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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빨간 너구리 Sep 18. 2020

짓다

짓다


박태건


아침에 일어나니

집 앞에

강물이 흐른다


모내기하려고

푸른 강물을 들였나 보다


마을이

섬이 되었다


강물 속에는 구름이 흐르고

집이 있고 또 사랑하는 가족과

부지런한 손이 있다


이제 나는

세상의 모든 것들에

이름을 지어주리라




나는 군산시에서 살다가 회현이란 마을로 이사를 왔다. 친정에서 차로 10분도 되지 않는 가까운 거리이기도 하고, 회현초등학교가 가까이 있기도 해서 학교 가까이로 이사를 왔다. 내가 졸업한 초등학교는 폐교를 해서 요양원으로 목적을 변경해서 어느 돈 많은 원장님이 구조를 고치셨다고 들었다. 서울이나 대도시에 사는 사람들에겐 군산이 어디 시골 마을처럼 보일 테지만 나름대로 군산은 도시라서 여러 가지 편의 시설이 많이 있다. 그런데 회현은 면소재지라서 편의시설이 그리 많지는 않다. 그래도 면소재지니만큼 면사무소도 있고, 소방서도 있고, 보건지소도 있으며 음식점도 몇 개 있다. 초등학교도 있고, 중학교도 있으니 나름 있을 건 다 있는 편이다. 농협에서 운영하는 하나로마트도 있으니 이 안에서 먹고살기에 부족함은 없다.


처음에 이사를 올 때 이 동네가 집이나 땅값이 주위 특히 나의 친정에 비해 많이 높았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값이 떨어져 지금 현재 내가 구입한 가격보다 2천5백만 원이나 가격이 내려갔다. 그래서 나는 나를 '마이너스의 손'이라고 부른다. 뭔가 샀다 하면 값이 떨어진다. 값이 떨어진 걸 넘어서서 불편한 점도 있다. 입구가 오르막이라 눈이 온 날에는 차로 슬슬슬 기어 내려가기 일쑤다. 엘리베이터도 없다. 오래된 빌라라서 그리고 3층밖에 되지 않아서 엘리베이터를 설치하지 않았나 보다. 나는 그게 가장 안타깝다. 우리 집은 3층인데 뭔가 짐을 들고 올라가기에 3층은 그리 만만하진 않다. 특히 쌀이나 물을 사 가지고 올라갈 때는 몇 번 쉬며 올라가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 시골 마을이 좋다. 봄가을 날씨가 좋을 때에는 친정까지 자전거를 타고 가기에 적당한 시간이 걸린다. 운동도 되고 들판도 바라보니 일석이조다. 우리 신랑은 도시에서 태어나서 도시에서 자란 도시 남자다. 물론 나에 비해 그렇다는 말이다. 그런 사람이 시골 아가씨와 결혼했으니 농사를 알리가 없다. 언젠가는 친정에서 밭일을 도와 달라고 해서 밭에서 삽질을 하는데 잘 보이고 싶은 마음에 너무 열심히 하다가 발을 찍어서 다친 적도 있다. 도시 사람인 우리 신랑도 옥상에 올라가서 시골 마을을 바라보는 것을 좋아하는 듯하다. 내가 그렇게 싫어해도 옥상에 올라가서 담배를 피우는 시간을 본인의 낙으로 삼고 있다.


시인이 모를 심기 위해 논에 물을 가득 채운 걸 보고, '푸른 강물을 들였나 보다'라고 말하고 있다. 그래서 '마을'을 '섬'으로 만들었다. 시인이 만든 섬에서 우리 가족은 살고 있다. 이 '강물 속에는 구름이 흐르고/집이 있고 또 사랑하는 가족과/ 부지런한 손'이 있다. 세상에 단  하나밖에 없는 우리들의 섬, 이제 우리는 이 섬의 주인이다. 이 섬에서 '세상의 모든 것들에/ 이름을 지어 주리라.'는 고백을 한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에 이름을 부여하고, 의미를 부여하고, 삶의 깨달음을 주면서 시인은 성장한다. 이 섬에서의 시인의 삶이, 우리의 삶이, 우리 마을 사람들의 삶이 행복하기를 바란다.






커버이미지: 이름을 몰랐으면 했다. 박태건 시인. 모악 출판사. 2020. 8.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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