아마존에 인턴을 다녀오셔서 <아마존 탐사기> 라는 책을 내셨는데, 어떻게 그 경험을 책으로 만들게 되셨는지 궁금합니다.
전 : 아마존에 가서는 그 하루하루가 엄청 귀한 시간이니까 그걸 기록으로 남겨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일기도 남기고 사진도 찍어두고. 사실 거기서는 매일이 너무 피곤해서 완전한 일기로 적어두지는 못하고 키워드로 남겨뒀는데, 그걸 글로 정리해서 네이버 포스트에 연재를 했었어요. 그랬더니 <어린이 과학동아>에서 관심을 가져줘서 특별 기고를 두 번정도 했었고, 그걸 본 출판사(지오북) 측에서 19년 초에 연락이 와서 19년 말에 책이 나오게 됐습니다. 연재부터 책이 나오기까지는 한 2년이 걸렸네요.
류 : 와, 그러면 출판사에서 먼저 책을 내자고 연락을 준 거네요.
전 : 그렇죠. 그 출판사가 생태, 자연, 환경 쪽을 전문으로 하는 곳이어서 관심을 보인 것 같기도 하고, 제 글을 읽은 분들이 그런 출판사에 추천을 해 줬던 것 같아요. 누군가가 제 글을 보고 기사로 실어 보자, 책을 내 보자고 제안한 게 참 기분좋은 일이었어요. 사람들이 제 경험과 글에 관심을 가져준다는 것이 믿기지 않을 만큼 벅찬 경험이었습니다.
류 : 저도 책 정말 잘 읽었습니다. 좋은 인터뷰 감사합니다. 마지막으로 하시고 싶은 말씀은.
전 : 호기심이 많고 학문을 궁금해하는 사람들이 대학원에 많이 왔으면 좋겠어요. 대학원이라는 곳이 분야를 막론하고 일단 돈을 많이 벌 수 있는 곳은 아니거든요. 자기가 하는 학문에 뜻이 있고 그것이 우선순위가 아니라면 연구 생활을 계속 이어나가기가 힘드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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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끼도롱뇽 연구 논문 :
Jeon, J.Y., Jung, Jh., Suk, H.Y. et al. The Asian plethodontid salamander preserves historical genetic imprints of recent northern expansion. Sci Rep 11, 9193 (2021).
https://doi.org/10.1038/s41598-021-88238-z
이끼도롱뇽 사진 출처
표지 사진 : 전종윤 제공
본문 사진 : https://blogs.scientificamerican.com/tetrapod-zoology/the-korean-crevice-salamand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